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월 30일 방송된 '여우고개에 묻힌 진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송영규, 댄서 모니카, 가수 정세운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전국을 누빈 방랑 부부
때는 2011년 3월, 충청북도 진천이야. 진천은 오이가 특산물이야. 그런데 한 오이농장이 비상사태야. 한창 수확철인데 일할 사람이 부족했거든.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구인광고를 봤다며 오이농장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어. 숙식이 가능하냐고 묻길래, 사장은 숙식 가능하니 당장 다음날부터 출근하라고 했어. 그리고 다음날, 그 남자가 찾아왔는데, 남자 혼자가 아니라, 젊은 부부야. 두 사람 다 인상도 좋고 싹싹해 보이길래, 사장님은 일을 하라고 했어.
부부가 젊은 사람들이라 농장 일이 힘들어 얼마 안 가 그만둘 줄 알았는데,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록 진득하니 일을 잘해. 사장은 보너스로 월급까지 올려줬어. 그런데 세 달째 월급을 받은 그날, 이 부부가 감쪽같이 사라져. "잘 지내다 갑니다. 더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쓴 쪽지만 하나 남기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7월, 여름 휴가철이야. 경상남도 밀양의 한 펜션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와.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했다며, 숙식이 가능하냐고 물어. 맞아, 오이농장에서 일하던 바로 그 부부야. 이번에는 펜션에서 일하게 된 부부. 청소도 척척, 손님 대응도 완벽해. 특히 아이들한테 그렇게 다정할 수 없어. 부부는 자신들에 대해 "애들 유학 보내고 저희끼리 용돈 벌고 여행도 다니면서 지내는 중"이라고 설명했어. '욜로족'처럼, 번 돈으로 비싼 고기 사 먹고, 다른 펜션 직원들한테 술도 시원하게 쏴. 심지어 외출할 땐, 버스도 안 타고 무조건 택시야. 펜션 사장님 눈에는 '인생 즐기는 부부'로 보였어.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바다가 보고 싶어서 포항 쪽으로 가보려 한다"며 홀연히 또 동네를 떠나. 처음에는 충북 진천의 오이농장, 그리고 경남 밀양의 한 펜션. 이어 포항, 마산, 여수, 해남까지. 부부는 전국을 돌아다녔어. 이 부부의 다음 행선지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어. 그 뒤로 부부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8월 이후로 부부의 행적이 뚝 끊겨 버렸어.
그리고, 이 젊은 부부의 행적이 다시 발견된 건,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뀐 겨울이 되어서야.
▲ 여우고개에 추락한 차량, 아이들의 백골 시신
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포천경찰서 강력 1팀의 김중기 형사가 평소처럼 당직 근무를 서고 있어. 바로 그때, 수상한 차량을 발견했다는 제보 전화가 걸려왔어. 깊은 골짜기 절벽 끝에 차 한 대가 떨어져 있다는 거야. 그런데, 발견 장소가 예사롭지 않아. 경기도 포천의 '여우고개'라는 곳이야.
형사들은 바로 현장으로 출동했어. 한겨울에 꼬부랑길을 계속 따라가는데, 찬 바람 때문에 온몸이 서늘해. 그렇게 정신없이 도착한 여우고개 능선. 거기서 제보자를 만났어. 벼랑 아래서 차 바퀴를 발견했다는 제보자의 말을 듣고 벼랑 끝을 쓱 내려다보니, 절벽 아래의 현장이 너무나 처참해.
"현장을 딱 지목해 준 데 보니까, 차가 왼쪽으로 전도가 돼버린 거예요. 그런데 완전히 박살이 났더라고요. 다 녹슬고 유리도 깨지고. 앞 유리, 옆 유리… 방치된 차량이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았어요."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차량이 발견된 장소는 도로에서 30m 떨어진 거리야. 능선을 따라 쭉 이어진 가드레일이 차량이 발견된 위쪽 구간에만 없어. 아마 그 사이로 추락한 거 같아. 일단, 차적 조회부터 했어. 그리고 현장을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근처에서 백골 시신을 발견했어. 시신이 백골 상태니 오래 방치됐을 걸로 추정돼. 시신은 차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담요로 가려져 있었어.
