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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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동굴 속 기이한 시신으로 발견된 아들…자살로 위조된 이 죽음의 진실은?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5.19 12:13 수정 2023.05.19 14:24 조회 1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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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8일 방송된 '아들을 찾아서-동굴 속 죽음의 비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미연, 배우 진구, 박효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호수가 사라졌다

때는 1986년 6월 22일, 전남 여수. 바닷가에 사는 49살 신정학 씨는 생선을 말려서 파는 일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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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은 다 도시에 살고 노모, 아내와 살고 있어. 그날, 일을 다 마치고 잠자리에 막 들려는데 신정학 씨네 집에 전화가 왔어. 발신인은 서울에 살고 있는 조카야. 조카는 "호수가 사라졌다"고 했어. 그 말을 듣고, 신정학 씨의 가슴이 쿵 내려 앉았어.

"우리 조카한테 전화가 와서, 그날 토욜일인가 일요일인가 그랬는데. 오빠하고 만나서 점심도 먹고 놀기로 했는데, 약속을 했는데 오빠가 안 왔다는 거야. 전화를 해봐도 먹통이라고. 그래서 웬일인가 하고 전화를 해준 거죠 나한테. 깜짝 놀란 거죠. 그때."
-신정학 씨 2012년 인터뷰 中

호수는 사람 이름이야. 신정학 씨의 아들, 신호수. 바로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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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3살이었던 호수는 신정학 씨의 2남 2녀 중 둘째야. 아들로는 첫째인데, 예전엔 아들을 엄청 귀하게 여겼잖아? 호수라는 이름도, 없는 살림에 작명소까지 가서 큰 돈을 주고 지은 이름이야. 그런데 그 귀한 호수가 사라졌다는 거야.

아버지는 다음날 첫 차를 타고 곧장 인천으로 올라갔어. 호수가 인천에 있는 가스 배달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거든. 아버지는 호수가 일하던 가게 직원들한테 호수의 행방을 물었어. 근데 오히려 직원들이 깜짝 놀라. 호수가 없어진 지 열흘이 넘었다고, 가족한테도 연락을 안 했냐며.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호수를 마지막으로 본 건 열흘쯤 전인 6월 11일인데 그날 이상한 일이 있었대. 그날 오후에 낯선 승용차가 가게 앞에 서더니 남자 세 명이 내렸고, 호수를 찾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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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호수에게 빨간 봉투를 건네며 "너 이거 알지?"라고 물었고, 호수는 봉투 안 내용물을 보더니 얼굴이 파랗게 질렸대. 호수가 내용물을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 남자들은 순식간에 호수의 허리띠를 풀더니 허리춤을 꽉 움켜잡고, 호수를 승용차 뒷자리에 밀어 넣었어. 그리고 그대로 차를 타고 사라졌대.

아들한테 나쁜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고 직감한 아버지는 가게 직원들한테 그 남자들이 누군지, 차량 번호는 못 봤는지 다시 물었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직원들이 기억하는 건, 세가지 뿐. '포니2, 회색, 무전기'였어. 그 세 남자가 회색 포니2를 타고 왔는데, 특이하게 차 내부에 무전기가 달려 있었다는 거야. 이 세 남자, 정체가 뭘까?

아버지는 곧장 경찰서로 갔어. 우리 아들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으니 좀 찾아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그 정도 단서로는 수사가 어렵다며 일단 집에 돌아가 있으라고 했어. 다른 경찰서를 가봐도 마찬가지야. 아들도, 아들을 끌고 간 사람들도 찾을 길이 없어. 결국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여수로 돌아갔어.

▲ 호수의 죽음, 자살인가 타살인가

그렇게 애태우기를 며칠째. 신정학 씨네 집으로 여수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 왔어.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이야. 아버지는 허둥지둥 경찰서로 달려갔어. 근데 경찰은 호수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며, 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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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모두 벗고 하얀 팬티만 입고 있어. 목에는 흰 천을 두르고 있고, 신고 있는 흰 양말은 피로 벌겋게 물들었어. 호수가 이 모습으로 죽었다는 거야. 멀쩡하던 아들 호수가, 왜 이런 끔찍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 걸까.

