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현대그룹 故정주영 회장, 소떼와 함께 판문점 넘어 방북…남북 관계 바꾼 '빅 이벤트'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3.03.24 07:37 수정 2023.03.27 12:17 조회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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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전설의 정 회장이 만든 빅 이벤트 '소떼 방북'

2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1998 회장님의 빅 이벤트 - 이봐, 해봤어?'라는 부제로 현대 정주영 회장을 조명했다.

1990년대 당시 재계 순위 세계 9위까지 올랐던 현대의 정주영 회장. 그는 어느 날부터 건설, 자동차, 조선 등의 세계 각 지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보다 기다리는 전화가 있었다.

이는 바로 서산 농장에서 걸려오는 전화였다.

그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에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 10을 가지고 의지만 있으면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 아래 모든 일을 해나갔다.

이에 굴지의 대기업을 만들었고, 그리고 나라가 잘 살려면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간척 사업에까지 뛰어들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던 서산의 간척 사업에서 정주영 회장은 기지를 뽐냈고, 막바지 절대 메꿀 수 없을 것 같던 자리에는 폐선박으로 틀어막는 정주영 공법으로 45개월이 걸릴 것을 단 9개월 만에 성공시키며 무려 4700만 평의 영토를 확장했다. 이 면적은 여의도 면적에 33배에 이르는 면적이었다.

이후 그는 서산 간척지를 농지로 만들어 농사를 시작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농사를 지었고,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아버지가 소를 판 돈을 훔쳐 서울로 달아났다.

쌀가게 취직한 그는 궂은일도 솔선수범해서 했고 이후 자수성가했다. 하지만 늘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을 갖고 있던 정 회장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심으로 농장을 만들어 관리했던 것.

그리고 그 농장은 계속 커져 소 50두는 어느새 3500마리가 되었다. 이에 직원들은 적자를 메꾸기 위해 소를 팔자고 했고, 정주영 회장은 소를 팔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극비리에 북한으로 소를 보내는 것을 준비하라 일렀다. 이는 남북 관계의 역사를 바꾼 빅 이벤트 소떼 방북의 시작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햇볕 정책 이후 대북 사업과 기업인의 방북을 허용한 정부. 이에 정주영 회장은 곧바로 실행에 돌입한 것.

그는 소떼를 판문점을 통과해 보내기로 했다. 본인이 직접 소들과 함께 육로로 걸어가겠다는 이야기에 북측도 분주해졌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북측에서도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이를 허락한 것이었다.

이에 본격적인 소떼들의 방북이 준비됐다. 총 천 마리의 소를 보내기로 한 정 회장, 그는 수송할 차가 마땅치 않자 소를 수송할 트럭도 제작하게 했다. 그리고 구제역 위험으로 북으로 간 차는 다시 나갈 수 없다고 하자 소뿐만 아니라 트럭까지 전부 주고 오도록 했다.

1998년 6월 16일, 밤 11시 소를 태운 트럭 50대가 판문점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판문점까지 향하는 여정은 모두 생중계되었다.

실향민들은 북으로 가는 소들을 보며 부러워했고, 눈물로 배웅을 했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은 "긴 세월 저는 묵묵히 일 잘하고 참을성 있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 걸어왔다. 이제 그 한 마리 소가 천 마리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려 꿈에 그리던 고향 산천에 찾아간다"라며 영영 넘을 수 없었던 금지된 그 선을 넘어 고향으로 향했다.

본인이 간척한 땅에서 키운 소와 직접 만든 차를 가지고 고향으로 향하는 그야말로 금의환향인 것.

북으로 간 회장님은 7박 8일의 일정 동안 고향집도 방문해 친척들을 만났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북에서 준 엄청난 선물을 들고 돌아왔다.

정주영 회장의 방북 이후 금강산 관광의 물꼬가 터진 것이다.

그리고 4개월 후 2차 방북 때는 예정됐던 소 500마리에 1마리를 추가했다. 천 마리는 마침표 같으니 한 마리를 더 보내자는 것. 이는 끝이 아닌 시작을 의미했다.

또한 이 때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정주영 회장을 만나러 오는 이례적인 일도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금강산으로 가는 배가 출항했고 10년간 금강산에는 무려 195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이후 개성공단도 활발해졌고 그렇게 통일이라는 것은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후 크고 작은 사건이 생겼고 이에 금강산 관광도 개성공단도 모두 중단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소떼 방북은 무엇을 남겼을까. 이에 그날을 기억하는 이들은 언젠가 다시 올지도 모르는 그날을 기다렸다. 정주영 회장이 넘었던 그 선을 또다시 남과 북의 누군가가 넘어가는 그날을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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