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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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지하 125m에 매몰, 16일 만에 살아 돌아온 남자…어떻게 버텼나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4.28 11:31 수정 2023.04.28 11:35 조회 6,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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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7일 방송된 '나를 꺼내줘-생존 좌표, 지하 125m'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축구선수 출신 방송인 이동국, 배우 신소율, 김보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광산이 무너졌다

때는 1967년 8월 22일, 충남 청양이야.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 동네가 환해. 집집마다 출근 준비로 정신이 없거든. 김창선 씨도 집을 나설 준비를 마쳤어. 바로 이 분이 창선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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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36세. 딸 셋과 아들 둘, 5남매를 둔 아빠야. 첫째가 13살, 막내는 5살이야. 출근을 앞두고 창선 씨는 화투패로 오늘의 운세를 점쳤어. 재미로 보는 거지만, 창선 씨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아. '근심, 걱정'과 '어둠, 밤'을 의미하는 화투 점괘가 나왔거든. 게다가 간밤에 꿈자리도 찝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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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아내가 준비한 도시락을 창선 씨에게 내밀어. 살짝 열어본 창선 씨는 "나 짠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라며 불평했어. 싫어하는 반찬이 도시락에 들어 있던 거야. 꿈자리도 안 좋고, 운세도 뒤숭숭한데, 도시락에는 싫어하는 반찬까지. 아침부터 '꽝 삼단 콤보'야. 창선 씨는 인상을 팍 쓰면서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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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고, 잠에서 깬 첫째딸 정옥이는 친구와 놀기 위해 밖에 나갔어. 당시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는 광산에서 캔 광물을 실어나르는 '광차'를 타고 노는 게 인기였어. '광차'가 있다면, 정옥이네 동네가 어떤 곳인지 알겠지? '구봉광산'이라는 큰 금광이 있던 광산촌이야. 정옥이 아빠 창선 씨의 직업은 광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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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구봉광산의 모습이야. 지금은 폐광되었지만, 당시엔 한국의 대표 광산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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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60% 이상이라고 했는데 금 캐는 양이. 광부가 거즌 천 여명 정도 된다고 했어요."
-김익환, 당시 구봉광산 광부

"한 집에서 1~2명씩은 장정 있는 대로 (광산에) 다녔죠."
-고성태, 당시 구봉광산 광부

정옥이는 광차를 타며 친구랑 신나게 놀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집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 '무슨 일이 났나' 하고 뛰어가 봤더니, 어른들이 정옥이를 보고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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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웅성웅성 광산에 사고 났다고. 굴이 무너졌대. 이제 뭐 자세히 알아보려고도 안하고. '그런 일이 있나?' 그랬지. 그랬더니 이제 엄마가 막 울고 가시고. 아, 아버지구나…"
-김정옥, 김창선 씨 첫째 딸

정옥이 아버지 창선 씨가 사고를 당한 거야. 엄마는 우느라 말도 제대로 못해. 혹시 광산 안이 어떻게 생긴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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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현재는 폐광된 광산의 내부 모습이야. 좁은 갱도, 사방을 둘러싼 바위들, 나무로 만든 지지대, 곳곳에서 흐르는 지하수. 사진만 봐도 어둡고 위험한 느낌이지? 만약 이런 광산이 무너진다면 어떨까? 아주 깊은 땅 속에 단단한 바위를 파고, 그 속에 길을 내서 갱도를 만들어. 갱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우고. 이 지지대가 바위와 흙을 다 막아주는 건데, 이 지지대가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생매장 되는 거지.

광산촌의 분위기는 말도 못해. 집집마다 광부들이 무사히 귀가 했는지 확인했어. 확인 결과, 구봉광산에 갇힌 사람은 단 한 명. 정옥이 아버지 창선 씨 뿐이었어. 아빠가 걱정되는 마음에 정옥이도 눈물이 터졌어. 엄마는 아빠를 찾겠다고 광산으로 가셨고, 정옥이는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집에 남았어.