아버지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장소를 찾아갔어. 호수가 사라진 곳은 인천인데, 시신을 찾은 곳은 여수야. 여수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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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신이 발견된 곳은 도로변 바위산 중턱이야. 경사 60도로 사람이 올라가는 것도 힘든 산 비탈, 큰 바위들 사이에 생긴 작은 동굴 안에서 발견됐어. 이 작은 동굴은 근처에 가도, 자세히 안보면 입구가 어딘지도 몰라. 이런 동굴이 여기 있다는 것도 알기 힘든데, 이 안에 있는 시신을 누가 발견했을까? 사실 시신이 발견된 건 기적 같은 우연이었어. 호수를 발견한 건 세 명의 방위병이야.

호수가 사라진지 8일이 지난, 6월 19일. 방위병 세 명은 밤새 근무를 서고 아침에 퇴근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한 명이 배고프니 산딸기를 따먹자고 제안했고, 방위병들은 산딸기를 따러 산속을 이리저리 돌아 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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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 명이 웬 산비둘기가 바위틈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어. '새가 왜 저기로 들어가지? 뭐가 있나?' 하며 가까이 다가갔더니,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의 좁은 구멍이 있어. 호기심에 발을 쓱 집어넣은 방위병은 그대로 굴 속으로 떨어졌어. 이런데 동굴이 있었다니, 신기해하며 동굴을 쓱 둘러보는데 그 순간, 웬 남자가 팬티만 입고 서있는 걸 발견했어. 방위병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 나왔어. 밖에 있던 다른 방위병이 다시 머리를 들이밀어 동굴 안을 봤어. 그 팬티 차림 사람의 발이 보였는데, 그 발은 공중에 떠 있었어. 목을 맨 시신을 마주한 거야.

방위병들은 곧장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했어. 출동한 경찰은, 시신의 목에 묶인 끈을 잘라내고 시신을 동굴 밖으로 옮겼어. 밝은 곳에서 보니, 목에 매어 있던 끈은 입고 있던 티셔츠와 바지를 연결해서 만든 거야. 그래서 팬티와 양말 차림으로 발견된 거지. 아까 보여준 시신 사진도, 이때 동굴 밖에서 촬영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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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그 작은 동굴에서 자살했다니, 아버지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아버지는 일단 시신을 보여달라 했어. 그런데 가족들 동의도 안 구하고 벌써 땅에 묻었대. 더 기가 막힌 건, 시신이 발견된 게 8일 전이라는 거야. 호수의 시신을 발견하고 이틀 후에 매장했대. 가족들에게 연락도 없이, 마음대로 시신을 매장했다? 경찰이 그렇게 한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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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모두 동굴 안에서 발견된 호수의 소지품이야. 타다 남은 수첩 표지랑, 주민등록증 겉면의 비닐이야.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만한 것들이 다 타버려서, 지문으로만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거야. 그런데 그 지문 확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시신을 매장했어. 당시 경찰은 그 이유를, '자살이 확실해 보여서' 라고 했어. 정황을 보면, 목을 맨 채로 발견됐고, 눈에 띄는 외상이 없었다는 거야. 피가 많이 난 걸로 보이는 정강이는, 험한 바위산을 오르다 생긴 상처라 판단했대. 그리고 시신을 감정한 의사도, 눈으로 검안하고 자살이라고 판단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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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충격이었죠. '동굴 속에 있는 거 데려와서 매장했다' 그렇게 통보를 받았으니, 가족들이 어떻겠어요.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자살이 아니라고 들고 일어선 거죠."
-신숙희, 故신호수의 여동생

신정학 씨는 이대로 호수 장례는 절대 못 치른다고 항의했어. 그리고 시신을 발견한 방위병들을 찾아가 시신에서 이상한 점을 못 봤냐고 물었어. 너무 어둡고 놀라서 자세히 못 봤다는 방위병들은 한가지 의미심장한 말을 했어. "그 남자 묶여 있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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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시신은 허리띠로 팔과 몸통이 묶여 있었어.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확신했어. 자기 몸을 스스로 묶고 자살할 수는 없다, 누군가 호수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을 했다고.