"처음에 112 신고 받고 갔을 때 차량이 계곡 아래에 굴러 떨어져 있고. '차를 왜 여기다가 버렸지?' 그 생각을 했었는데, 사체가 발견됐으니까요. 너무 놀랐죠."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게다가, 좀 더 떨어진 지점에 시신 한 구가 더 있어. 그때부터 현장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해. 시신이 두 구나 나왔으니까. 이건 단순 추락 사고일 수도, 살인 사건일 수도 있어.
차량 조회 결과가 나왔어. 그 결과는, 아까 전국을 여행하던 그 젊은 부부. 그중 남편의 차였어. 두 구의 시신, 그 부부인 걸까? 단서는 분명 현장에 남아 있어. 가장 중요한 증거는 차량이야. 우선 크레인으로 이 차량부터 건져 올렸어. 고요한 골짜기에 굉음이 울려 퍼지고, 묵직한 차량이 끌어 올라와. 끌어올려보니, 차량 상태가 심각해.
폐차 수준으로 완파된 차량.
그대로 꽂혀있던 차 키.
드라이브 상태에 있던 기어를 보면, 주행 중에 떨어진 걸로 추정돼.
차량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던 안전벨트. 안전벨트는 사용하려 잡아당기면 늘어나지만, 결착 해제 시 제자리로 금방 돌아가지. 그래서 안전벨트는 사용하지 않았다면 늘어져 있을 수가 없어. 추락할 때 안전벨트를 착용했을 걸로 여겨져. 그리고 안전벨트 없이 떨어졌다면 앞쪽에 부딪힐 가능성이 많아. 그런데 핸들과 대시보드에는 충격의 흔적이 없어. 차량 상태에 비해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던 거 같아. 그럼 안전벨트를 스스로 풀고 차 밖으로 나왔을 거야.
지금까지 상황을 보자면, 예기치 못한 절벽 추락 후 차량에서 탈출했지만, 끝내 목숨을 잃은 사고로 보이지. 그런데, 차가 있던 자리에서 은색 형체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어. 돗자리 조각이었어. 은박 돗자리를 찢은 거 같은데, 돌멩이로 돗자리를 꾹 눌러 놨어.
조심스럽게 돗자리를 들어 올렸는데,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리고 무심결에 돗자리를 뒤집자, 돗자리 뒷면에 엄청난 단서가 있었어.
"우리가 아직 살아 있네요. 우리는 산정호수에 빠져 죽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오늘 2월 22일 화요일이네요. 이곳의 위치를 알리고 우리 아이들의 시신이 잘 거두어지길 바라면서 마지막 길을 떠납니다."
-돗자리 조각에 적힌 내용 中
아이들이 죽었다고 쓴 부모의 돗자리 편지.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백골 시신 두 구를 급히 국과수로 보냈어. 부검 결과, 두 구의 시신은 10대 여자 아이들이었어.
"연령을 추정할 때는 치아의 발육 정도 뼈의 발달 상태를 보고 얘기하는데, 13세 전후와 11세 전후로 나왔습니다. 뼈들이 밖으로 노출될 정도로 부패가 좀 상당히 진행이 된 경우였습니다. 적어도 3개월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이상섭, 당시 국과수 부검의
경찰은 산정호수로 가서 주변을 수색했어. 반경 300m까지 수색 범위를 넓혀 여우고개 일대와 산정호수까지 샅샅이 뒤졌어.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어.