▲ 지하 125m 아래서 걸려온 전화

아무 소식 없이 다음날이 밝았어. 빨리 구조작업을 시작해야하는데 오히려 조용해. 구조 장비가 없는 거야. 게다가 갱도가 무너지면서, 오르내릴 때 타는 케이지도 무너졌어. 상황을 파악하러 지하로 내려가볼 수도 없는 거야. "구조 장비하고 인력 요청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봅시다"라는 말만 들리고, 광산 회사 쪽에서는 서두르는 기미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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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우리나라 광산 산업은 그야말로 붐이었어. 광부 수도 많고 채탄량도 많아 세계 2위 수준의 광업이었어. 그만큼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구조작업을 한 번 할 때마다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야. 애써 구조를 해도, 시신을 건지는 경우가 허다 했어. 그러니까 회사는 일부러 구조를 미루거나, 사고를 모른 척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대. 구조비용보다 나중에 사망보상금을 주는 게 더 낫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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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된 정옥이 아빠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잖아? 그러니 회사 입장에서는 생사도 모르는 이 한 사람 때문에 큰 돈을 쓸 수 없는 거지. 그럼 가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정옥이네는 초상집 분위기야. 창선 씨를 구해달라 회사에 사정해보고 울고 난리를 쳐도, 상황은 변하는 게 없어.

그렇게 또 하루가 갔어. 사고가 난 지 벌써 3일째. 그런데 광산 상황은 달라졌어. 놀랍게도 평소처럼 채굴 작업을 다시 시작했어. 무너진 쪽 말고 옆에 다른 갱에서 작업을 시작한 거야. 광부가 천 여명이나 되는데,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니, 마냥 손 놓고 쉴 수가 없었어. 채굴 작업을 하다 보면 발파 작업도 한단 말이야. 정옥이 아버지가 만약 살아있어도, 연쇄 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지. 가족들의 타는 속도 모른 채, 광산은 바삐 움직여. 그렇게 또 하루가 흘렀어.

8월 25일. 사고 발생 4일째. 광산 사무실에서는 직원이 쉴 새 없이 전화를 받고 있어. 사무실에서 버튼을 조작해줘야 갱 안의 작업이 진행되는 시스템이라, 사무실에는 갱도 내에서 걸려오는 전화벨이 계속 울려. 그런데, 한 전화를 받은 직원이 소스라치게 놀랐어. 이런 전화가 걸려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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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김창선입니다. 저 살아있어요. 저 좀 꺼내주세요. 살려주세요."

정옥이 아버지 창선 씨가 죽지않고 살아서, 직접 전화를 걸어온 거야. 전화를 받은 직원은 귀신한테 전화가 온 줄 알았대. 도대체 이 갱 안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사고가 났던 3일 전으로 돌아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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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구봉광산 일부를 재현한 모형이야. 갱이 수직으로 뚫린 수직광산인데, 창선 씨는 이 곳에서 배수공으로 일했어. 갱도 안에 물줄기가 있어 지하수가 고이거든. 광물을 팔 때 방해가 되니까, 펌프로 물을 빼내는 일을 하는 거야.

창선 씨는 평소처럼 갱도로 내려가서 배수 펌프를 곳곳에서 점검하고, 물이 잘 빠지나 확인했어. 한참 일하다 보니 점심시간이야. 같이 일하던 배수공이 셋인데, 갱 밖으로 나가서 점심을 먹자고 해. 창선 씨는 고민하다가 그냥 여기서 먹겠다며, 제1배수장에 자리를 잡았어. 1평 정도 되는 공간인데 혼자 밥 먹기엔 충분해. 창선 씨가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을 막 꺼내려던 순간, 광산이 무너졌고 창선 씨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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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간신히 정신을 차렸는데, 눈이며 코며 너무 매워. 돌가루에 흙먼지에 한 치 앞이 안 보여. 창선 씨는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입구 쪽으로 더듬더듬 발걸음을 옮겼어. 그런데 입구가 꽉 막혔어. 갱도가 무너진 잔해들로 가득 찬 거야. 창선 씨는 배수장 안에 꼼짝 없이 갇혔어. 그래도 목숨은 건졌으니 천만다행이야. 만약 배수장 밖에 있었다면? 이미 창선 씨는 목숨을 잃었을 수 있어.

