2024년 4월 21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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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어른들 학대에 밤무대까지 섰던 서커스 소녀…최종 빌런은 친모였다

강선애 기자 작성 2024.02.16 13:35 조회 6,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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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방송된 '서커스 소녀,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홍지윤, 배우 홍종현, 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미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경찰서에 온 소녀

때는 1991년 10월 13일 새벽, 당직을 서다 깜빡 잠이 든 경찰서 출입기자 최기자의 귀에 "남대문 경찰서에 사건이 터졌다"는 솔깃한 얘기가 들려왔어. 최기자는 한달음에 서울 남대문 경찰서로 달려갔는데, 경찰서 안은 이미 기자들로 바글바글해. 그날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 바로 이 사람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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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입 아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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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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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때 애들 빨래하는 거 못 봤어요? 아이 시끄러워!"

괴성을 지르고 말을 험하게 내뱉는 아이. 경찰서에서 만나기엔 좀 뜻밖의 인물이지. 한눈에 봐도 어린 여자아이가 강력계 형사들을 쥐락펴락해. 기자에게도 막 '이놈의 기자'라고 불러. 이 아이, 도대체 누구일까? 당시 이 아이를 취재한 최 기자를 '꼬꼬무'가 만났어. 근데 사실 이 최 기자, 좀 유명한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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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그때 그 '기자놈' 최일구입니다."

최일구 앵커. 어록이 많은 걸로 유명하지. 사실 최 기자는 '꼬꼬무'에 나왔던 '서진룸싸롱 사건', '식품업체 독극물 테러사건'을 취재했던 기자야. '꼬꼬무' 세계관과 연관이 깊지. 이런 최 기자가 30년 기자생활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이 작은 꼬마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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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계 또 형사과장 방에 갔더니 그 아이가 보였어요. 키가 일단 작고 특히 하체가 발육이 좀 비정상적으로 보였고. 뭔가 그 단어 선택 어휘 선택이라든가 이런 게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여자아이 같구나. 뭔가 첫눈에 봐도 문제가 있는 아이구나, 그런 생각을 그때 가졌어요. 경찰들이 이제 하는 얘기가 '아니 이 아기를 왜 형사계에 데리고 있느냐' 그랬더니 얘를 잡아온 게 아니고, 이 어린애가 탈출해 가지고 신고를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여기서 보호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최일구, 당시 사건 취재기자

탈출을 해서 신고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아이가 왜 경찰서에 왔는지 알기 위해, 시간을 이틀 전으로 돌려볼게.

이틀 전 늦은 밤, 서울 북창동의 한 봉제공장.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만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데, 갑자기 다다다닥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문이 열려.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자신을 숨겨 달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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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공장으로 해서 들어온 거예요. 누가 자기를 찾는데, 없다고 해달라 그러라고 그러더라고요."
-당시 봉제공장 직원

느낌이 좀 이상했어. 게다가 이 아이의 모습도 특이했어. 언뜻 보기엔 일곱 살쯤 보이는데, 어린아이가 진한 화장을 했어. 그리고 체조선수들이 입는 쫄쫄이 옷 같은 걸 입고 있어.

이를 어쩌나, 공장 직원들이 당혹해하는 그때. 벌컥 또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여기 조그만 애 하나 안 왔소?"라고 물어. 그리고 내부를 막 뒤지기 시작해. 이상한 낌새를 느낀 공장 직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여기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고 둘러대며 아이를 숨겨주려 했어. 구석에 숨은 아이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는데, 그 작은 몸짓에서 두려움을 읽은 거야.

직원들의 말에 남자는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나갔어. 남자가 떠난 후 직원들은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야. 일단 아이를 여기서 재우기로 해. 그런데 아이가 잠은 안 자고, 자꾸 밥을 달라고 보채.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밥을 먹고도 또 달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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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밥 구경을 못한 아이 같아요. 먹고 한 2시간 있으면 '또 줘 또 줘' 그럼 여기서는 밥을 계속 줘서, 데리고 있었던 거예요. 완전히 인간이 로봇이지, 인간이 아니야. 그건."
-당시 봉제공장 직원

다음 날, 서울 남대문 경찰서 형사들이 아이를 경찰서로 데려왔어. 근데 조용히 따라오던 아이가 막상 경찰서로 데려오니 180도 태도가 달라져. 집이 어디냐 물어도, 어디서 도망쳤냐고 물어도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대답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면서 도와 달라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다 모른대.

답답한 마음을 누르고, 형사들은 아직 어린애니까 텔레비전과 먹을 걸로 달래기로 했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 텔레비전만 보던 아이가 질문에 조금씩 답하기 시작해.

▲ 서커스 소녀 심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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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아이의 이름은 심주희. 키가 작아 어려 보이지만 열한 살이야. 놀랍게도 이 나이에 직업이 있었는데, 뭔지 알아? 아이는 서커스 단원이야. 1991년 당시 서커스는 텔레비전에 밀려나서 몇 개 남지 않은 단체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어. 주희는 그중 한 단체에 속해 있었어.

