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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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전여친 스토킹하다 살해한 남자…"너무 사랑해서 그랬다" 악마의 눈물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4.14 12:17 수정 2023.04.14 13:39 조회 7,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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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3일 방송된 '53일간의 살인'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소이현, 그룹 여자친구 출신 가수 유주, 그룹 더보이즈 멤버 주학년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대낮, 아파트 주차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때는 2016년 4월 19일, 낮 12시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아파트. 경비원 김씨는 단지 안을 살피며 주차장을 지나고 있어. 평소와 다름 없이 평온한 하루야. 그런데 그 때,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며 어떤 젊은 여자가 아파트에서 막 뛰어나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뛰어나온 여자는 겁에 질린 채 비명을 막 지르고 있어. 여자가 경비원 앞을 달려가는데, 그 뒤를 한 남자가 쫓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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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남자한테 잡힌 여자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 경비원이 말리려는 순간, 이 남자가 뭔가를 치켜들어.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칼이야. 잠깐 경비원이 멈칫한 사이에, 이 남자가 여자한테 칼을 휘두르기 시작해. 손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야.

"뛰쳐나와서 보니까 찔려 버린 거예요. 잠깐이야, 잠깐. 한 10초도 안 돼요."
-당시 목격자

아파트 단지 안은 아수라장이 됐어. 백주대낮에 칼부림이 벌어진 거야. 여자를 공격한 남자는 곧바로 도망쳤어. 한 주민이 차를 몰고 도망가는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어. 그런데 남자는 차를 피해 그대로 달아나. 주민들은 일단 쓰러진 여자를 살피고 경찰에 신고했어. 그리고 도망간 남자를 찾기 시작해. 놀이터 앞에서 그 놈을 찾은 주민들이 빗자루를 들고 막 쫓아가. 하지만 늦었어. 남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대로 도주했어. 이 끔찍한 상황이, 그 아파트의 CCTV에 그대로 담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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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이 일어나고 5분 후, 구급차가 도착했어. 여자는 호흡과 맥박이 없는 상태야.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지만,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어. 벌건 대낮에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 범인을 잡기 위해, 곧장 경찰 강력반 6개 팀이 동원됐어.

경찰은 남자의 휴대폰을 추적하고, 인근 CCTV를 싹 확인했어. 그리고 다음날, 범행 현장인 송파구 가락동에서 15km 정도 떨어진 경기도 구리시에서 그 남자의 행적을 찾았어. 바로 체포조가 출동했어. 범인은 비닐하우스 옆 풀밭에 숨어 있었어. 형사들이 다가오는 걸 보고 달아나려 했지만, 결국 붙잡혔어. 범행 24시간만에 살인범을 검거한 거야.

▲ 딸의 억울한 죽음, 거리로 나선 부모님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벌어졌던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는 31살 한 모 씨. 살해된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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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체포된 한 씨는 한마디만 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죽일 생각은 없었다"라고 말했어.

피해자는 이 분이야. 이름은 김정은, 나이는 31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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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딸을 하루 아침에 잃은 부모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런데 정은 씨 부모님은 슬픔에 잠길 시간 조차 없었어. 피의자 한 씨가 재판을 앞두고 4명의 변호사를 선임한 거야. 한 씨가 체포됐을 때 한 말 기억하지?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거. 우발적 살인을 주장하며 형량을 최대한 낮추려는 거야.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피해를 입은 가족들이 오히려 고통받고 있는 상황. 정은 씨 부모님은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한 씨가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정은 씨 아버지가 거리로 나섰어. 아버지는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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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동 아파트 대낮 여성 살인사건. 백주대낮 무참히 칼을 휘두른 계획적인 보복범죄. 흉악 무도한 살인마 한ㅇㅇ을 사형! 최고법정형으로 처벌해 주십시오. 검사님, 판사님, 공공의 목적은 다수를 보호하는 것. 딸 가진 부모 무서워서 못 살겠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서명운동을 시작했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내 딸이 대낮에 끔찍하게 살해당했다'며, 기억조차 하기 싫은 그 일을 백 번 천 번 이야기 하며 사람들의 서명을 받으려 애썼어.