조사해 보니, 네 가족 모두 실종신고가 된 상태였고 다른 경찰서에서도 부부의 행적을 쫓고 있었어. 신고자는 남편의 매형. 남편의 누나 집에서 이 네 가족이 함께 살았거든. 열 달 전쯤인 2011년 2월에, 바람 좀 쐬고 온다면서 네 가족이 함께 집을 나갔다는 거야. 부부와 11살, 13살 된 딸 둘 모두. 처음에 누나 부부는, 방학이니 가족여행을 갔겠거니 생각했어. 그런데 며칠 후 누나집에 편지 하나가 도착했어. 그 편지를 읽은 매형은 온몸에 힘이 쫙 풀렸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저희를 용서하세요. 특히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하지만 남아서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저희가 데려갑니다. 죽을 각오로 살아보려 했는데 현실은 무섭군요. 이렇게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인 것 같아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아이들이 애처로워 같이 가려고 합니다…"
-누나 부부가 받은 편지 내용 中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편지. 그리고 열 달 만에 아이들은 백골 시신으로 발견됐어. 하지만 부부는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돗자리 편지에서 편지 쓴 날짜는 2월 22일었어. 그런데 부부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건 8월이야. 그러니 아이들이 사망한 2월 이후에도, 부부가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야. 같이 간다고 해놓고, 부부만 사라졌다? 같이 가려 했다는 부부의 말은, 진짜였을까?
수사의 핵심은 이 부부를 찾는 것. 2012년 1월 1일, 수사팀은 부부에 대한 체포 영장을 신청했어. 혐의는 살인과 사체 유기. 단란했던 이 가족은 이렇게 피해자와 피의자 사이가 됐어.
▲ 사라진 부부의 행적
가족이 실종된 2월부터 경찰이 파악한 부부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네 가족은 2월 14일 집을 나갔어. 그리고 14일과 22일 사이에 아이들은 사망한 걸로 추정돼. 이후 부부는 사흘 뒤 2월 25일 포천에서 9만원을 인출해. 그리고 의정부, 강릉을 돌며 돈을 조금씩 계속 뽑았어. 그러다가 예상 밖의 동선이 발견돼. 바로, 병원. 마취통증의학과에 3번이나 가서 '동상 치료'를 받았어. 특히 발이 많이 불편해 보였대. 산정호수에 빠져 죽기로 결심했다고 했었는데, 진짜 부부는 호수에 뛰어들었던 걸까?
충북 진천의 오이농장 사장님의 눈에도 부부의 발은 영 불편해 보였대. 그래서 사장님이 대전의 한 병원을 추천했어. 부부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사장님이 불편해 보이니 계속 권했대. 결국 부부는 대전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고, 이때 병원에 주민등록번호를 남겼어. 그 후 급하게, 오이농장을 떠난 게 아닐까.
그런데, 부부가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건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거잖아. 아이들과 같이 떠나겠다는 부부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느껴지지.
"마음이 달라진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는 당장 너무 아프고 그래서 일단 치료부터 받지 않았겠느냐 그렇게 생각하고…"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이렇게 흔적이 나올 때마다 경찰은 뒤를 쫓았는데, 늘 간발의 차로 사라진 뒤였대. 설상가상 2011년 8월 이후로는 행적이 뚝 끊겼어. 이제 부부를 찾을 단서가 전혀 없어. 작정한 듯 잠적해 버렸거든. 부부는 엄청난 비밀을 감춘 채 도피를 이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어디에선가 이미 사망한 걸까.
백골 시신이 발견되고 1년이 지났어. 의문만 남긴 채 수사는 난항이야. 부부의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보여. 김 형사는 이 수사의 끈을 놓을 수 없었어.
"간절했죠. 그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사망했을까. 그거를 풀어야 하잖아요."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형사들은 다 그렇습니다. '잡아야겠다' 신념이 없으면 못 잡거든요. 그냥 잡히는 것 같아도 그냥 안 잡히거든요 범인들이. '잡아야겠다'라고 할 때 잡히는 것이지."
-강구명, 당시 포천경찰서 수사과장
김 형사는 공개수배 카드를 꺼내 들었어. 범인 인적사항을 경찰 전산망에 올리고 전국 주요 기관과 공공장소에 수배 전단을 게시하는 거야. 그런데 하고 싶다고 다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수배자 중에서도 엄선된 사람만 전단에 오를 수 있어. 공개수배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그해 수배 대상자를 정한대. 상반기, 하반기 일 년에 기회는 딱 두 번, 전단에 오를 수 있는 것도 20명뿐이야. 이때 범행의 시급성, 범행 정도에 따라 전단에 올리는 순서도 정해져. 그래서 전단 맨 윗줄에는 도피 중인 강력범들을 배치해. 2009년부터 현재까지, 계속 수배 중인 범죄자도 있어. 김 형사는 예외적으로 이 부부를 1번, 2번에 올려달라고 요청했어.