도망친 그날, 유흥업소에서 강제로 서커스 공연을 하다가 도망쳤대. 더 놀라운 건 이렇게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래. 이런 얘길 들은 형사들은 일단 강제로 공연을 시켰다는 서커스단의 단장을 데려왔어. 맞아. 봉제공장으로 주희를 쫓아왔던 바로 그 남자야.

단장은 경찰서에 와서 자신이 주희의 할아버지라고 주장했어. 그리고 형사들 앞에 스윽 종이 두 장을 내미는데,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이었어. 서류상 주희와 남자는 부녀 관계로 되어있어. 근데 왜 손녀라고 했을까?

단장의 말에 따르면 주희는 딸이 낳은 아이라는 거야. 결혼도 안 한 딸이 낳은 자식이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딸로 호적에 올렸다는 거지. 단장은 주희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며, 툭하면 사고를 쳐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고 주장했어. 자기는 서커스단을 꾸려 전국을 돌아다니는 평범한 가장이라는 거야.

단장은 당시 유명 코미디언의 친형인 데다가 신원도 확실해. 아무리 경찰이라도 아이의 얘기만으로 신원이 분명한 사람을 오래 붙잡고 있긴 힘들어. 형사들이 난감해하며 고민에 빠진 그때, 형사들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포착됐어. 단장이 경찰서에 온 뒤로 주희가 너무 조용해진 거야. 경찰서를 뒤집어 놓던 주희가, 단장이 온 후로 기가 팍 죽어서 계속 눈치만 살펴.

그리고 단장과 함께 온 아내가 "주희야, 이제 그만 집에 가야지?"라며 아이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순간, 형사들은 봤어. 주희의 눈에 서린 공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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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말하자면 주눅이 들어서 있었던 거지. 주눅이 들어가지고.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서 불안하고 자유롭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로 아무튼 긴장된 그런 모습을 봤을 때. '정상적이지 않는 가족 관계구나'를 그때 짐작을 한 거죠."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형사들은 주희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어. 그리고 "주희야, 아저씨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줄래? 무슨 일이 있었니?"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어. 자, 이제부터 주희 기억의 문을 열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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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평 남짓한 골방. 주변을 둘러보면 조그만 책상 하나와 소파만 놓여 있어. 자물쇠로 굳게 잠긴 문 때문에 안에선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바깥엔 큰 개 세 마리가 지키고 서있어. 운 좋게 나가더라도 들키는 건 시간 문제야. 화장실도 못 가. 그냥 방 안에서 대충 봐야 해. 이곳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여긴 주희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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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갔더니 일반 작은 단독주택인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놀랍게도 아이를 도망가지 못하게 그 그레이하운드 같은 맹견이 무려 세 마리나. 그 좁은 마당 같은 데서 막 우글우글하고 있었고.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에도 뭔가 이 시건 장치, 자물통 같은 걸 채워 가지고 형사들이 이제 문 따고 들어가서 주희 양이 살던 데를 한번 구경을 기자들한테 시켜줬는데. 여기는 그 어린애한테 침대다운, 내 어디서 잤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거기서 11살까지 거기서 생존을 했는지. 정말 기가 막힐 지경이었어요."
-최일구 기자, 당시 사건 취재

주희는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당시 주희의 말을 토대로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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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이돌 연습생도 이렇게 까진 안 할 거야. 주희는 하루 네 번,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갔어. 지하실이 연습실이었거든. 하루 열두 시간 서커스 훈련을 했어. 그리고 밤이 되면 유흥업소 밤무대에 섰어. 어른들은 주희의 무대에 열광했어. 어린아이가 늦은 밤까지 공연을 하는데 그걸 안쓰럽게 여기거나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어. 오히려 팁이 막 쏟아져. 주희가 왜 어른 같은 말투를 썼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있었는지 좀 알겠지?

그렇게 파김치가 돼서 집에 돌아오면? 다음 스케줄은 어김없이 지하 연습실 행이야. 오로지 연습만이 살 길이야. 겨우 잠드는 시간은 새벽 두 시. 근데 새벽 네 시면 다시 일어나야 해. 서커스 훈련을 해야 하니까.

힘든 일과 중에도 주희가 좋아하는 시간은 있었어. 바로 밥 먹는 시간. 주희는 늘 배가 고팠거든. 그런데 식사는 하루 두 끼에 반찬은 김치뿐이야. 밥도 적어. 일고여덟 숟갈 정도 뜨면 없대. 그래선지 주희는 또래보다 작았어. 키는 120cm, 몸무게는 20kg야. 당시 열한 살 아이 평균 키가 145cm, 몸무게가 38kg 정도 됐는데, 평균에 한참 못 미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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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이 주희를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밥도 조금만 먹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 몸집이 작아야 어려운 묘기를 해낼 수 있으니까. 또 어린아이로 보일수록 관객들이 더 신기해하니까. 학교? 당연히 말도 안 돼. 주희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한글도 몰랐어. 주희에겐 오로지 서커스, 연습뿐이야.