그런데 그 때, "혹시,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라며 어머니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어. 부모님의 외로운 싸움을 돕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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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5월 말쯤에 저희가 서울시청 지하에서 크게 행사를 했었어요. 그때 어머님이 서명 판을 들고 오셔서 '이런 일이 있는데 서명해달라' 사람들한테 요청하는 걸 보게 됐고, '무슨 사건인데 여기서 서명 받으시지?'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들어봐야겠다' 해서. 저희 연락처를 드리고 '한 번 뵙자' 했죠."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당시 사무처장)

송 대표는 범죄피해를 입은 여성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어. 그런 송 대표가 우연히 정은 씨 어머니를 보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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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여성의전화'라는 단체에서 법률지원을 해 줄 변호사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건에 대해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구정모, 당시 피해자 측 변호인

구 변호사는 송 대표의 연락을 받고 무료 변론을 자원했어.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판을 앞두고 사건을 면밀히 조사했어. 재판을 앞둔 이들의 동행. 그 놈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한, 억울하게 딸을 잃은 부모님의 진짜 싸움이 시작된 거야.

▲ 집착이 스토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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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시작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정은 씨가 한 씨를 만나건 2015년 5월이었어. 첫 눈에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만난 지 한 달 만에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어. 한 씨는 미국 영주권자야. 185cm의 훤칠한 키에 유명 증권회사에 근무해. 정은 씨는 강남에 있는 대형 치과에서 총괄실장으로 일하고 있었어. 한 씨는 정은 씨한테 그렇게 잘했대. 출근할 때마다 바래다 주고, 퇴근할 때도 바래다 줬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정말 예쁜 커플이었어. 정은 씨 부모님도 둘의 교제를 알고 있었어. 명절 때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있었어. 그런데 이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어.

남자친구의 집착이 시작된 거야. 한 씨는 다른 가족들은 미국에 있고 혼자 한국에 살고 있어. 의지할 사람이 정은 씨 밖에 없었던 걸까. 집착이 점점 심해져. 사사건건 확인하고 통제하고, 별일 아닌 일에 무섭게 화를 내기 시작해. 그리고 그 즈음, 정은 씨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돼. 유명 증권회사에 다닌다는 한 씨의 말이 거짓말이었던 거야. 정은 씨는 남자친구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어. 그런 와중에 한 씨의 집착은 점점 심해졌고, 자연히 두 사람의 싸움도 잦아졌어.

결국 2016년 2월, 정은 씨가 헤어질 결심을 했어. 한 씨, 이런 정은 씨의 결정을 받아들였을까? 며칠 후, 정은 씨는 한 씨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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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보야, 잘 지내는 거야?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우리가 헤어진지 정확히 12시간이나 흘렀네. 여보는 내 생각하고 있을까? 난 지금도 방금 만났었던 것처럼 여보의 모습과 향기를 기억하는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여보를 떠나보내지 않을텐데, 후회만 남는구나. 혼자 있는 서울이 이렇게 고독하고 외로운 곳인지 몰랐었어. 이렇게 멀리 있지만, 내 마음이 느껴져? 용기를 내어 볼려고 해. 많은 시간 고민했지만 이제 결정했어!"
-한 씨의 편지 내용 中

한 씨는 뭘 결정했다는 걸까? 한 씨는 무슨 생각인 걸까? 그 때부터야. 정은 씨의 비극이 진짜 시작된 건.

한 씨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수시로 전화하고,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 "난 절대 못 헤어져", "나 없이 행복할 거 같아?", "다시 시작하자"며 집요하게 매달려. 그런데 그 정도가, 아주 심해. 헤어진 남자친구가 정은 씨에게 스토킹을 시작한 거야. 단순히 문자나 전화만 한 게 아니야. 정은 씨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일이 일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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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가 돈을 갚을 테니 만나자고 정은 씨에게 연락을 해왔어. 얼마 전에, 한 씨한테 340만원을 빌려준 적이 있어. 갑자기 수술비가 필요하다고 했거든. 그걸 구실로 불러낸 거야. 정은 씨가 "그냥 계좌로 보내라"고 했더니, 꼭 직접 만나서 현금으로 주겠대. 돈을 받고 싶으면 자신을 만나라는 거야.