살려달라 소리쳐도, 듣는 사람은 없어. 창선 씨가 있는 제1배수장은 지하 125m 위치에 있어. 50층짜리 건물을 거꾸로 뒤집어서 박은 만큼의 깊이야. 창선 씨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어.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살펴봤어.

아내가 싸 준 도시락, 잡지 한 권, 주머니에 있던 현금, 연필이 있었어. 창선 씨는 뭐가 더 없을까 주변을 막 더듬기 시작해. 그런데 손에 뭔가 잡혀. 일명 '삐삐선'이라 불리던 전선이야. 배수장 안에 군용 전화기가 있었는데, 이 전화기를 연결하는 선이야. 그런데 사고 때문에 전선이 끊어졌어. 창선 씨는 그 때부터 불빛 하나 없는 암흑 속에서 삐삐선만 만졌어. 이로 깨물어 전선을 벗기고, 구리선을 이리저리 꼬아보고. 됐다 싶으면 레버를 돌려 전화를 계속 걸어 봤어. 하지만 계속 실패했어. 그래도 창선 씨는 포기하지 않았어. 창선 씨는 해병대 7기, 6.25 참전용사야. 그것도 통신병 출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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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없다'는 해병대 정신으로 전화기 고치기에 며칠을 매달렸어. 그러던 4일 째, 드디어 광산 사무실에 전화를 걸 수 있었던 거야.

▲ "반드시 살려야 한다" 국민의 바람이 구봉 광산으로

창선 씨가 살아있는 걸 확인했으니, 구조는 시작됐을까? 아니, 달라지는 게 없어. 구조 장비가 아직도 안 왔거든. 당시는 1960년대잖아. 지금처럼 연락이 빠르지도 않고, 전국에 구조 장비도 얼마 없었어. 보통 재난 구조의 골든아워는 72시간이야. 그 시간을 넘기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져. 그런데 창선 씨가 매몰된 후 이미 80시간이 지났어. 가족들은 창선 씨가 살아있는 걸 아는데 못 꺼낸다고 하니 더 애가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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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더 지나 사고 5일째. 그런데 현장 분위기가 또 달라졌어. 광산 앞에 사람이 가득해. 창선 씨의 사고 소식이 뉴스에 보도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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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사고는 경찰에서 제일 먼저 입수를 합니다. 경찰서장이 나한테, '구봉광산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충남 청양 구봉광산에 광부 한 사람이 갇혀있다', '수직 갱에 갇혀 있는데, 광산 측에서는 큰 사고로 알고 있다'고 알렸죠."
-윤여승, 당시 동아일보 기자

윤 기자가 라디오 뉴스로 현장 상황을 중계하고 신문에 특종 기사를 냈어. 그걸 본 다른 신문사 기자들도 줄줄이 청양으로 내려왔어. 당시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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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갱 속에서 광부가 직접 생존 소식을 알렸다는 게, 얼마나 감동스토리야. 그 시절에 광부라고 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 갱도로 내려간 산업 전사들이야. '불굴의 의지', '절망 속 희망' 딱 기사거리잖아. 그 때부터 신문, 라디오에서 김창선 씨 소식이 쏟아져. 김창선 씨의 생환은 한 가족의 일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바람이 된 거야. 모두가 창선 씨의 구조 소식을 바랐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장비와 구조 인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어. 수직 갱 입구에 캡슐이 설치됐어. 캡슐에 사람이 타고 위 아래로 왔다갔다 하는 거야. 캡슐이 내려가서 멈춰선 곳은, 지하 75m 지점이야. 창선 씨가 있는 곳은 지하 125m이잖아. 그럼 이 갱도를 막고 있는 흙더미의 두께가 50m 정도 되겠지. 그걸 다 뚫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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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구조반이 편성되고 작업이 시작됐어. 캡슐을 타고 내려가서, 꽉 막힌 잔해물을 꺼내는 거야. 상당 시간 소요되는 구조작업. 공간이 좁아서 여럿이 작업할 수도 없어. 그렇다고 급하게 해서는 안돼. 잔해들을 함부로 건들면 2차 붕괴 위험이 있거든. 이러다 보니, 하루 최대 2m 정도만 파 내려갈 수 있는 거야. 그럼 50m까지 가려면, 한달 가까이 걸린다는 거야. 그 때까지 창선 씨가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구조작업에 좋은 반전이 있었어. 막히지 않은 빈 공간이 있었던 거야. 지지대에 걸려 그 밑으로는 막히지 않았고, 그래서 15m 정도만 걷어내면 창선 씨를 구할 수 있는 거야. 그나마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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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창선 씨 상황은 어떨까? 앉을 힘도 없어서 누워있어. 천장을 올려다 보는데 막막해. 그때, 배수장으로 전화가 걸려왔어. "정옥이 아버지 괜찮아요?"라고 묻는 아내 목소리야. 눈이 번쩍 뜨여. 아내는 사람들 수백명이 모여 당신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으니, 살아나올 생각만 하라고 당부했어. 창선 씨는 구조 소식을 들으니 힘이나. 당시 극적으로 녹음된 창선 씨 목소리가 있어. 근데 창선 씨는 온통 가족 생각 뿐이야.