"저희가 부탁을 사실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8월 21일까지 생활반응이 있었고, 더군다나 전과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수배하면 반드시 잡힌다. 그러니 제발 1번, 2번에 좀 해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김중기 형사, 당시 포천경찰서 강력 1팀
김 형사의 요청은 받아들여졌어. 수배 명단 1순위, 2순위로 부부를 올렸어. 이제 반드시 잡힌다는 믿음을 갖고 제보를 기다릴 수밖에.
▲ 영원한 비밀은 없다
전국 곳곳에 부부의 수배 전단이 뿌려졌을 즈음, 이번엔 부산이야. 부산의 한 카페에서 수다꽃을 피우던 부산토박이 정숙 씨와 영희 씨는 절친한 언니 동생 사이야. 영희 씨는 몇 달 전 자신이 일하는 농장에 젊은 부부가 새로 왔는데 느낌이 뭔가 싸하다고 언니 정숙 씨에게 털어놨어. 함께 농장 밥을 먹은 지가 몇 달인데, 쳐다보면 자꾸 눈을 피하더래. 처음엔 낯설어서 그런가 했는데, 6개월이 넘도록 낯을 가린다는 거야. 영희 씨는 부부가 서울말을 쓰던데, 여기 부산까지 내려와서 농장에서 일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말했어. 정숙 씨는 사람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리고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영희 씨가 볼일 보러 은행에 갔다가 무심코 벽을 쳐다봤는데, 종합공개수배 전단지를 발견했어.
"N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가면은 그거 있잖아요. 지명수배 전단지 같은 거. 딱 지나가는데, 어렴풋이 비슷하게 닮았더라고요 부부가. '뭐지? 좀 닮았는데…' 좀 눈썰미는 좋은 편이에요 제가. 한두 번 본 사람은 '저 사람 어디서 봤는데 누구였더라?' 할 정도로. '진짜 닮았긴 닮았는데 어쩌지…' 하다가 '그래 언니한테 전화 한 번 해보자'…"
-김영희(가명), 부부를 의심한 농장 직원
영희 씨는 경찰에 곧장 신고하지 않고, 정숙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어. 그동안 수배범과 한솥밥을 먹었다니 소름 끼치기도 하고, 내가 신고한 게 이들한테 알려지면 해코지당할까 봐 두렵고, 만약에 잘못 본 거라면 그 뒷감당은 어떡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믿을만한 언니한테 전화를 건 거야.
"본인들은 절대 못하죠.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고. 또 긴가민가… 잘 모르겠는데 확실하지는 않은데, '언니가 전화해서 한 번 확인을 해봐라' 그래서 제가 전화했어요. 제가 아는 형사가 우리 학교 후배거든요. 그래서 제가, 혹시나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사람이. 그래서 거기로 전화를 한 거예요."
-한정숙, 당시 사건 제보자
정숙 씨가 아는 사람이 또 잘 나가는 형사였어. 강력반 20년 경력의 장영권 형사. 영화 '범죄도시'에서 배우 마동석이 연기한 마석도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야. 마침 서울에서 여러 범죄 조직을 싹 소탕하고 6개월 전부터 고향 부산에 내려와 있었어. 이렇게 장 형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농장으로 향했어.