주희는 이런 생활을 네 살 때부터 했어. 기저귀를 막 뗄 무렵부터 고된 훈련을 한 거야. 주희는 무려 7년 동안 이렇게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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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저렇게까지 해가면서 공연을 하면서 돈벌이를 해야 되느냐. 안쓰러움이 많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 처참하더라고요 보니까. 불안, 초조해하는 그런 내색. 천진난만한 아이가 저렇게 자라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지옥의 서커스

주희가 탈출하면서 자물쇠로 꾹 잠겨있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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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새벽 야간업소를 탈출한 주희 양의 몸에는 아직도 멍자국이 군데군데 남아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내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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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두 시간밖에 못 자고요. 밥도 두 끼 밖에 못 먹고. 맨날 하루에 한 번씩 때리고 그러니까 그냥 나왔어요."

-심주희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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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카메라 앞에서 익숙하게 묘기를 선보이는 주희. 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어. 주희는 늘 긴장 상태였어. 특히 공연할 땐 더 그랬어. 이런 이유 때문에.

"단장은 실제로 주희 양을 서커스단의 원숭이 정도로 길러왔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길이 63㎝, 직경 2㎝짜리 나무몽둥이가 온몸 어디라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날아든다. 특히 전날 업소공연 중에 실수를 했을 경우의 몽둥이찜질은 끔찍할 정도이다."

-당시 신문 기사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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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몽둥이를 감싼 붕대는 주희가 직접 감은거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붕대를 감으면서 주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사를 받던 단장은 억울함을 호소했어.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 죄 밖에 없고 결백하대. 어찌나 억울했는지, 단장 부인은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도 했어. 방문에 자물쇠를 채운 건 이웃공장 남자애들의 흑심으로부터 주희를 지키기 위해서라 주장했어. 형사들은 계속해서 단장을 강하게 추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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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지금 이 막대기가 그 현장에서 왔고 주희는 이걸로 맞았다는데 이 막대기가 당신이 때린 건 맞아?"
단장: "그건 뭐, 그 막대기로 더러 뭐…"
형사: "때린 사실은 있지? 이 막대기로?"
단장: "뭐 잘하라고 해서 그런 적은 더러 있습니다.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죠."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어. 단장은 주희의 친할아버지가 아니야. 혈연관계가 아예 없어. 딸 얘긴 다 거짓말이었던 거지. 알고 봤더니 단장이 오갈 데 없는 주희를 데려다 서커스를 시킨 거야.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주희와 같은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거야.

서커스 소년 민우가 경찰서를 찾아왔어. 열일곱 살인 민우는 어린 시절 단장의 양자로 입적돼서 주희와 함께 서커스 훈련을 했대. 민우 역시 심한 매질과 욕설을 견디지 못하고 2년 전 도망 나온 상태였어.

어떤 여자도 연락을 해왔어. 자기 딸한테 서커스를 시킨 적이 있는데, 단장이 성폭행을 했다는 거야.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딸은 3년 동안 수십 번 넘게 끔찍한 일을 겪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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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공연 가면 여관방을 하나 구하고 그 단원들이 자고 그러잖아. 그러면 쉬는 시간에 부른다는 거야 걔를. 수도 없이 당했다고. 말 안 들으면 욕하고 막 그냥 구박을 해서, 차라리 그냥 그러느니 가서 한 번 당하는 게 낫다… 그렇게 수도 없이 당했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김남구,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단장은 왕처럼 군림했어. 서커스의 인기가 떨어지고 수입이 줄자 자구책을 하나 떠올렸어. 어린아이들을 유흥업소에 출연시키는 거야. 그렇게 갈취한 출연료만 당시 액수로 5억 여 원. 아이들은 좁은 방에 가둬두고 자신은 번듯한 집에 살며 호의호식해 왔던 거야.

놀라운 건 이렇게 사는 걸 이웃들은 아무도 몰랐대. 만약 주희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이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거야.

뒤늦게야 진실은 밝혀졌어. 단장은 아동복지법 위반과 강간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됐어. 이제 주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부모를 찾아줘야겠지.

▲ 형사 아빠들

형사들도 주희의 친부모를 찾아주고 싶었지만,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어. 주희는 어릴 때라 자기 부모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해. 그래도 희망이 완전 없진 않아. 대대적으로 텔레비전에 보도됐으니 그걸 본 부모가 주희를 찾아올지도 몰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주희의 부모라고 하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아.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당장 급한 문제는 따로 있어. 당장 주희를 맡아줄 데가 없는 거야. 당시에는 아동보호시설이 부족했거든. 이 어린아이를 경찰서에 혼자 놔두고 퇴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감해하며 머리를 싸맨 형사들은 이런 결정을 내려.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주희를 집에서 재우기로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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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랫동안 아이를 데리고 있다 보니까. 잘못하면 아이를 또 잃어버려도 안 되고. 그러면 이제 어떻게 보호를 해야 되느냐. 자 오늘은 우리 김 형사, 내일은 뭐 우리 이 형사님, 내일은 뭐 또 무슨 형사님… 해가지고 집에 데려와서 잠도 재우고 먹이고 그렇게 했었어요 자유롭게. 예뻐요 아이가. 아주 귀엽고 상냥하면서 붙임성도 있으면서 아주 애가. 나는 내가 막 안아주고 집에 가서 데려다주고 집에 가서 잠재우고. 우리 아이들이랑 같이 놀고 그랬거든요."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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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주희의 이중생활이 시작돼. 낮엔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형사아저씨들의 집으로 가서 잤어. 주희는 이제 이 구역의 '핵인싸'야. 나쁜 놈들 때려잡는 강력계 형사들도 주희에겐 속수무책이야. 범인 잡으랴 애 보랴 업무는 두 배가 됐어. 그래도 주희를 보는 눈엔 꿀이 뚝뚝 떨어져. 주희는 최 형사를 '큰아빠'라고 불렀어. 임 형사는 '아빠'라고 불러.