"아버지가 없는 동안에라도요. 그전같이 싸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가지고 말이요. 어머님한테 효도해서요…"

-당시 김창선 씨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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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드니까 배가 고파와. 창선 씨한테는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이 있잖아. 아내가 처음에 줬을 땐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했는데, 사실 그 반찬이 아니었다면 큰일날 뻔 했어. 창선 씨한테 꼭 필요한, '염분'이 가득한 반찬이었거든. 바로 '꼴뚜기 젓갈'이었어. 창선 씨는 이 꼴뚜기 젓갈을 조금씩 나눴어. 또 염분 말고 중요한 '수분'. 다행히 배수장 안에는 지하수가 똑똑 떨어져. 창선 씨는 물 떨어지는 자리에 도시락 뚜껑을 놔서, 물이 차면 조금씩 나눠 마셨어.

그런데 문제가 또 있어. 바로 '추위'야. 밖은 한여름이지만, 갱 안은 냉기로 가득해. 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야. 정신이 혼미해지고 자꾸 졸려. 그런데 그 때, 창선 씨 손에 뭐가 또 잡혀. 배수장에 달려 있었던 전구야. 창선 씨는 또 남은 삐삐선을 한참 만지며, 전선을 고치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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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없다' 해병대 정신은 또 해냈어. 전구에 부리 켜졌고 배수장 안은 환해졌어. 그 작은 전구에서 나오는 온기가, 얼마나 따뜻한 지 몰라. 창선 씨는 전구를 소중히 품에 안고, 몸을 한껏 움크렸어. 그 전구엔 어렴풋이 자기 모습도 비쳐 보여. 암흑에서 벗어난 안도감, 마치 희망이 켜진 느낌이야.

▲ 애타는 가족들의 마음

8월 28일, 매몰 7일째. 15m 중 겨우 3.6m를 파냈어. 구조 상황은 매일 보도돼. 대통령도 특별 지시를 내리고, 미 공병대와 미국 정비회사도 구조작업을 돕고 있었어. 그날 오후, 광산 사무실로 다시 창선 씨의 전화가 걸려왔어.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힘이 없어. 상태가 확 나빠졌어. 창선 씨는 배가 너무 고프다며, 소지하고 있는 잡지를 먹어도 되겠냐고 물었어. 도시락은 이미 다 먹은 상황이고 그 뒤로 물만 마시며 버티고 있던 거야.

극한의 갱 안에서 창선 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니까 가늠만 할 뿐이잖아? 광산에 매몰되는 사고를 직접 당해봤던 한 분을, '꼬꼬무'가 만나봤어. 이 분은 1982년 태백 탄광이 수몰되는 사고에서 생존한 손신광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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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에 일하는 사람들은 출근이 마지막 길인 줄도 몰라요. 쾅 소리가 나. 쾅쾅 터지는데, 좀 이따 보니까 물소리가 나는 거예요. 물이 막 계속 차 올라오는 거예요. 며칠 지나니까, 아주 포기가 되더라고요. 이제는 희망이 없구나… 다 죽었다 했지 뭐요 밖에 사람들은. 나는 밖에 어린 자식이 있는데, 절대로 죽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지만…"
-손신광, 태백 탄광 매몰 사고 생존자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고통.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갱이 무너지고 물이 흘러 들었대. 탄을 캐낸 자리로 간신히 몸을 피했는데, 춥고 배고프고, 한 이틀 지나니까 헛것까지 보였대. 과연 구조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점점 더 커져. 그래도 손신광 씨는 혼자는 아니었어. 당시 동료 3명이랑 같이 있었어.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고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시간을 버텼어. 그런데 구봉광산의 창선 씨는 혼자야. 상황이 훨씬 더 안 좋아.