3월 2일 밤. 정은 씨가 한 씨의 차 조수석에 올랐어. 정은 씨를 태우고 출발한 차는 어딘가를 가다가 섰어. 근데 장소가 좀 이상해. 잠실대교 한복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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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가 주머니에서 돈이 담긴 봉투를 꺼냈어. 그걸 들고 한 씨는 "이거 때문에 나온 거지? 근데, 못 줘. 네가 나한테 주는 위자료라고 생각해"라고 말해. 그러면서 더 무서운 말을 하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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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만나던 여자도 너처럼 나 버렸거든?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그 여자랑 가족들까지 다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아쉽게 실패했어. 그냥, 다리만 부러뜨렸어. 근데,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 나하고 헤어지면, 너하고 네 가족, 전부 다 죽여버릴 거야."

한 씨는 잠실대교 한가운데 차를 정차해 두고, 거기서 문을 잠근 채로 정은 씨에게 이런 협박을 한 거야. 한 씨는 더 이상, 정은 씨가 알던 남자친구가 아니야. 완전히 낯선 존재야. 공포의 대상이 된 거지.

▲ 공포의 조건 첫번째 '낯선 대상'

정은 씨는 그 이후로, 극심한 공포감에 실어증 증상까지 보였대. 조금만 큰 소리가 들려도,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서 벌벌 떨어. 불안해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 언제 한 씨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출근도 못해. 정은 씨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진 거야.

이런 상황에서, 한 씨의 전화는 계속 걸려와. 정은 씨는 이 때부터 한 씨의 전화를 받으면 통화 내용을 녹음하기 시작했어. 그 때 녹음된 내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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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날 한 번 쯤은 이해해 주고 그럴 수 있지 않아? 나에 대한 감정은 아예 하나도 없어?
정은: 그 때 그 눈빛이랑 말투가 너무 무서워서 그게 아직도 생생해서 그래. 나를 놔줄 생각이 아예 없는 거야? 사랑하는 방식이 잘못 된 거잖아.
한: 내가? 지금도 나를 스토커로 보는 건가? 내가 진짜 정은아, 어떻게 내가 죽어줘야지 나를 믿을까? 내가 진짜 나가서 죽었으면 좋겠어? 아니면 내가 무슨 짓을 했으면 좋겠어?
정은: 이렇게 얘기하는데 내가 무서워서 어떻게 만나.
한: 되게 절박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거야. 내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내가 집 앞에서 죽어있으면…
정은: 그런 얘긴 왜 하는데
한: 더 틀어지게 만들지 마. 진짜 더 서로 더 힘들어질 수가 있어.
-한 씨와 정은 씨의 통화 내용 中

녹음된 통화 목소리에서 정은 씨가 느끼는 공포감이 전해져. 사랑이라는 어이없는 핑계로 정은 씨는 이미 살해 협박까지 받은 상태야. 그런데 이제는 안 만나주면, 자기가 죽어버리겠대. 더 이상 단순한 스토킹이 아냐. 그럼, 경찰에 신고하면 되잖아? 하지만 정은 씨는 신고하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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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회의를 여러 번 했대요. 가족들이 모여서 어떻게 할까. 근데 여러 번 대책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 경찰에 신고하지 말자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잡아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즉각적인 대처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신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가해자를 더 자극해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까봐."
-구정모, 당시 피해자 측 변호인

경찰에 신고해도 제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았어. 신고해도 경찰이 순찰할 때 살짝 살펴보는 정도라는 거야. 신고해도 경찰이 과연 나를 제대로 보호해 줄 수 있을까, 의문만 들어. 실제로 당시 스토킹은, 폭행을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 당시에 스토킹은 경범죄로 여겨 벌금 8만원이 끝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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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믿는 거죠. 그러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합리적 판단을 하게 되는 거죠. 신고하지 말아야겠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