"편안하게 하니까 '아빠라고 불러도 돼?' 하면서 어리광도 부르고 여기다 볼에다 뽀뽀도 하면서 그냥 막. 아유 갖은 아양을 다 부리면서 뭐 그런 거죠. 자기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마음을 내색을 한 거지 말하자면."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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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주희는 형사 아빠들한테 더 마음을 열었어. 사실, 형사분들이 별로 잘해준 것도 없었대. 그냥 때 되면 밥 챙겨주고, 과자 사다 주고, 놀아달라고 하면 잠깐 놀아주고. 그게 다였대. 그런데, 주희에게는 처음이었던 거야. 자기를 때리지 않는 어른이.

형사님들은 '어서 빨리 진짜 집을 찾아줘야겠다' 생각했대. 언제까지나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주희의 친부모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아. 대신, 주희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의 입양 의사를 밝히는 연락들이 많았어. 그중 진지하게 온 입양 문의만 열 건 정도였대.

형사 아빠들 사이에서 입양 대책회의가 열렸어. 주희의 첫 번째 부모후보, 서울에 사는 가정주부 김 모 씨야. 뉴스를 보고 며칠 밤을 설쳤대.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했어. 인정 많은 김 씨라면 엄마의 마음으로 주희를 보듬어주지 않을까?

그리고,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 모 씨도 후보에 이름을 올렸어.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키우는 아빠래. 그는 주희를 자기 자식과 함께 키우고 싶어 했어. 또래 아이가 있다고 하니 주희가 외롭지 않을 것 같아.

근데, 아이가 없는 집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어. 물론 입양한 아이를 자기 자식과 똑같이 사랑으로 키우는 분들도 많지만, 지금 주희에겐 절대적인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그렇게 떠오른 세 번째 후보는 아이가 없는 최 씨 부부야. 최 씨 부부는 직접 경찰서까지 찾아오며 적극적인 입양 의사를 밝혔어.

어느 집으로 주희를 보내는 게 좋을까? 가장 중요한 건, 주희의 의견이야. 근데 주희는, 다 싫대. 이유를 물어봐도 말하지 않아. 계속 형사 아빠들만 찾아. 사실 형사들도 고민이 많았어. 마음에 걸리는 게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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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참나! 아 되게 그러네 참!"

"아저씨는 나이가 어려. 할아버지 나이가 더 많아. (이거 염색인데?)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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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가 거칠고, 익숙하게 머리 손질과 화장을 하는 주희. '아이답다'는 표현과는 좀 거리가 멀어. 어릴 적부터 또래와 격리된 삶을 살았잖아. 게다가 밤무대 공연을 다니면서 어른들의 세계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어. 그래선지 행동이나 말투가 당돌해. 조금 안 좋게 말하면 버르장머리가 없어 보일 수 있어. 이런 주희가 일반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혹시나 파양이라도 당하면, 정말 큰일이지. 그래서 결국 형사 아빠들은 이곳에 주희를 보내기로 해.

때마침 명동 가톨릭 회관 쪽에서도 연락이 왔어. 신도 중에 좋은 입양자를 골라 입양을 시키고 싶다고 했어. 당장 일반 가정으로 입양을 보내는 것보단 수녀님들과 함께 지내면서 안정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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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임시 입양처가 정해지고, 헤어질 날이 하루, 이틀 다가왔어. 형사 아빠들은 돈을 모아 주희에게 새 원피스와 안경을 사줬어. 다행히 주희는 기분이 괜찮아 보였어. 주희는 편지도 썼어. 한글을 모르는 주희의 말을 막내 형사가 받아 적어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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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계신 아저씨들은 저의 친아빠 같으시며 제가 버릇없이 한 것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겠습니다. 주희 드림."

1991년 10월 22일, 경찰서 생활 11일째 되던 날. 이제 정말 형사들이 주희와 헤어질 시간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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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갈래, 안 갈 거야. 엄마나 찾아줘, 엄마만 찾아줘. 아빠가 엄마 찾아줘 빨리. 찾아준다고 약속했잖아."