종일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몸 위로는 계속 돌가루가 떨어져. '이러다 또 무너지면 어떡하나' 배수장 안은 공포 그 자체야. 입 안은 말라붙는데, 물을 마시러 갈 힘도 없어. 걸려오는 전화도 달갑지 않아. '전화를 받아서 뭐하나. 나가지도 못 할 텐데' 하는 절망적인 생각 때문이야. 그렇게 또 하루가 흘렀어.

매몰 8일째. 축 늘어져 있던 창선 씨가 몸을 일으켜 세웠어. 목은 마르다 못해 찢어질 거 같아. 간신히 물 한 모금을 마셨어. 그리고 먹을까 말까 고민했던 잡지의 그나마 깨끗한 페이지를 찢었어. 창선 씨는 그 잡지를 먹지는 않고, 대신 글을 썼어.

"여보 나 먼저 가오. 우리 자식 5남매만은 부디 잘 키워 나처럼 죽어가지 않게 해주오."

삶을 포기하는 순간의 참담한 심정. 가족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 유언장을 쓴 거야.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어.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창선 씨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저보고 필기도구가 있으면 좀 적으라고 합디다. 내가 죽으면 보상금이 나온다, 논을 사든지 하여서 어린애들 공부시키도록 하고, 인감도장 내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 호주머니에 돈 420원이 있고…"
-김창선 씨 조카

마지막까지 가족들을 위한 당부였어. 호주머니에 있는 한 푼까지 잘 챙겨달라는 당부. 사망보상금은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이야기. 그 뒤로 전화는 뚝 끊어졌어. 이 소식을 들은 바깥 상황은 또 다시 난리가 났어. 정옥이 엄마는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라며 오열하고, 정옥이도 아빠가 돌아가시는 건가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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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이 엄마 얼굴은 핼쑥해. 아빠 걱정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울다가 실신하는 일이 잦아. 집에는 매일같이 기자들이 찾아와.

"이렇게 굴 안에 있으면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하는 이 사정 이야기를 들으면 당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어떡해야 구원을 할까요. 이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던 간 선생님들이 다 수고하시는 김에 좀 더 수고해서 목숨 하나만 건져주세요. "

-김창선 씨 아내 당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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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터뷰를 마친 엄마는 근처에 있는 절로 가서 정성을 다해 빌고 또 빌었어. 그런 엄마를 보며, 어린 정옥이는 좀 의아했대. 엄마가 기독교 신자셨거든. 얼마나 간절했으면, 부처님, 하나님 모두 붙잡고 기도한 거야. 당시 13살 정옥이가 쓴 일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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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울기만 하고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주무셔요. 광산에선 왜 우리 아버지를 빨리 안 구해줄까요. 여러 높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돈도 주고 쌀도 주었어요. 그런 것 다 없어도 좋아요. 우리 아버지가 언제 살아날까요. 갇힌 굴은 15m밖에 안된다고 해요. 그러나 마음이 놓이질 않아 잠이 오지 않아요."

▲ 거의 다 왔는데, 또 다시 나타난 복병

연일 이어지는 구조작업. 4일동안 7.5m를 팠어. 이제 딱 절반이야. 매몰 10일째. 9.5m까지 내려갔어. 그리고 매몰 시간은, 200시간을 경과했어. 창선 씨가 좀만 더 버텨 주기만을 바랄 뿐. 구조를 위해 모인 대원들은 밤낮 없이 교대근무 중이야. 잔해를 파내다 보면, 커다란 돌이 떨어지기도 하고 지하수가 소나기처럼 쏟아지기도 해.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사람 구하려다 내가 잘못될 수도 있어. 구조반도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하는 거지. 그런데 이 당시 구조에 참여한 사람만 2천명이 넘어. 창선 씨를 구하기 위해 전국에서 광부들이 모였어. 가족을 위해 목숨 걸고 광산으로 뛰어드는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아니까. 가족에게 구조작업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나섰대. 모두가 간절히 창선 씨의 생환을 바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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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하는 거랑 똑같지. 위험한데 들어가서 하는 사람들 다, 오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가 당하는 거나 똑 같은 거죠."
-오종섭, 당시 구봉광산 광부