"저녁에 오후 늦게 제보가 들어왔는데 혹시나 밤에 검거하게 되면 직원들이 다칠 수도 있고 아침 일찍 검거하러 가게 됐습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갈 때는, 혹시나 살인범일 수도 있고 강도일 수도 있고, 저희가 직원들한테 이야기했죠.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된다고…"
-장영권, 제보받고 출동한 형사
베테랑 형사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야. 농장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어. 새싹채소를 재배하는 곳인데 직원 외에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야. 그래서 분위기가 더 스산해. 장 형사는 은밀히 차를 세우고 농장을 관찰했어. 다행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 대부분 고령의 근무자들이어서, 젊은 부부가 눈에 딱 보였어. 이때가 2013년 4월, 사건 발생 2년이 지난 후야. 부부는 행적이 끊겼던 2011년 8월부터 조용히 이곳에 숨어들었어. 1년 반 넘게 이곳에서 일하고 있던 거야. 경찰이 부부를 쫓은 지 무려 2년 2개월째였어.
형사들은 농장을 은밀히 포위했어. 장 형사는 한걸음 한걸음 부부를 향해 다가갔어. 바로 그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남편이 움찔해. 그리고 그대로 몸을 휙 돌리더니 "저 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죠"라고 말했어.
"당시 신랑이 우리가 가니까 먼저 형사가 온 걸 알고 있더라고요. 자기 마음속으로 형사들이 가니까 먼저 '형사구나'라고 생각해서, 먼저 "옆으로 가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이야기해서. 자기네들은 '언젠가는 경찰관이 올 것이다'…"
-장영권, 검거 당시 형사
마치 이런 날이 언젠가 올 줄 알았다는 눈치야. 장 형사가 추궁을 하기도 전에 남편은 "전 죽어 마땅한 사람입니다"라며 모든 잘못을 인정해. 도주 시도는커녕, 부부는 순순히 연행됐어. 놀란 건 오히려 농장 쪽이었어.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성실하고 착한 부부 왜 잡아가냐"며 장 형사를 말린 거야.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저씨도 순해 보이고 사람들은 다 착하더라고요 보니까…"
-김영희(가명), 부부를 경찰에 제보
부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울기만 해. 눈은 퉁퉁 붓고 우느라 말도 잘 못해.
"굉장히 울면서 많은 후회를 하면서 언제든지 자기가 처벌받을 각오가 돼있다는 식으로,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더라고요. 꿈에서도 자식이 많이 나타나고 그렇게 하면서 매일 자식들도 꿈에서 울고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더라고요."
-장영권, 검거 당시 형사
▲ 비극의 그날
장 형사는 곧장 포천서로 전화를 걸었어. 수사팀은 완전 비상이야. 부부의 검거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이 떠들썩했어. 자식을 죽인 비정한 부모, 뻔뻔하게 부모만 살아있다며 온갖 비난이 쏟아졌어.
두 사람은 분리돼서 한 명씩 조사를 받았어. 처음에는 남편이 '내가 다 했고, 아내는 가담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어. 이후 아내의 진술은 또 달랐어. 아내는 '아니다. 남편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같이 했다'라고 했어. 부부는 서로, 자기 혼자 저지른 범죄라고 했어.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선처를 바랐어.
이제 사건의 진실을 들여다볼 때야. 여우고개에 묻혀있던 진실은 좀 충격적이야. 남편이 직접 딸들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말했어. 차 사고가 아니었어. 차를 타고 함께 떨어진 건 맞지만, 그때 딸들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거야. 부부의 진술을 따라, 그날로 돌아가 볼게.
네 가족은, 여느 가족보다도 더 단란했대. 결혼 안 한 지인들도 이 가족을 보면 결혼하고 싶다고 할 만큼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가족이었어. 문제가 생긴 건, 돈 때문이었어. 남편의 사업이 잘못되며 집안이 휘청대기 시작했어. 남편은 일용직으로, 아내는 학습지 판매에 뛰어들었어. 그런데 학습지를 무리하게 팔려다가 아내가 빚을 지게 돼. 다른 사람의 명의로 학습지를 사고, 그걸 아내가 메우는 형식으로 매출을 올렸는데, 판매 대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야. 결국 부부는 살던 집도 팔고 친척집을 전전했어. 이맘때부터 남편의 누나 집에서 함께 살게 됐어. 하지만 얹혀살던 누나네 형편도 어려워지자, 당장 살 집을 구해 나가야 하는데, 더 이상 미래가 안 보이더래.