근데 경찰은 왜, 허리띠로 묶인 걸 보고도 자살이라고 했을까? 이건 당시 경찰이 작성한 실황조사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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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진술'을 보면, "혁대로 팔을 맨 것은 목에 걸 당시에 양손으로 바위를 붙들면 자살에 성공을 못하므로, 이를 성공하기 위해 양팔꿈치 위에 혼자서 묶은 것"이라며 "자살로 판명됨"이라 쓰여있어. 놀랍게도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 중에 자기 몸을 묶는 경우가 있기도 하대. 다만 자살로 결론 내려면, 스스로 그렇게 묶을 수 있는지 반드시 검증이 필요해. 호수처럼 혼자서 허리띠로 팔과 몸통을 같이 묶은 후 죽는 게 가능할까. 이건 당시 경찰이 그린 현장 상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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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가지로 만든 끈을 매단 곳은 동굴 천장의 바위틈이야.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는 2m 50cm. 신호수의 키는 165cm로 작은 편이야. 지난 2012년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이 동굴에서 경찰 보고서와 동일한 조건으로 당시 상황을 실험한 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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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을 진행해보니, 동굴 천장에 끈을 걸기도 쉽지 않아. 결국 장비를 타고 올라가 끈을 천장에 걸었어. 호수가 30cm 돌을 딛고 올라가 목을 맸다는 경찰 보고서. 실험자는 먼저 허리띠로 몸과 팔을 묶은 후, 돌 위에 올라가서 천장에 매단 끈에 목을 매는 걸 시도했어. 하지만 실패했어. 이번엔 순서를 반대로 시도해 봤어. 돌 위에 올라가 목을 먼저 매고, 재빨리 허리띠로 몸을 묶는 방식으로. 이건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었어. 그렇게 어려운 방법으로, 굳이 이 동굴까지 와서 죽으려 했을까.

근데 만약 타살이라도, 시신을 들고 그 험한 바위산을 오르는 것도 게 가능할까. 호수의 시신은 발목을 빼고는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어. 경찰은 시신을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어. 경찰은 발견되기 힘든 동굴을 선택한 점,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소지품을 불태운 점,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자살이라 결론 내렸어. 게다가 이 장소가 여수에 있다는 것도 자살의 증거래. 여수는 호수의 고향이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다를 수 밖에 없어.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했다면 옷을 묶을 게 아니라 애초에 밧줄을 가져갔어야지. 그리고 호수는 여수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4살 때 여수를 떠나 그 뒤로 쭉 서울과 인천에서 살았어. 부모님이 다시 여수로 귀향한 것도, 불과 3년 전이야.

"여수는, 저희들이 어렸을 때 거기서 태어났어도 거기서 살진 않았어요. 저희 초등학교도 다 서울에서 다녔어요. 저희는 그런 산이 있는 것도 몰랐어요. 거기서 안 살았으니까."
-신순희, 故신호수 누나

심지어 그 동굴은, 아버지도, 근처 주민들도 몰랐던 곳이야. 아버지 생각에, 호수도 절대 그 동굴을 알 리가 없어. 호수의 미스터리한 죽음. 아버지는 죽은 아들한테 굳게 약속했어. "호수야, 네가 왜 죽었는지 이 아빠가 꼭 밝혀줄게"라고.

▲ 세 남자의 정체

아버지는 호수를 '무전기를 단 회색 포니2'에 태워 데려갔다는 세 남자부터 찾아 나섰어. 인천에 있는 가스 배달 업체를 다시 찾아가서, 직원들한테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기억나는 걸 전부 이야기해달라 부탁했어. 그러자 직원 한 명이 "그날 아침에,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었다"고 말해줬어. 세 남자가 가스 배달 업체를 찾아오기 직전에, 근처 파출소에서 전화가 와서 가게 위치를 물었다는 거야. 아버지는 그 파출소로 찾아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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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에서 알아보고 온 것 같다'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파출소로 갔어요. 가서 근무자한테 물어보니까 '봤다' 이거야. 똑같이 말을 해요. '포니2, 색은 회색, 무전기 부착'을 했는데 번호판은 못 봤다는 거야. 근데 파출소 앞에 차를 대고 세 명이 들어와서 다리 꼬고 앉아서, 전화를 자기 맘대로 쓰고…"
-신정학, 故신호수의 아버지