지상에서는 꼬박꼬박 창선 씨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기 소리에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루 두번씩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마지막 통화를 한지 3일이나 지났는데, 창선 씨에게서는 답이 없어. 어느새 9월 1일. 매몰 11일째야. 드디어, 전화가 연결됐어. 수화기는 급히 한 남자에게 전달돼. 창선 씨의 건강을 체크하기 위한 의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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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는 의사들도 대기하고 있었어. 전화 검진으로 창선 씨의 건강상태를 체크했어. 그럼 창선 씨의 상태는 어떨까? 겨우 숨만 붙어 있어. 물 하나로 버티는 상황이잖아. 사람이 물만 마시고 며칠이나 살 수 있을까? 의학적으로는 한달 정도 가능하대. 그렇다면 11일이 지났으니, 아직 희망이 있는 거잖아? 그런데 창선 씨의 경우는 달라. 광산 지하수가 깨끗한 물이 아니잖아. 이 물에는 비소가 섞여 있어. 많이 먹으면 위험해. 게다가 혼자 고립돼 있고 춥잖아. 최악의 조건이야.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건, 살겠다는 의지야.

의사는 전화 검진을 이어갔어. 배변 활동에 대해 물으니 창선 씨는 "소변은 조금 봤고, 대변은 참고 있다"고 답했어. 왜 그러냐 물으니 그는 "배가 더 고파질까 봐서"라고 했어. 창선 씨, 최대한 버티고 있는 거야. 희망과 절망이 계속 오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려고 고군분투 하고 있어.

다음 날에는 기자가 창선 씨와 통화했어.

기자: 갱 속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김창선: 네 고맙습니다.
기자: 혹시 지금 무슨 생각이 듭니까?
김창선: 어릴 때 쥐 잡던 생각, 친구들이 쥐새끼라고 별명을 부르던 일을 생각했으며. 6.25 때 전투 생각도 했어요.
기자: 가족들에게 전할 말은 있습니까?
김창선: 봉주, 동주가 피부병을 앓고 있다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 매몰 12일째 창선 씨의 기록

마지막까지 아이들 걱정이야. 창선 씨는 5남매를 생각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어. 하지만, 결국 한계에 다달았어. 창선 씨는 "차라리 밑에서 박격포라도 쏴주세요. 운이 좋으면 살고 아니면 마는 거죠 뭐. 다들 나 때문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라며 자포자기한 말을 했어. 창선 씨 상태가 위태로워.

그 시각, 구조작업은 거의 막바지야. 매몰지점에 가까워질수록, 작업에 신중을 기해야해. 무너진 흙 사이에 배수 파이프가 이리저리 막 얽혀 있거든. 자칫 잘못 건드리면 물폭탄이 터질 수도 있어. 그 사이사이를 잘 파내야 하는 거야.

9월 3일, 매몰 13일째. 남은 거리는 2.5m. 드디어 구조에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해. 광산 입구는 기자들과 주민들로 가득해. 구조캡슐이 올라올 때마다, 좋은 소식이 있을까 기대해. 그런데 구조반 사람들 표정이 어두워.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 거야.

꼬꼬무

"구조의 거리를 많이 좁혔으나, 6톤 이상의 큰 바위와 여러가지 장애물에 부딪혀 작업은 다시 한 번 지연됐습니다."
-당시 뉴스 내용 中

갱이 무너질 때 바위가 같이 떨어졌나봐. 예상치 못한 복병이야. 이 바위가 어찌나 크고 단단한지, 당시 장비로는 뚫는 게 무리였어. 더 큰 문제는, 2~3일 안에 창선 씨를 구하지 못하면, 시신을 올려야 할 수도 있어. 창선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안 받아.