궁지에 몰린 아내는, 해서는 안 될 생각에 사로잡혀.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이제 다 끝낼 거라고. 남편이 말려도 아내는 이미 결심을 굳힌 뒤였어. 남편은 더 말릴 수가 없자, 일단 머리도 식힐 겸 여행을 떠나자고 했어. 두 아이도 함께.
네 가족은 포천으로 갔어. 온천도 가고 갈비도 먹으며, 아이들은 신이 났지. 하지만 이 포천 여행은, 이별 여행이 되고 말아. 아내를 설득하는데 실패했거든. 심지어 홀로 남겨질 두 딸이 눈에 밟혀서 부부는 아이들까지 함께 데려가겠다는 잘못된 결심을 해.
모두 잠든 밤, 남편은 조용히 번개탄에 불을 피웠어. 그리고 눈을 감았어. 그런데, 매캐한 연기에 잠들었던 첫째 딸이 기침을 하며 깼어. 그 소리에 남편도 눈을 떴어. 딸이 괴로워하자 정신이 번쩍 들더래. 곧바로 창문을 열고 번개탄을 모두 내다 버렸어. 하지만, 비극은 막을 수 없었어. 부부는 엉엉 울면서 두 딸을 껴안았어. 그리고, 너무나 잔인한 고백을 했어.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먼저 하늘나라에 가기로 했어. 우리는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는 거야."
그 어린아이들이 뭘 알겠어. 아이들은 눈물을 펑펑 쏟았어. 고작, 11살, 13살이야.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을 거야. 당시에 대해 남편은 "그 순간에 그 아이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렇게 못난 부모도 부모라고…"라고 진술했어. 부부는 아이들도 같은 생각을 한다고 느꼈대. 잘못된 합리화지.
이 때라도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경로를 이탈한 질주는 멈추지 않았고, 두 번째 극단적 시도를 했어. 이번엔 차 안에서. 그런데 아이가 또다시 깨어나. 이번엔 작은 딸이야. 돌이킬 수 있는 또 한 번의 이 기회를, 부부는 잡지 않았어. 남편은 괴로워하는 막내를 향해 손을 뻗었어. 고통을 줄여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아이가 살겠다고 다리를 버둥거리는데, 이번엔 아내가 그 다리를 꽉 감싸 안았어. 부모는 아이들의 간절한 몸부림을 외면했어.
"아이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그 다리를 잡았다. 저는 제3자인데도, 속으로 눈물이 나는데. 이 사람들 무슨 생각이었지? 어린 자기 자녀를 직접 목을 조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너무나 슬픈 이야기죠."
-김중기,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부부는 곧장 아이들을 따라갈 생각이었대. 차를 타고 달리며 방법을 고민하다가 여우고개에 들어선 순간, 여기다 싶더래. 가드레일이 뚫린 구간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고, 정신을 잃었어. 그런데 얼마 후, 부부는 차 안에서 다시 눈을 뜬 거야.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으니까. 죽겠다는 사람이 안전벨트를 왜 맸냐고 추궁하자 남편은 "차에 탔을 때부터 습관적으로 매고 있었다"고 말했어. 정말 극단적인 시도를 한 게 맞냐고 묻자, 부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고 주장했어.
"딱 눈을 떴는데 자기들은 죽지 않아서 계곡에 돌이 많이 있거든요. 돌로 서로 치고 각자 치고, 머리를. 피만 났지 죽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때도 2월이니까 굉장히 춥거든요. '그냥 여기 있으면서 얼어 죽자' 해서 22일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거기 있었다는 거예요."
-김중기,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 뒤로도 여러 번 죽으려고 했지만, 늘 한쪽이 깨어나더라는 거야. 부부에게는 죽는다는 게 너무 힘들었대. 부부는 일단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기회를 보자고, 암묵적인 약속을 했대. 두 사람은 아이들을 우의와 담요로 덮어줬어. 그리고 돗자리를 찢어 메모를 남긴 채 그곳을 떠났어. 아이들만 여우고개에 남기고.