정은 씨는 한국에서 혼자 지내는 한 씨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기로 결심해. 안전한 이별을 위해서. 그래서 일단, 다시 출근을 하기 시작했어. 계속 직장에 피해를 줄 수 없으니까. 힘든 상황이었지만, 아무일 없는 것처럼 웃으며 동료들을 대했어. 그런데 이 모습을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어. 맞아, 한 씨야. 정은 씨의 직장 주변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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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가 쪽에 서 있었는데 주스를 들고 핸드폰을 보면서 정말 너무 멀쩡한, 그냥 내가 느끼기에 그랬어. 너무 멀쩡했고 반지도 없고. 그 모습을 보니까 아무것도 못하겠고 그냥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고… 나는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못 먹겠는데,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나? 이미 우린 이렇게 됐으니까. 여기가 최선이야.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그거는 아주 큰 오해일 거 같아. 넌 절대 행복하지 못해."
-당시 한 씨가 정은 씨에게 한 말

▲ 공포의 조건 두번째 '예상치 못한 상황'

직장 근처에서만 지켜보는 게 아니었어. 정은 씨가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집 앞에 서있는 차가 낯이 익어. 한 씨의 차야. 정은 씨의 모든 순간이 불안과 공포야. 언제 어디서 한 씨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정은 씨 아버지는 딸과 출퇴근을 함께 하기로 해. 매일 딸을 태우고 직장까지 바래다 줬어.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순 없잖아. 아버지는 결국, 한 씨를 직접 만나기로 했어. 아버지는 한 씨를 만나 "우리 딸을 이제 그만 편하게 해달라", "정리할 시간을 가져 보고 정 힘들면 그 때 다시 이야기를 하는게 어떤가"라며 설득했어. 심지어 "힘들면 술 한 잔 살 테니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도 주셨대. 잘 타이르며 한 씨를 보낸 아버지. 딸이 편해지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어.

그 후 한동안 한 씨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어. 그런데 며칠 후, 정은 씨가 창 밖을 내다보는데 한 씨의 차가 또 나타났어. 근데 자세히 보니까, 운전석이 비어있어. 한 씨는 어디에 있는 걸까? 놀랍게도, 맞은편 건물 옥상에 있었어. 거기서 정은 씨 집을 감시하고 있어. 또 다시 스토킹이 시작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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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는 집요하게 매달렸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자고,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계속 전화를 했어. 정은 씨는 마지못해 응했어. 안 그러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잘 달래서 해결해보려 한 거야.

이별을 통보하고 20일이 지난 3월 17일. 두 사람은 경복궁에서 마지막 데이트를 했어. 그날 밤, 정은 씨를 바래다 주면서 한 씨는 "오늘 너무 즐거웠다. 그럼 우리 다시 시작하는 거지?"라고 말했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 말을 들은 정은 씨는, 확실하게 말했어.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 전혀 없으니, 이제 제발 놔달라"고. 하지만 상황은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어.

이틀 후 새벽,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려. 역시나 한 씨야.

한: 너가 원하는 게 이거지?
정은: 뭔데..
한: 지금도 장난 같지?
정은: 어딘데…
한: 복도야. 너가 원하는 게 이거야? 돌이킬 수 없어 이제.
정은: 나한테 진짜 왜 그래? 왜 이렇게 사람을 피 말려?

한 씨가 말한 '복도'. 정은 씨네 집 앞이라는 거야. 혹시라도 한 씨가 나쁜 선택을 할 까봐 불안했던 정은 씨는 서둘러 아빠한테 밖에 나가보라 했어. 아버지가 급히 현관 밖으로 나갔는데 아무도 없었어. 한 씨가 진짜 집 앞에 온 건 아닌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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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버지 나오니까 좋아? 아버지 나오니까 좋냐고. 벼랑이라고 살려달라고 얘기했는데, 꼭 떨어뜨려야 직성이 풀리냐? 너 진짜 자극하지 마라 제발. 나 아까 너희 집 계단에서 계속 서 있었어."

한 씨가 집 앞에 있는 게 맞았어. 남자친구였던 한 씨는 정은 씨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집과 직장은 물론, 부모님께서 일하는 곳까지 알고 있어. 그 어느 곳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야. 나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커져.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가 없어.