▲ 15일 8시간 35분만에 본 지상의 빛

그래도 여기서 지체할 순 없어. 무조건 빨리 파는 수 밖에 없어. 구조대원들은 곡괭이와 망치를 들고 다시 캡슐에 올랐어. 한땀 한땀 바위를 부수기 시작해. 속도는 어쩔 수 없이 느려졌어. 하루 종인 파도 0.7m. 매몰 지점까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만, 창선 씨의 시간도 얼마 안 남았어.

매몰된 지 16일째. 지상에선 긴급 작전 회의가 열렸어. 바위 깨는 걸 멈추자는 거야. 바위를 깨다 보니까, 바위와 갱도 벽면 사이에 파이프 두 개가 끼어 있었어. 이 파이프를 뽑아내면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진입하면 시간을 단축 시킬 수 있을 거 같아. 하지만 잘못 뽑으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몰라.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그 파이프를 뽑기로 했어. 정말 시간이 없으니까.

"제1배수장까지 쇠 사다리를 내리고, 두 명의 작업반을 내려 보내서 김씨의 온몸을 광목으로 3겹을 싼 뒤에 김씨가 갑자기 빛이 들어가면 실명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눈을 붕대로 가리고 구명용 자루 속에 넣어서, 케이지로 실어서 지상에 올려야 됩니다."

-당시 구조 실황을 전한 라디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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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누가 할 수 있을까.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이야. 그때, 조철호 씨와 최수봉 씨가 자원했어. 김창선 씨와 같은 사택에 사는 광부들이야. "나도 언젠가 같은 상황에 처할 지 모르는 거 아닙니까", "나를 구하는 마음으로 들어가겠습니다", "4년 전에 이 갱도를 제 손으로 파냈습니다. 반드시 구해내겠습니다"라며 두 사람 다 결연한 의지를 보였어.

9월 6일 오후 1시. 조철호, 최수봉 씨가 캡슐에 올라. 도르래가 내려지고 얼마 후, 문제의 그 바위 위에 안착해.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파이프를 뽑았어. 좁은 틈이 생겼어. 이제 주변을 파내면서 폭을 넓혀. 어느 정도 파내니 한 사람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 조철호 씨가 먼저 몸에 밧줄을 묶고 아래로 내려가. 마침내 김창선 씨가 매몰된 지점이 바로 앞이야.

"창선아! 나 철호 형이야. 내 말 들려?"라고 소리쳤지만, 대꾸가 없어. 입구를 막은 흙만 파내면 돼.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흙을 쇠꼬챙이로 찔러봤는데, 꼬챙이가 들어갔다가 나온 자리로 빛이 새어 나와. 그 빛, 뭔지 알겠어? 배수장 안에서 창선 씨가 켜 놓은 전구의 불빛이야. 다시 구조대는 창선 씨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어. 여전히 대답은 안 들려. 마음이 급해진 구조대는 곡괭이를 들고 미친듯이 입구에 막힌 흙을 파냈어. 그러길 몇 시간, 드디어 입구에 구멍이 생겼어. 그리고 그 너머에 쓰러져 있는 창선 씨가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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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 씨는 살아 있었어. 안도감에 눈물이 터져 나왔어.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한 거야. 조철호 씨가 다가가자 와락 안겨 떨어질 줄 몰라. 일단 허리춤에 찬 식염수부터 먹였어. "창선아 됐다, 이제 나가자"라며 조철호 씨는 창선 씨를 안고 캡슐에 올라 탔어. 도르래 밧줄이 서서히 감겨. 10m, 5m, 1m… 그리고 마침내, 지상 위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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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 위를 잡고 천천히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지금 올라왔습니다. 가장 땅 속에 오래 있던 한 사나이가 올라왔습니다. 구조 대원들 지금 잡고 있는 가운데 김창선 씨 얼굴을 모두 볼 수 없습니다. 광부가 완전히 가렸습니다…. 얼굴이 나왔습니다. 난닝구 바람입니다."