정처 없이 움직이기 시작한 부부. 도중에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공중화장실에서 꽁꽁 언 발도 녹였대.
"살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자기네들은. 항상 자살이라는 단어는 마음속에 두 부부가 새기고 살았다, 그 안에 넣고 살았다, 언제든지 우리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상 몸은 따로니까. 아이러니하죠."
-김중기,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죽지 않은 부부, 왜 자수하지 않았나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부의 말과 행동. 이해하기 힘든 이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은 분들이 있어. 구치소에서 부부를 면담했던 변호인. 마침 부부 변호사가 두 사람의 변호를 맡았는데, 두 변호인에게도 참 어려운 사건이었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딸들만 죽이려고 작정했던 게 아닌가'라는 시각이 있었고, 그리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대체 뭐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는… 그래서 이제 파렴치, 뻔뻔, 부모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나쁜 사람들이라는 시각이 있었고."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옆에서 볼 때는 이 사람이 어마어마한 연기자가 아니면, 나랑 둘이 교도소에 있는데 이렇게까지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진짜로 애들을 보고 싶어 하고. 자기가 진짜 미친 짓을 했다는 자책감이 확실하니까. 이렇게 바보 같은 생각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는 것 같은, 그런 심리 상태였던 것 같아요. 대화를 해보면. 객관적으로 증명할 만한 것들이 사실 없어서 변론은 굉장히 어려웠던 사건이에요."
-최미라,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사건의 쟁점은, 부부가 정말 죽을 계획이었는지야. 처음부터 아이들만 보내려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부부는 2년이 넘도록 도망 다녔어. 자수하지 않고.
"두 사람의 말로는, 자기들은 잡힐 때까지 자기들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계속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가끔 시도를 하고 다시 또 시도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됐는데. 자수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자살을 할 수가 없잖아요. 구속이 되니까. 자수를 한다는 것은 자기들만 살겠다는 거고 자살하는 것을 단념하는 것이어서 자수를 할 수가 없었다…"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자수가 곧 살겠다는 선언 같았다는 부부. 아이들을 따라가는 길만이 유일한 속죄라고 생각했대. 다만, 말 그대로 죽는게 사는 것만큼 참 어려웠대.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저희는 죽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내
"하지만 죽는 걸 실패할 때마다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엔 죽는다는 게 정말 무서워졌어요."
-남편
전문가에 따르면, 극단적인 마음을 결심해도 죽음의 공포는 똑같이 다가온대. 죽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야. 게다가 눈앞에서 누군가 죽는 걸 보게 되면, 죽음의 공포가 더 크게 밀려온다는 거야.
2013년 9월 2일,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어. 부모는 딸들을 살해한 피고인으로 7명의 배심원 앞에 섰어. 남편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최후 진술을 했어. "자식을 죽인 부모 입장에서 모두 잘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정말 사랑했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저 자신이 원망스럽다. 속죄하고 참회하며 살겠다"고. 죽어 마땅하다며 모든 죄를 달게 받겠다던 부부는, 딱 한 가지 부탁을 했대.
"부탁이라고 말을 하면서 했던 게 두 사람에 대한 형이 똑같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한 명이 먼저 출소하고 한 명이 교도소에 조금 더 오래 있게 되면 먼저 출소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걱정된다. 자기가 형을 조금 더 세게 맞아도 좋으니 나머지 한 명과 똑같은 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었어요."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이 부부는 아이들에게만큼이나 서로에 대해서도 큰 죄책감을 갖고 있었어. 한쪽이 먼저 출소하면 또다시 잘못된 생각을 할까 걱정돼서 같은 날 출소하고 싶다는 거야. 이날 배심원석과 방청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대. 부부에 대한 동정이었을까, 아니면 떠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까. 혹은 이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 자체가 너무 슬펐기 때문일까.
재판 결과는, 배심원 7명 모두 '유죄 의견'이었어. 그럼 재판부의 최종 판결은 어떻게 내려졌을까?