주희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형사 아빠들한테 안 가겠다고 막 떼를 쓰면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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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아이를 데리고 간다니까 많이 아무튼… 저도 눈물 나고 좀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보니까. 정상적으로 편안하니 잘 학교도 다니면서 성장을 제대로 해야 될 텐데… 그런 염려 등 여러 가지로 많이 아무튼 맘이 안 좋더라고."
-임만규,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형사 아빠들의 마음도 찢어져. 주희가 진짜 바라는 게 뭔지 알고 있었거든. 주희는 심리 상담에서 이런 말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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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너한테 제일 큰 소원이 뭐야? 그것만 한번 대답해 봐."
주희: "엄마요. 찾고 싶다고요."
의사: "엄마가 어떠신 분인 것 같아?"
주희: "내가 예쁘니까 엄마도 예쁘죠. 거짓말 안 시킬 것 같아요. 몰라요~ 자꾸 왜 물어봐요. 엄마도 없는데…"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주희는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그리웠나 봐. 하지만 친부모를 찾지 못했잖아. 주희를 위해서라도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해. 그렇게 주희는 천주교 자매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보내졌어. 거기서 한글 공부도 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어. 이따금 형사 아빠들을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긴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야. 차근차근 좋은 가정에 입양될 준비를 해 나갔어.

▲ 폐쇄병동 환자의 비밀

그로부터 6년이 흐른 1997년, 경기도 오산. 박경신 원장은 요즘 폐쇄병동에 있는 어떤 환자 때문에 머리가 아파. 벌써 2년째 이 정신병원을 떠나지 않는 환자가 있었거든. 이 환자가 처음 병원에 왔을 당시의 얘길 좀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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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하기 힘든 환자였어요 협조가 안 되니까. 예를 들어서 식사도 잘 못하는데 수액을 놓아주면 다 빼버린다든가. 모든 치료를 거부를 한다든가. 약 투여도 거부한다든가.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았었어요. 이 친구의 가장 특징적인 게 사람을 믿지를 않았었어요."
-박경신 박사, 당시 오산 정신병원 원장

이 환자에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박 원장이 특히 이 환자에게 마음이 쓰였던 이유가 있어. 보호자도 없이 오갈 데 없는 신세였거든. 오랜 입원기간 동안 면회 오는 사람도 없어. 박 원장은 계속해서 환자의 마음을 두드렸대. 얼마나 두드렸을까. 드디어 이 환자가 입을 떼.

"제가 어릴 적에 서커스를 탈출한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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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환자의 정체는 주희야. 이제 열여덟 살이 된 주희는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었어. 좋은 가정에 입양돼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주희는 천주교 단체에 보내졌잖아. 사실 처음부터 잘 적응하지 못했대. 당시 주희의 건강진단 보고서에는 "심한 학대로 인해 공격적이고 대인기피증 불신증이 심해 시급한 입양이 요구된다"라는 글이 적혀 있어.

주희는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렸어. 눈을 뜨면 다시 자신이 학대받았던 곳으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나 봐. 겨우 잠에 들면 매 맞는 꿈을 꾸곤 했대. 이건 주희가 쓴 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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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기 있기 싫고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겠습니다. 또는 고아원으로 보내주십시오. 1994년 3월 13일 심주희."

당시 주희의 나이는 열네 살. 한참 사춘기를 겪을 예민한 시기지. 주희는 유난히 집을 답답해했어. 그래서 툭하면 집을 나가곤 했대. 겨우 찾아오면 다시 나가고, 찾아오면 또 나가고. 그렇게 방황의 시간은 계속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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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주희가 들어간 곳이 있어. 경기여자기술학원. 가출소녀, 고아 등을 데려와서 직업훈련을 시켜주는 시설이야. 집 밖을 헤매던 주희도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입소했어. 스스로 정한 첫 번째 집이었어. 거기서 또래들과 같이 꿈을 키워 나갔어. 그러다 그 사건이 벌어져.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 '꼬꼬무'에서도 다뤘던 사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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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건물에서 불이 난 것은 오늘 새벽 2시쯤이었습니다. 소방관들이 바깥 쇠창살을 뜯어내고 화장실 안으로 진입했을 때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내용 中

1995년 8월 21일 새벽. 학원의 운영방침이 강압적이라고 느낀 일부 원생들이 탈출을 위해 불을 질렀어. 불을 지르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138명 원생 중 마흔 명이 숨지고 스무 명이 중상을 입은 대형화재였어. 처음 불길이 시작된 2층에서 특히 사상자가 많이 나왔는데, 주희도 바로 여기, 2층에 있었어. 불이 났을 당시 주희는 옷장 안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어. 친구들의 몸이 새까맣게 불타가는 사이 주희는 옷장 안에서 의식을 잃어갔어.

"밤에요. 이제 친구가요. 애들이 그런다고 그래서 장난을 잘하니까요. 그래서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잤는데 눈떠보니까 병원이었어요."

-심주희, 1997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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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 중환자실이었어. 열흘 만에 깨어났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친구들도 꿈도 모두 잃어버렸어.