파출소에서 그 남자들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서울에서 온 경찰'이라고 했대. 알고보니 호수는 서울 경찰한테 연행당했던 거야. 근데 거기까지가 전부야. 차 번호도 모르고, 그들이 어디 소속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야. 이 세 남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버지는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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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찰이라고 한 3인의 형사란 어떤 사람들이며 번호 미상인 회색 포니2 무전기 부착 차량을 발견하여야 하며, 가급적 빠른 기일 내에 관계 기관에서 최대 조사로써 규명 바라오며 이에 진정합니다."
-신정학 씨가 제출한 진정서 中

아버지는 청와대 뿐만 아니라, 경찰, 검찰, 법무부장관, 국회까지 다 진정서를 보냈어. 그랬더니 이런 회신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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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여부 확인한 바, 산하 서부경찰서 대공과에서 국보법 제7조 5항 위반혐의 사실로 86.6.11.14:00경 인천에서 임의동행"

'대공과'는 간첩사건을 다루는 곳이야. 그런 대공과에서 왜 호수를 데려갔을까? 세 남자가 호수에게 보여줬던 '빨간 봉투' 기억나? 답은 이 안에 들어있어. 그 안에는 '삐라'가 들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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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는 남북이 서로 심리전 용도로 살포하는 전단지야. 호수가 살던 자취방의 장판 아래에서 이 삐라가 나왔어. 무려 34장이 있었대. 수집 목적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삐라 소지는 그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이야. 그럼 호수는 왜 삐라를 모았을까?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어. 당시 호수는 방위병이었는데, 이 삐라를 모아서 제출하면 포상 휴가를 보내줬대. 호수는 휴가를 위해 삐라를 모았다고, 대공과 형사들에게 말했어. 형사들은 이 말을 듣고, 호수를 잡은지 3시간 만에 훈방조치 했다고 주장했어.

오히려 당시 경찰청 수사관이 작성한 내용을 보면, 호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했다고 쓰여있어. 사실 호수네 형편이 좋지 않았던 건 맞아. 그래서 호수는 성적이 좋았지만,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냈어.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그때 사실 경제사정이 나빠졌어요. 그래서 내가 호수한테 그랬죠. '아무 신경 쓰지 말고 학교를 진학해라'라고. 그랬더니 호수가 좋은 말을 해주더라고 어리더라도. 검정고시를 본 후 대학에 진학할 거라고 얘기하더라고."
-신정학, 故신호수의 아버지

그 후 호수는 닥치는대로 일을 했고, 전역 후 가스 배달 업체에 취직했어. 경찰은 호수가 이런 처지를 비관했다는 거야. 하지만 아버지가 보기엔, 절대 아니야. 호수는 일하면서도 틈틈이 공부해 검정고시에도 합격했고, 대학 진학도 준비하고 있었어. 아버지는 이런 성격의 호수가 그런 선택을 했을 리가 없다고 믿었어. 그리고 호수가 경찰서에서 가혹행위를 당했고, 그러다 숨지자 동굴에 시신을 은폐했을 거라고 추측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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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시신 부검을 요청했어. 땅에 묻힌 지 17일만에 호수의 시신이 밖으로 나왔어. 하지만 부검 결과는 '타살 혐의점 없음', 즉 자살로 나왔어.

▲ 호수는 '공작' 대상이었나

아버지는 호수를 연행했던 세 형사를 고소했어. 상해치사, 독직폭행,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고소할 만한 증거가 없었지만, 그 당시에 엄청난 사실이 공개됐어. 아버지가 집요하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가운데, 5공 정권이 몰락하면서 그동안 숨겨진 수많은 검,경찰 자료들이 공개된 거야.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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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공작'. 신호수를 연행한 경찰이 쓴 보고서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은 그 삐라가 발견된 호수의 자취방이 있던 곳이야. 이 보고서 첫 장을 보면, '북괴 불온 선전물 습득 신고사항 접수보고' 날짜가 85년 9월 8일이라 나와.