▲ 공포의 조건 세번째 '고립과 단절'

그렇게 며칠 후 새벽, 정은 씨한테 문자 한 통이 도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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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요 내 사랑^^"

이게 한씨의 마지막 문자야. 그 이후로 아무런 연락이 없어. 대체 무슨 의도일까? 그래도 그 후 한 씨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아버지는 매일 딸의 출퇴근 길을 함께 했어.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거야.

그렇게 한 달이 지난 4월 19일. 정은 씨는 이제 괜찮은 거 같으니 아버지한테 편히 운동을 다녀오라고 권유했어. 사실 정은 씨의 아버지는 위암 수술 후 건강이 좋지 않았어. 수술 후 운동을 해 왔는데, 딸과 출퇴근을 함께 하느라 2개월째 운동을 못 하셨어. 정은 씨는 그게 너무 미안했어. 그래서 아버지한테 운동을 다녀오라고 했고, 그렇게 아버지는 진짜 오랜만에 운동을 나섰어. 집에는 정은 씨 혼자 남게 됐어.

오전 10시 50분. 오토바이 한 대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와. 한 씨였어. 오토바이를 세워둔 한 씨는 정은 씨 집으로 향했어. 양복 차림에 손에 검은 가방을 들고 있어. 그리고 우편함에 든 우편물을 확인하더니,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 정은 씨가 한 씨 손에 사망한, 바로 그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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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 기록된 시간을 비교해보면, 한 씨가 정은 씨 집에 머문 시간은 한시간 정도야. 이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집 안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단 둘 뿐이었어. 사망한 피해자는 말이 없지. 남은 건 가해자의 말 뿐이야. 범행 후 한 씨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려고 찾아갔다. 근데 얘기하다가 갑자기 도망가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어.

"수사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까지 일관되게 주장했던 게, 내가 피해자 앞에서 자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갔던 것이고, 다만 피해자와 다투다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구정모, 당시 피해자 측 변호인

한 씨는 범행 순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고 주장했어. 정은 씨를 살해한 건 인정하지만, 미리 계획한 건 아니라는 거야. 한 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그래서 '우발적 살인'이 인정되면 형량은 낮아져. 지난 2001년 이혼을 요구하는 부인을 살해한 남자가 우발적 살인을 인정 받아 8년형을 받은 적이 있어.

한 씨의 주장을 무너뜨리려면 증거를 찾아야 해. 범행 직후의 CCTV 영상을 보면, 한 씨는 자신을 가로막는 차를 피해 아파트 단지 밖으로 도망간 게 아니라, 다시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어. 정은 씨네 집에 다시 가려고 한 거야.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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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한 씨가 아파트에 들어설 때 모습과 12시, 아파트를 나설 때 모습을 보면, 달라진 게 있어.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이 안 보여. 한 씨는 범행 후 다시 정은 씨 집에 올라갔지만,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었어. 들고 왔던 그 가방은 정은 씨 집에 남아있던 거야. 가방에 뭐가 들어있었길래, 한 씨는 정은 씨를 살해한 후 바로 도망가지 않고 다시 돌아왔을까. 가방 안에서 발견된 증거물들을 보면 이해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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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가방 안에는 칼, 결박을 위한 로프, 나일론 끈, 넥타이 묶음, 면수건, 테이프, 염산이 든 박카스 병 등이 담겨 있었어. 칼은 모두 3자루로, 범행에 쓰인 칼 말고도 식도와 과도도 있었어. 그런데 모두 손잡이에 압박붕대를 감아 놨어. 칼을 휘두를 때 자신의 손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야. 이 모든 증거들은, 계획 범죄를 말하고 있어. 이 범행은 계획된 살인이 분명해.