"내과적인 치료를 다 한 다음에 정신과로 치료를 의뢰했던 케이스예요. 이 친구는 뭐 그 사람들만 세상을 다 원망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는 왜 이렇게 기구한가' 하면서 세상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경신 원장, 당시 심주희 주치의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상처는 조금씩 회복됐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어. 그래서 폐쇄병동까지 오게 된 거야. 주희는 매일 밤이면 불이 나던 그날 밤으로 되돌아가. 살려달라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아. 악몽은 2년째 주희를 괴롭혔어.

▲ 엄마를 찾고 싶어요

그러던 어느 날, 주희가 마음 깊숙한 곳에 품고 있던 얘길 꺼내.

"엄마를 찾고 싶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커졌어. 당시 주희의 마음을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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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만 싶어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도 싶고. 일단은 나 낳은 엄마잖아요. 그래도 뭐 버렸다고 해도요. 원망은 되지만 또 일단은 난 우리 엄마잖아. 친엄마인데 원망해 봤자… 또 원망한 적도 없고요. 그냥 만나면… 그냥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아요."
-심주희, 1997년 당시 인터뷰

정신병원에서 실시한 연극 심리 치료에서 주희는 엄마 역할을 한 상대한테 "안 미워했어요"라며 눈물을 흘렸어. 치료가 끝나고도 한참을 울었어. 주희는 부모가 없는 게 '나를 지지해 주는 뿌리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대. 서커스 소녀 심주희는 아무것도 없는 빈 토양에 혼자 뿌리를 내리고 힘겹게 버텨왔던 거야.

그런데, 이런 간절한 마음을 누군가 듣기라도 한 걸까.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어. 방송국에서 주희를 돕겠다고 나선 거야. 그리고, 이 분도 힘을 보태기로 했어. 주희가 큰아빠라고 불렀던 최 형사. 주희의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했던 최 형사도 힘을 보태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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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얘기했지만 주희는 어린 시절 기억이 없어. 유일한 기억은 할머니 친구 집으로 보내졌다는 거야. 그러면 그 '할머니의 친구'를 찾아야지. 그리고 그 사람을 알 만한 사람이 있어. 바로, 서커스단 단장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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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걔를 받고 안 받고도 없고요. 모르셔서 그러는데, 저희는 걔를 어디서 받고 누구한테 인수받고 그런 것도 없어요. 걔가 원래 곡마단으로 흘러들어온 애죠. 걔를 데리고 다니는 어느 곡예사가 하나 있었답니다. 그런데 곡예사가 걔를 놓고 어디로 가버렸어요. 곡예사들이요. 그렇게 해서 집 양반이 걔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었어요. 데리고 들어오고 나니 걔가 아무것도 모르죠. 어디 걔가 뭐가 사는 것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고 지 이름 성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더라고요. 얘가요. 그래서 그 주희라는 이름은 하도 얘가 하도 천방지축이라 내가 '주의, 주의해라' 한 것이 그게 이름이 돼버린 거예요."
-단장 부인, 1997년 당시 전화 인터뷰

'심주희'는 주희의 진짜 이름이 아냐. 서커스단 단장은 떠돌이 곡예사로부터 주희를 데려온 거야. 이제 그 곡예사를 찾아야지. 수소문 끝에 바로 그 곡예사를 찾았어.

"아~ 그 애요? 저희 어머님 아는 분 통해서 데려왔는데.. 강원도 어디였다더라...?"

여기서 또 단서가 추가 돼. 주희가 기억하는 할머니 친구는 바로 이 곡예사의 어머니야. 그리고 이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소득이 있었어. '심주희' 말고, 주희의 진짜 이름을 찾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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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주. 이게 주희의 진짜 이름이야. 어질 현(賢) 자에, 구슬 주(珠) 자를 써. '주의해라' 해서 아무렇게나 막 지은 이름이 아니라 정성껏 지은 이름인 게 느껴져.

진짜 이름을 찾았으니깐 이제부턴 현주라고 할게. 현주는 곧바로 곡예사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어. 그녀의 엄마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단서야. 곡예사의 어머니는 현주를 단번에 알아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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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할머니가 나한테 맡겼어요. 어디 좋은 데 있으면 자기 몸이 불안하고 어디 벌어먹을 수가 없다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들이 서커스에 있으니까 내가 '서커스에 보내자' 내가 그랬지."

-곡예사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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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할머니도 여기서 일을 하기 때문에 어딘가에 방을 사글셋방을 얻어 놓고 있다 그랬거든요. 그러는데 뭐 얘 놔두고서는 그 길로 행방도 묘하고 아는 사람 편으로 하니까 돌아가셨다 그러더라고. 오래전에…"
-곡예사의 누나

곡예사의 어머니가 할머니의 행방을 알 거라 믿었는데, 아마 돌아가신 거 같대.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어. 이대로 엄마는 못 찾는 걸까.

▲ 드디어 만난 엄마

현주는 계속 방송에 나가 엄마를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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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고요. 그리고 만약에 텔레비전 보면 연락 달라고요."