-당시 구조 실황을 전한 라디오 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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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만에 구조된 김창선 씨 모습. 한눈에 봐도 너무나 마른 상태야. 9월 6일 저녁 9시 15분. 매몰된 지 무려 15일 8시간 35분 만에, 김창선 씨는 구조됐어. 광산에서 368시간을 버틴 거야.

정옥이 어머니는 남편이 나오는 걸 보다가 실신하셨어. 당시 현장에선 남편의 생사를 바로 알 수 없었기에, 송장이 올라오는 줄 알았거든. 걱정과 달리 창선 씨의 의식은 아주 또렷했어. 들것에 옮겨지다가 바지가 흘러내리니까 황급히 잡아 올리기도 했대.

▲ 기적이 낳은 또 다른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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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직후 서울 병원으로 이송된 창선 씨는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회복됐어. 65kg이던 몸무게가 46kg으로, 무려 19kg이나 빠졌지만. 16일이나 매몰된 사람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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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밖에는 창선 씨를 보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야. '철인', '불사조', '죽지 않는 사나이'라며 그의 기운을 받고 싶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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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 씨가 퇴원하던 날. 한결 밝아진 얼굴은 미소가 번지며 행복한 모습이야. 정말 다시 태어난 기분이 아니었을까. 창선 씨 가족의 생활도 이전과 달라졌어. 후원금이 많이 들어와서 이사도 가고 형편이 많이 좋아졌대.

"광산의 사택에서 살다가 큰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어요. 학용품 없는 거 없이 다 받은 거 같고요. 책 같은 것도 많이 받고. 편지도 진짜 많이 왔었어요."
-김정옥, 김창선 씨 첫째딸

가족들은 김창선 씨가 무사히 돌아왔던 9월 6일을 제 2의 생일로 정하고 매년 파티를 열었어. 무너진 광산 안에서 버텨낸 16일의 시간. 창선 씨는 그 절망적인 순간에도 의지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라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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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불쌍하죠. 나야 까짓것 여기서 죽든 살든 괜찮은데, (아빠가 없으면) 철부지 애들은 얼마나 불쌍해요. 아이들 생각으로 정신 말짱해서 살았어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렸어."
-김창선 씨 생전 인터뷰

그리고 김창선 씨는 지난 2022년, 아흔의 나이로 작고하셨어.

'막장'이란 말 많이 쓰잖아. 어떤 뜻인지 알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광산의 끝'을 '막장'이라 말해. 막장으로 가는 길목엔 이런 글귀가 써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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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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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도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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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으로 가는 길은 죽으러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해요. 가족들 먹고 살고 애들 가르쳐야 하니까."
-오종섭, 당시 구봉광산 광부

"그 때 당시만 해도 희망이라 하는 건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사는 것이었죠."
-김익환, 당시 구봉광산 광부

"돈 모아서 앞으로 애들 가르치고 먹고 살려고. 그런 거라도 할 거 있으면 좋았지 뭐"
-고성태, 당시 구봉광산 광부

그 시절의 많은 광부들이 돌가루, 탄가루를 온 몸으로 마시는 힘든 환경에서도 이 막장에서 일을 한 거야. 오로지 내 자식을 먹여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김창선 씨도 가족을 위해 매일 목숨 걸고 광산에 갔어. 정말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그곳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어. 그리고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어.

김창선 씨는 1982년, 매몰 14일만에 생존한 태백 탄광 사고 생존자들을 찾아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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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사고를 당했던 손신광 씨. 이 분은 14일을 버틴 끝에 구조됐어. 김창선 씨가 무사히 생환했던 일을 생각하며 버틴 거야. 기적이 또 다른 기적을 나은 거지.

큰 사고를 겪은 김창선 씨는 이런 말을 했어.

"죽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내 목숨 하나가 그토록 소중한 거라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고 나면, 창선 씨처럼 깨닫는게 있대.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 내가 매일 아침에 가족들과 인사하고 나오고,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 환경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 하는, 하루의 소중함 말이야.

만약 그날 김창선 씨가 꼴뚜기 젓갈 말고 다른 반찬을 가져갔더라면, 전화선을 연결하지 못했다면, 전구를 못 켰다면, 어땠을까. 살다 보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위기에 처할 수 있잖아. 그럴 때 오늘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겨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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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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