"만 12세, 10세에 불과한 아직 인생을 꽃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피해자들이 믿고 따르던 피고인들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빼앗기게 된 점 등에 미루어 피고인들을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 다만 피고인들이 자백하고 속죄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 앞으로 평생 친딸인 피해자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잃게 하였다는 죄책감에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하여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함."
-판결문 내용 中
▲ 뒤늦은 후회
사회가 내린 형량과 별개로, 부부는 마음의 벌을 평생 받으며 살게 되겠지. 변호인도 부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을 보며 두 변호인은 같은 걸 느꼈대. 어렵게나마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야.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사건 중에 이분들이 제일 후회가 컸어요. 범행을 반성하고 뉘우친다 이런 말 하잖아요. 근데 이분들은 확실하게 후회를 했어요. 그거는 명확한 거 같아요."
-최미라, 당시 1심 국선변호인
"저희가 담당했던 그 사건의 피고인들인 엄마랑 아빠도, 다시는 이 땅의 어떤 부모도 자기들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오히려 한 번쯤 그런 선택을 하려고 망설이는 최소한 고민을 하는 그런 부모들이 혹시 있다면, 당신들과 비슷한 생각을 해서 그걸 미련하게 실천에 옮겼던 사람들이 굉장히 후회를 많이 했다고 꼭 알려주고 싶어요."
-신문석, 당시 1심 국선변호인
부부는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아이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어.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책임감이 강했던 큰 딸. 발랄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개구쟁이 작은 딸. 두 아이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을 거야. 아이들은 아주 짧은 생을 살다가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세상을 떠났어.
이 비극의 곳곳에, 안타까운 지점들이 많지. 특히 남편의 진술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었어.
"그동안 아이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못난 모습 안 보이게 잘 키웠습니다. 근데 당장 아내가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사채업자들이 올 수도 있고, 이러다 아이들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았어요. 힘든 꼴 어려운 꼴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말고 차라리 죽자…"
-남편의 피의자 신문조서 中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마음이겠지만, 부모라고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어. 아이들이 10살쯤이면 대화도 가능할 나이인데. 차라리 부부도 아이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눴으면 어땠을까. 그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이 비극에서 더 안타까웠던 건, 사건을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은 이 부부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는 거야. 티를 전혀 안 냈대. 진심으로 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부부에게 없었던 거지.
이런 부부에게 버팀목이 되기로 한 사람이 있어. 바로 부산에서 만난 장영권 형사님이야.
"여러 가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죠. 잘 사는 사람은 몇백만원이 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어렵게 사는 사람은 몇백만원에 대해서 자기 생명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사연인 것 같고. 검거가 되면 모든 범죄자들이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기가 범죄를 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혹시나 이 방송이 나가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장영권 형사
언젠가 이 사회로 돌아올 부부가 또다시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이 돼주고 싶었대. 그 마음이 닿았던 건지, 부부는 수감 중에 장 형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남은 생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해 왔대. 이 두 사람이 그 약속과 다짐을 꼭 지키라는 의미에서, 장 형사는 '꼬꼬무'에 편지 내용을 조금 공유해 줬어.
"지나간 시간을 후회해도 자책해도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자꾸만 후회하고 자책하게 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음의 이유를 생각하면서 지내는 중입니다."
-2016. 8. 편지 내용 中
"죽는다는 게 산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란 사실을 알기에 남은 시간은 정말 의미 있게 잘 살아가겠다 약속드립니다. 그것이 진정한 참회고 속죄란 생각이 듭니다."
-2021.10. 편지 내용 中
부부가 편지에 쓴 이런 마음을 그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장 형사는 이 부부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며 살 거라고 믿는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으나, 부모가 자녀들을 죽이고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간간이 들려오지. 여전히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부모들이 있어. 삶은 누구에게나 귀한 것이고, 본능적으로 삶을 살아내려는 꺾이지 않는 의지가 있어. 아이들의 생명은 아이들 것이지, 부모의 것이 아니야. 그걸 부모라고 해서 마음대로 빼앗을 수는 없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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