애타게 엄마를 찾는 열여덟 살 소녀. 현주의 사연은 전국에 알려졌어. 근데 엄마는 감감무소식이야. 방송국에 제보를 내고, 때론 직접 찾아다니며 그렇게 계속 엄마를 찾았어.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경찰서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와. 드디어 현주의 엄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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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라며 사진 두 장을 가져왔어. 또랑또랑한 눈매가 어릴 때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해. 최 형사는 현주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어. 소식을 들은 현주는 바로 경찰서로 달려왔어. 꿈에서만 그리던 엄마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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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극적인 모녀 상봉이 이루어졌어. 엄마는 현주를 만나자마자 껴안고 오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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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얘가 아니면 나는 여기서 그냥 쓰러지는데 '아니면 어떡하나'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오는데 보니까 그냥 어렸던 모습 그대로니까. 그냥 그때서부터 막 이렇게 정신이 막 저거 되고 막 이렇게 없던 힘도 솟는 것 같고…"

-현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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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렵게 찾았는데 안 됐는데 막상 갑자기 딱 찾으니까 좀 그렇죠 안 믿겨질 때도 있고…"
-현주

얼굴도 모른 채 그리워만 했던 엄마를 드디어 만났는데, 막상 엄마를 찾으니까 얼떨떨해. 알고 보니 현주에겐 오빠도 둘 있었어. 그럼 이들은 왜 헤어지게 된 걸까? 자, 이제부터 현주 엄마, 미숙 씨의 얘길 들려줄게.

17년 전, 미숙 씨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어.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도망쳤는데, 남편이 칼을 들고 쫓아왔어. 그날 미숙 씨는 그 칼에 찔리고 말았대. 남편은 구속됐고, 미숙 씨는 병원신세를 져야 했어. 이후 친정 엄마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돈을 벌러 외지로 나갔어. 얼마 후, 남편이 출소했는데, 친정 언니가 '아이는 아빠 밑에서 커야 한다'며 삼 남매를 아빠에게 돌려보냈어. 그런데, 1년 만에 애들 아빠가 사고로 사망한 거야. 뒤늦게 소식을 듣게 된 미숙 씨가 아이들을 찾았지만, 그땐 이미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남의 집에 보내버린 후였대.

엄마는 너무 괴로워서, 극단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었대.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대. '어쩌면, 다른 집에서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이 부잣집으로 입양 간 걸로 알고 있었거든. 현실은 곡예사와 떠돌고 있던 건데. 그 사실을 모르는 미숙 씨는 꿋꿋하게 살아갔어. 먼 훗날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꿈꾸며. 그리고 먼 세월을 돌아 현주와 재회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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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주에겐 새 가족이 생겼어. 엄마 말고도 새아빠와 오빠, 그리고 동생들까지. 굉장히 많은 가족들이 한꺼번에 생겼어.

그리고 1년 뒤, 또 기쁜 소식이 들려왔어. 현주가 결혼을 한 거야. 이제 현주는 행복하게 살았을까.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야. 상상도 못 할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최악의 빌런'이 등장해. 바로, 현주의 엄마야.

▲ 알고 보니 '최악의 빌런' 엄마

현주가 엄마를 만나고 13년 후인 2011년, 현주는 TV에 또 출연해. 그것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얼굴을 가린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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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많이 맞다 보니까 맞는 게 이골이 나서 그건 아무렇지가 않았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 그래도 그렇게 떨어졌다가 지금 이렇게 만났는데… 나는 이게 십몇 년이 지났잖아요.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것보다 더 길고 더 힘들고 더 아팠던 것 같아요. 차라리 서커스단에 있었을 때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해요)"
-2011년 당시 인터뷰

열한 살 때 극적으로 서커스단을 탈출해서 우여곡절 끝에 엄마를 만났잖아. 전 국민이 지켜본 그 감동적인 재회. 그런데, 방송 카메라가 떠나자 갑자기 엄마가 돌변해. 틈만 나면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흉기로 다치게 한 적도 있대. 결국, 엄마를 만난 지 두 달 만에 현주는 또다시 집을 나왔어. 하지만 도망가면 쫓아오고, 도망가면 또 쫓아오고.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의 반복이었어.

현주가 결혼을 했다고 했잖아? 그렇게 어린 신부가 된 것 역시 엄마의 강요로 이뤄진 일이었어. 그토록 찾고 싶었다던 딸을, 왜 그렇게 빨리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 했을까. 현주는 그 이유를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 도중 듣게 됐어. 현주는 어릴 적 돌봐주던 천주교 측 분들을 찾아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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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야. 너 그때 당시에 있었던 재산은 다 갖고 있니? 돈은? 우리 집에서 나갈 때 돈이 얼마 있었거든. 교회에서도 줬고 계산은 안 했지만. 한 3~4천만 원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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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보상금으로) 돈이 나왔대. 5천만 원인가 4천만 원인가 나왔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얘 있는데 이야기를 하려니까 (생모가) 못하게 하더라고. 이렇게 쉿 (하면서) 그 아줌마가 이야기하지 말래. 주희가 모른다고. 그래서 내가 가고 나서 '이상하다. 참' (생각했어)"

천주교 측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진실을 알게 된 현주. 그분들과 헤어지자마자 현주는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어. 알고 봤더니 심주희였던 시절 받았던 후원금과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모두 엄마란 사람이 가로챘던 거야. 그 엄마가 현주를 찾은 건, 결국 돈 때문이었을까.