호수가 연행된 날은, 86년 6월 11일. 삐라가 발견된 날은, 85년 9월 8일이야. 삐라 발견부터 연행까지, 9개월 정도 걸렸어. 장흥공작 보고서를 보면, 삐라가 발견된 지 6일 후인 85년 9월 14일에 신호수의 이름이 최초로 등장해. 함께 살던 룸메이트 친구의 이름도 발견돼. '공작'의 대상이 된 거야.

그리고 한달 후 쯤인 10월 19일에 담당 형사는 룸메이트를 조사해. 룸메이트는 호수랑 같은 부대에 있었던 방위병이었어. 룸메이트는 호수가 휴가 때문에 삐라를 모으는 걸 봤다고 사실대로 말했어. 담당 형사는 호수가 있던 군부대로 찾아갔어. 거기서도 삐라 수집이 휴가 때문이었다는 걸 확인했어.

이렇게 호수의 삐라 수집은 별 일이 아닌 걸로 확인됐어. 그런데 혐의가 없는데, 조사는 중단되지 않았어. 8개월이나 지난 후에 호수를 대공과에서 연행해 갔잖아. 그 이유가 보고서 마지막에 적혀있어.

"공작 평가. 1985년 5월경 방위병 동료들에게 불온 전단을 보여주어 탐독게 한 사실. 군생활이 고달프다고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등 대상자는 불순분자와 연계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됨으로 공작 가치가 있다고 판단."

삐라를 방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군생활이 고달프다고 불평했으니까. 이런 이유로 대공 수사과에서 '공작가치가 있다'고 한 거야. 이후 경찰은, 신호수의 가족 관계, 전과 기록 등을 전부 조사했어. 그리고 1986년 6월 11일, 세 형사가 호수를 찾아갔던 거야. 호수를 연행할 때 허리띠를 풀고 허리춤을 부여잡는 방식으로 데려갔잖아? 이건, 중범죄자를 연행하는 방식이래.

그렇게 9개월이나 몰래 수사했던 호수를, 불과 3시간만에 풀어줬다는 경찰. 심지어 형사는 호수를 훈방조치하며, 호수가 경찰서 주변 지리를 모른다고 해서 서울역에 자기 차로 데려다 줬다고 했어. 차비도 없다고 해서 3천원까지 줘서 보냈대.

아버지가 이 말을 믿겠어? 호수는 서울에서 어릴 때부터 살았어. 심지어 서부경찰서 주변은 어린시절 호수 가족이 살았던 곳이야. 그런데 지리를 모른다고? 그리고 호수한테 차비가 없었다는 것도 수상해. 가스 배달 업체 직원들에 따르면, 당시 호수한테 현금 12만원이 있었대. 전날 수금한 돈을 갑자기 연행되는 바람에 그대로 갖고 갔으니, 수중에 돈이 있었다는 거야.

의심스러운 건 또 있어. 경찰 말대로라면, 호수는 연행 당일인 6월 11일에 훈방됐어. 그리고 부검 결과, 사망 추정일은 6월 12일에서 14일 사이야. 만약에 호수가 자살했다면, 사망 추정일인 그 시기에 누군가 호수를 목격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경찰서를 나온 후, 호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납득하기 힘든 주장에, 세 형사를 고소한 아버지. 하지만 이번에도 검찰 수사 결과 '타살혐의점 없음'이라고 나왔어. 아버지는 이번에도 답을 찾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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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어요. 생때 같은 자식을 죽였는데, 내가 뭐라 하겠습니까 자식한테.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진상을 밝혀줘야, 저승 가서 만나더라도 내 할 일을 다했다는 거…"
-신정학, 故신호수 아버지