▲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

한 씨의 재판이 시작됐어. 한씨는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도 계속 부인해. 전부 자신이 자살하려고 가져간 거라며, 끝까지 우발적 범행이라고 말해. 심지어 자신이 스토킹을 한 적도 없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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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2개월간의 스토킹 행위를 전부 부인했고요. 그리고 우발적 범행이었다 주장했습니다.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건, 본인이 피해자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는 겁니다. 사랑해서 그랬다는 것을 지속해서 호소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했다고."
-구정모, 당시 피해자 측 변호인

가해자의 '사랑'은 피해자에게 '괴롭힘'과 '공포'였어. 이 말도 안되는 한 씨의 변명은, 검찰 신문조서에도 담겨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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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피의자와 피해자의 교제는 언제 정리가 되었나요?
한 씨: 2016년 3월초 저는 피해자가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목격하고 교제를 정리하자고 피해자에게 요구를 하였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저에게 헤어질 수 없고 저와의 교제를 계속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질문-피해자는 왜 죽은 것인가요?
한 씨: 제가 피해자를 사랑하였는데 피해자는 저의 사랑을 배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해자를 죽인 것입니다.
-검찰 신문조서 내용 中

한 씨는 피해자에게 모든 잘못을 돌렸어. 자신은 순수하고 여린 감성을 가진 사람인데, 모든 게 그녀가 배신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거야.

"그렇게 말할 때마다 어머님은 소리도 지르시고, 또 법정에서 야유도 많이 있었고요. 정말 이 스토킹 범죄가 왜 발생하는지, 왜곡된 시선이라든지 그 편견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구정모, 당시 피해자 측 변호인

정은 씨 부모님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가지 일에만 매달리셨어. 한 씨에게 엄벌을 내려달라는 탄원서를 모으는 일. 딸의 죽음과 아픔을 말하며 모은 탄원서가 무려 3만 8천통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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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에게 반드시 '법의 엄중한 심판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탄원서를 받으셨는데요. 단일 사건으로 봤을 때 굉장히 많은 수이고요. 물론 시민들도 그만큼 많이 공감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사실 부모님이 노력하신 것이죠."
-구정모, 당시 피해자 측 변호인

정은 씨의 어머니도 매주 탄원서를 제출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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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행복의 씨가 되어 온 그 아이. 열 달이라는 시간을 한 몸이 되어 그 아이를 사랑하면서, 큰 아픔도 잊어버리고, 그 아이와 첫 대면을 하였습니다. 까만 눈에 오똑한 코, 앵두 같은 입술. 머리카락 숱이 많았던 그 아이. 감격의 눈물로 그 아이를 가슴에 안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엄마 고생한다며,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엄마를 늘 걱정하고 안쓰러워 하면서도 존경한다던 그 아이. 우리들의 자랑할 수 있는 착하고 너무 예쁜 딸이었습니다.
그날, 출근길에 딸의 방문을 열고 잠들어있는 딸을 본 것이 내 삶의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살인자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문 밖으로 뛰어가던 딸. 딸이 지나온 길을 매일 보고 지나가야 하는 고통. 주차장의 피가 이제야 빗물에, 펑펑 쏟아졌던 눈에 쓸려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내 딸을 가슴에 안고 이 모든 게 악몽을 꾸고 있기를 꿈이기를. 아무도 없는 그 곳에 딸을 두고 돌아와야 하는 죄 많은 어미의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죄 많은 어미가 사랑하는 딸 만나러 가는 날, 이 어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딸 정은이에게, 선물 하나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법의 최고형이 사형선고를 염원합니다. "
-정은 씨 어머니 탄원서 中

한 씨는 정은 씨만 살해한 게 아니야. 가족들의 삶까지 망가뜨렸어. 이제 남은 건 판결 뿐이야. 검찰은 한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어. 그럼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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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은 인정하고 있고 초범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해서는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된 상태에서 수감 생활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고 피해자 및 그 유족들에게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므로 피고인에게 양형 기준에 따라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로 한다."
-한 씨 재판 판결문 내용 中

한 씨를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판결. 한 씨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항소했지만, 이 판결은 바뀌지 않았어.