현주 엄마는 2007년 세상을 떠났어. 이제 엄마라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얼마 후 법원에서 서류 한 장이 날아왔어. 죽은 엄마 대신 빚을 갚으라는 내용이야. 카드빚만 수천만 원이었어. 현주는 또 다시 벼랑 끝에 내몰렸어.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커스 소녀 이야기는 이미 해피엔딩을 맞이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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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엄마 찾았다고 떠들썩하게 다 나왔는데. 내가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 순간에는 내가 누구한테 전화할 데도 없고… 하고 싶은 거요? 없어요. 난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았어요. 진짜 이것저것. 공부해 가지고 간호사라도 되어볼까. 하고 싶은 건 되게 많았는데 그런 꿈들이 한순간에 그냥 한순간에 그냥 없어졌어요. 한순간에."
-지현주, 2011년 당시 인터뷰

▲ 현주의 새 이름, 그리고 33년 만의 만남

차라리 서커스단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는 현주. '그알'에 출연하고 13년이 흘렀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지만 형사 아빠들도, 천주교 관계자들도 모두 현주와 연락이 끊겼대. 근데 '꼬꼬무'가 힘들게 찾았어. 알고 보니, 현주가 이름을 또 바꿨더라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걸까. 묻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아. 마흔넷이 된 서커스 소녀를 만나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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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서커스 소녀 심주희입니다. (이름을 바꾸게 된 건) 그때 제가 좀 힘든 상황도 있었고, 그리고 너무 안 풀리고 너무 힘들다 보니까, 개명이라도 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 솔직히 '꼬꼬무' 보면서 있잖아요. 이렇게 나오는 거 보고 전에 그 생각은 했었어요. '나도 저 방송은 한 번 나오고 싶다' 했는데 연락이 온 거예요. 그리고 진짜 거짓말 안 하고 그 경기여자기술학원 나올 때 있잖아요. 그 얘기했어요. 저 방송에서 나한테 연락 오겠다… 이름 개명하고 나서도 그러고 나서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니. 지금은 잘 살고 있죠."

심주희, 지현주, 그리고 세 번째 이름을 갖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흘렀어. 이번엔 스스로 지은 자신의 이름이야. 그 이름은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지금은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살고 있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었대. 외롭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었대.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쁜 소식, 지금은 혼자가 아니야. 새로 가정도 꾸렸대.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남편 분하고 힘을 합쳐서 잘 극복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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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실 처음에 만났을 때, 사실 저도 그때 당시 마음이 안 좋은 상태였고. 계속 살아야 할까 용기가 없는 상태였거든요. 이 사람 만나고 나서, '내 삶은 힘든 삶도 아니구나' 그런 용기를 얻었었고요. 그러다 보니, 누가 힘든 게 있으면 서로 보듬어주며, 그렇게 생활하고 있죠."
-남편

첫 만남 때, 제작진이 이런 질문을 했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라고. 그녀의 답은, 형사 아빠들과 함께 했던 그 짧은 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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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걸로 꼽는다면 그때. 그 어렸을 때 조금? (형사님들이) 맨날 그냥 이렇게 업고 다니고. 어디 가서 사고 치고 있으면 가서 이렇게 데리고 오고. 일찍 내려가 가지고 어디 가서 막 저기 하겠으면 와서 손을 끌고 가고. 제가 자다가 이게 깜짝깜짝 놀란대요. 그러면 옆에서 형사님들이 그걸 보고 이렇게 토닥토닥해주면서 나중에는 이제 본인들이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야. 이제 걱정이 돼서 얘기를 하시고. 그런 거 보면 나를 진짜 좀 진심으로 저기를 해줬구나. 그냥 고맙죠. 감사하죠. 진짜 감사하죠. 왜냐면 어떻게 보면, 쉽게 말하면 진흙탕에 있는 나를 이렇게 꺼내준 거잖아요. 꺼내서 예쁘게 이렇게 만들어준 거니까 고맙죠. 되게 감사해요."

고작 11일. 경찰서에서 지냈던 시간이야. 당시 형사 아빠들하고 지냈던 시간은 살면서 큰 힘이 됐대. 뒤에는 형사 아빠들이 든든하게 지키고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대.

그 형사 아빠들 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 무려 33년이 흘렀어. 너무 보고 싶었지만, 그동안 기회가 없었대. 그 기회, '꼬꼬무'가 만들어줬어. 서커스 소녀와 형사 아빠들의 33년 만의 만남이 성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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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내 새끼 반가워라."

"전 형사님들 만나면 그 말씀은 해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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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소녀와 형사 아빠들은 앞으로 계속 연락하며 삶을 공유하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어릴 적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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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심주희한테 그 말은 해주고 싶어요. 대견해요. 저한테 박수 많이 쳐주고 싶어요. 되게 힘들었잖아요. 진짜 힘들었는데, 나쁜 쪽으로 빠질 수도 있는데 안 빠지고. 그런 걸 다 이겨내고 잘 살았잖아요.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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