▲ 자식 잃은 부모들, 힘을 모으다

아버지는 생계도 포기한 채 사건에만 매달렸어. 아들이 간첩으로 수사를 받았다고 하니, 손 내미는 사람도 없었어. 그런데 그 때, 아버지는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를 만나게 돼. '이소선, 박정기, 배은심' 이 분들의 성함 들어본 적 있어? 이 이름이 생소하다면,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이름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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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아. 세 열사의 부모님들 성함이야. 독재정권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 그리고 자식의 죽음 이유조차 모르는 부모들까지. 신정학 씨처럼 혼자 애태우던 부모들이, 함께 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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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은 십시일반 돈을 걷어, 작은 집을 마련했어. 그 집의 이름은, '한울삶'. 한 울타리의 삶이란 뜻이야. 집 한쪽 벽에는 자식들의 영정을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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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은 한울삶에서 함께 밥도 해먹고, 함께 울고, 자식 살았을 때 추억을 얘기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나눴어. 그러면서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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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자식의 영정을 품에 안고 거리로 나섰어. 그리고 죽음의 의문을 풀어달라고, 진실을 알려달라고 외쳤어. 처음에는 135일, 다음엔 422일간 농성을 했어. 호수 아버지는 늘 시위대의 맨 앞에 섰어. 경찰에 몇 번이나 연행되면서도, 멈추지 않았어. 그리고 싸우는 동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어. 그것은 아들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아버지가 싸우는 방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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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0년이 넘게 싸운 결과 성과는 있었어. 1999년 12월에,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어. 그리고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해. 신호수 사건도 조사 대상이 됐어. 아버지는 아들의 무덤을 찾아가 "호수야 이번엔 꼭 네 한을 풀어줄게"라고 말했어. 그리고 나서 아들의 유골을 다시 꺼냈어. 사망한지 16년만에, 다시 부검을 하기로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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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원인에 대한 분석은 세 군데서 하기로 했어. 국과수, 서울대 법의학부, 그리고 일본 도쿄 의과대학. 먼저 도쿄 의과대학의 가미야마 명예교수는 한국 의문사 사건만 30건 이상 감정했던 법의학자야. 가미야마 명예교수는 호수의 다리 상처가 원형 족쇄 같은 특수한 도구의 압박으로 인해 생긴 상처라 판단했어. 또 무릎에 묻은 것은 바위에서 나오는 가루라며, 살아있는 채로 바위에 무릎을 꿇렸을 거라 추정했어. 동굴 주변에서 고문이나 폭행이 이뤄져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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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3자가 관여한 죽음, 즉 타살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가미야마 명예교수, 도쿄 의과대학 의학부

국과수와 서울대 법의학부는 같은 의견이 나왔어. '자살이냐 타살이냐, 말하기 어렵다'는 거야.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백골화 된 시신으로 명확한 답을 얻기 힘들대. 그리고 당시 부검 기록, 수사 기록을 다시 검토했는데 가장 중요한 게 없다는 거야. 바로 '현장 사진'. 남은 건 동굴 밖의 사진 뿐이야. 동굴 안에서 시신이 발견됐을 당시의 사진은 없어. 심지어 당시 부검도, 곧바로 한 게 아니야. 아버지의 항의로 매장 후 17일 만에 다시 꺼내 부검한거라, 그마저도 기록이 상세하지 않아서 사망 원인을 단정할 수 없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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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이번에도 '진상규명 불능'으로 나왔어. 아버지가 호수한테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약속은 또 지켜지지 못했어. 결국 아무 것도 밝히지 못한 채, 아버지는 아들의 유골을 다시 땅 속에 묻어야만 했어.

▲ 23년만에 인정 받은 진실

이렇게 절망한 아버지 앞에, 다시 기회가 찾아와. 2006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다시 조사를 시작했어. 그런데 사실 신호수 사건은, 조사관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사건이었대.

꼬꼬무

"올게 왔구나란 생각이었어요. 이미 의문사 사건들 같은 경우에는 신호수 사건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수십년이 지났거나 이미 증거들도 다 한 번씩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에 굉장히 밝히기 어려운 사건들이라는 걸 저희가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처음 저한테 이 사건이 넘어올 때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란 걱정부터 앞섰죠."
-변상철, 당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있을까' 하는 부담 속 이번엔, 조사의 방향을 바꿨어. 신호수가 경찰에 연행 됐을 당시, 그 경찰서에 근무했던 다른 형사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거야. 그렇게 당시 주요 수사관들 이외에 동료 수사관들에 관한 조사를 하던 중에, 의미있는 진술들이 나왔어.