▲ 22년만에 시행, 아직도 갈 길 먼 '스토킹 처벌법'

정은 씨가 세상을 떠난 2016년에는 스토킹 처벌법이 없었어. 그 스토킹 처벌법이 처음 발의된 건, 1999년이야. 매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된 거야. 그 후 2021년 10월. 마침내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돼. 법안이 처음 발의되고 시행까지, 무려 22년이 걸렸어.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이 '스토킹'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야. 스토킹이 심하면, 협박이나 강요 죄로 처벌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반론, 남녀 사이의 일을 굳이 법으로 처벌할 필요가 있느냐, 단순히 '사랑싸움' 아니냐는 가벼운 생각들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어. 이런 인식을 깨는데 22년이 걸린 거야. 그럼 그동안 스토킹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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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이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남성은 지난 1년 동안 피해 여성을 스토킹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해도 스토킹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남자는 매번 풀려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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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 김모 씨가 주차된 차량에 인화물질을 끼얹고 불을 질렀습니다. 차 안에는 49살 여성 A씨가 타고 있었습니다. 김 씨는 몇 년 째 A씨를 스토킹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남성의 스토킹으로 몇 차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지만 끝내 수년간 이어진 스토킹의 괴롭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어렵게 만들어진 스토킹 처벌법.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어. 스토킹 처벌법은, '반의사불벌죄'야.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라는 거야. 피해자와 합의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어. 그럼 스토킹 가해자는 합의를 위해 또 다시 피해자를 괴롭힐 수도 있는 거지. 합의를 안해주면, 앙심을 품고 보복할 수도 있는 거고.

지난해 9월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알지? 피의자 전주환이 직장 동료에게 만남을 강요하며 스토킹하다가, 피해자가 이를 신고하고 합의를 해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살인을 저지른 사건. 이 사건 이후에 법무부에서는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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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하는 등 현행 스토킹 처벌법에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겠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발표는 했지만, 아직도 이 반의사불벌죄는 적용되고 있어. 이 사건을 두고, 서울시의원 한 명이 이런 말을 했어.

"좋아하는데 그걸 안 받아주니까,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 같은데요. 가해자도 나름대로 열심히 사회생활과 취업 준비를 했던 청년일 겁니다."

'스토킹'을 가볍고 단순한 문제로 보는 위험한 시선 때문에 나온 실언이야. 스토킹은 '살인의 전조'라고도 불려. 심각한 범죄를 불러오는 무서운 범죄야. 정은 씨는 4월 19일에 살해된 게 아니야. 스토킹이 시작된 날부터, 53일간에 걸쳐 이뤄진 살인이야. 그동안 막을 수 있는 기회가 꽤 많았어. 하지만 막지 못했고, 정은 씨를 도와주지 못했어. 이제는 정은 씨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스토킹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해.

며칠 후면, 정은 씨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되는 날이야. 하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그 날에 머물러 있어. 정은 씨의 가족과 지인들한테 그날의 사건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야. 그럼에도, 그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한 이유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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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그 가족 분들이 이 사건을 알리는데 정말 무엇이든지 다 하셨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그 아버님이 얘기하셨던, (스토킹 범죄가) 이렇게 위험한지 몰랐고,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이 스토킹 처벌법 제정 운동 하는 것에도 큰 역할을 하신 거로 생각해요."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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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건은 늘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죠. 보이게 된 것은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했던 정은 씨 부모님, 그 분들의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구정모, 당시 피해자 측 변호인

정은 씨 부모님은 '꼬꼬무'에게 이 말을 전해달라 하셨어. "피해자의 부모가 애쓰지 않아도, 서명 하나, 탄원서 한 장 더 받기 위해 뛰어다니지 않아도, 엄중한 법의 처벌이 내려지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요즘 신조어 중에 '안전 이별'이라는 단어가 있어. 예전에는 쓰지 않았던 말이야. 연인과의 이별 과정에서 스토킹이나 폭력 없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며 헤어지는 것을 뜻해. 그 만큼 지금, 스토킹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야.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고민해야 하고, '안전한 이별법'이 필요한 세상이란 게, 씁쓸한 현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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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를 보면, 피해자인 정은 씨의 얼굴은 공개했는데, 가해자 한 씨의 얼굴은 가렸지? 범죄자의 얼굴은, 신상공개위원회에서 공개를 결정해야만 보여줄 수 있어. 반면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유족들이 피해자의 얼굴을 공개하기도 해. 정은 씨의 부모님도, 스토킹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딸의 얼굴 공개를 결정하셨어.

피해자의 얼굴을 보게 되면,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주길. 그만큼 정말 절박하고, 너무나 아픈 이유가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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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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