"제가 밖에 갔다가 들어와 보니 신호수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더라고요. 두 손을 무릎 위에 곧게 펴고 바짝 긴장하여 있었습니다."
-A수사관
"사무실 안에 숙직실로 만들어 놓은 작은 방 안에 신호수가 있었습니다. 누구냐 물으니, 북한산에서 방위 근무했던 사람인데 불온물을 가지고 있다 해서 인천에 가서 잡아왔다고 하더라고요."
-B수사관

특히 "신호수가 경찰서에서 며칠간 조사를 받았나"는 질문에 나온 답변이 결정적이었어.

꼬꼬무

"제가 기억하기로는 약 3일 가량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공과 형사는, 3시간만에 훈방했다고 했잖아. 정반대의 진술이야. 호수를 처음 연행한 날은, 6월 11일. 만일 3일간 경찰서에 있었다면? 6월 14일까지야. 호수의 사망 추정 날짜는 6월 12일에서 14일 사이지. 그럼 호수의 사망 추정 시점에, 경찰서 내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거지. 호수가 경찰서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생긴 거야.

"서부서에서 신호수가 이미 사망을 해서 밖으로 나왔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른 거죠."
-변상철, 당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

이번에는 다른 조사 결과가 나왔을까? 진실과화해위원회의 결정문이야.

"신호수가 3일가량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동료 수사관의 진술과 사망진단서 및 감정서에 비추어 보면, 신호수는 사망 직전까지 경찰서의 공권력 내에 존재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장흥공작을 통해 신호수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과정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신호수가 사망에 이르자, 이를 자살로 위장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진실과화해위원회 결정문(2009.11.10)

꼬꼬무

"제3자의 개입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거였죠. 앞선 조사들에서 계속 자살이라고 단정을 했던 건, 제3자의 개입에 대한 증거가 따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살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제3자가 개입할 수 잇는 여지가 있다'라는 게 새롭게 드러났던 거죠."
-변상철, 당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

드디어 아버지는 '아들이 왜 죽었냐'에 대한 다른 대답을 23년 만에 듣게 됐어. 전과 다른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이제야 호수에게 할 말이 좀 생겼다"라고 말했어.

▲ 끝나지 않은 질문

아버지는 이 진실과화해위원회 결정이 난 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 아버지에겐 아직 질문이 남아있거든. 호수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정확히 모르니까. 법원은 영장 없이 진행된 불법 체포와 구금을 인정했어. 그리고 국가의 진상규명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도 인정했어. 하지만 경찰의 가혹행위로 사망했다는 건 인정하지 않았어.

하지만, 거기서 아버지는 질문을 멈추셨어. 이제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지셨거든. 아버지는 최근에 치매 진단을 받으셨어. 아직 심각하진 않지만,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어. 그래도 아버지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는게 있어.

꼬꼬무

"우리 아들 이름 짓는다고, 쌀 두 가마니 주고 이름 지은 거예요. 신호수라고. 나무 수에 범 호자. 호수라고 지으면 오래 산다고 그랬는데 빨리 죽어버리니까 뭐 소용 있어요. 그렇게 이름을 높게 지어버려서 빨리 죽어버렸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실은. 이름이 얼마나 높아요."
-신정학, 故신호수 아버지

아버지는 여전히 생전 아들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 하지만 그런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아픔은 영원히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어. 아버지는 아들을 먼저 보냈지만, 평생 아들과 함께 했어.

꼬꼬무

"아들 얼굴 기억나죠. 나처럼 이렇지 않고, 우리 아들 잘생겼어요. 자기 아들 좋다고 하는 사람들 팔불출이라고 하잖아요. 내 아들이 잘했다는 그런 말은 못 해요. 공부도 잘했고. 요새 가만 생각하면, 우리 아들이 살았으면 지금 어떻게 되었겠나. 이런 생각도 하고… 지금도 아른아른 하지. 얘기를 하니까 생각이 나는 거지 또렷이…"

-신정학, 故신호수 아버지

꼬꼬무

이 산더미 같은 서류는, 그동안 아버지가 모아온 호수 사건의 서류들이야. 아들이 사라졌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내 아들이 왜 죽음에 이르렀나' 지난 37년간 끊임없이 물었어. 의문사가 그 어떤 죽음보다도 슬픈 이유는, 그 답 또한 남은 자들이 찾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야. 지금도,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는 죽음들이 있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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