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화)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이보영 "지금까지 잘 버텼죠, 앞으로도 잘 버텨보려고요"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3.15 10:50 수정 2023.03.15 11:58 조회 7,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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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대행사'는 대기업 VC그룹 계열의 광고대행사인 VC기획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우아하게, 때론 처절하게 그린 작품이다. 오로지 실력 하나로 정상에 오르는 주인공 고아인은 그 위치에 가기 위해 맹렬하게 싸우고 외로움도 고통도 혼자 감내한다. 마지막에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내적 성장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결론을 맺지만, 당연히 거기까지 가는 게 쉽지는 않다.

엄마에게 버림 받고 어릴 적부터 고된 인생이었던 고아인은 돈이 없어 명문대학교에 합격하고도 지방대를 나와야 했고, VC기획에 만점으로 입사해 19년간 앞만 보고 달려 국내 최고의 광고인이 됐다. 하지만 학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원 인사에서 밀려날 뻔 했고, 가까스로 임원이 됐지만 1년짜리 얼굴마담 임시 임원 자리였다. 그래도 고아인은 버텼고, 결국 위기에서 살아남아 VC기획 사장 자리까지 올라간다.

배우 이보영은 이런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봤다. 물론, 겉은 강해보이지만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고아인이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은 채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고, 남에게 독설을 서슴지 않으면서 독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온갖 어려움 속에서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고아인을 보며, 이보영은 "아인이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처럼, 나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고, 앞으로도 잘 버텨내고 싶다"며 고아인도 자신도 응원했다.

이보영은 어느덧 연기 경력 20년이 된 배우다. 그 20년이란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부침이 있었겠나.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으로 얼굴이 안 움직이고, 감독한테 혼나는 게 겁이나 현장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버티다 보니 언제부턴가 연기가 재미있어졌고 현장이 좋아졌다. 그렇게 배우 이보영도 고아인처럼 버티고 버텨 여기까지 왔다.

연기를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이제 작품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는 않는다. 평소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조차 일로 느껴져서, 그 자체에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이보영이다. 하지만 이번 '대행사'는 그녀에게 특별하고 고마운 드라마다.

이보영

▲ 성공적인 첫 오피스 드라마…일희일비 하지는 않아

'대행사'는 연기 경력 20년의 이보영에게 첫 오피스 드라마였다. 직급마다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회사 내부의 이야기. 이토록 많은 배우들과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오피스 드라마가 처음이라서 재밌게 찍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한 공간에서 촬영한 게 처음이었죠. '대행사' 팀은 감독님부터 배우들, 스태프들이 다 소통이 잘 되는 팀이었어요. 많은 대화를 나누며, 다같이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는 기분으로 정말 재밌게 찍었어요. 드라마에 많은 분들이 나오는데, 즐겁게 찍은 만큼 다 같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제 생각보다도 시청률이 너무 잘나와서, 감사하고 놀랐어요."

최고 시청률 16%를 찍었고, 타이틀롤 고아인을 소화한 이보영의 연기력에는 극찬이 이어졌다. 당연히 이보영에게도 주변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었을 터. 이보영은 인상 깊었던 주변 반응을 묻자, "재밌다"고 언급한 지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기본적인 칭찬의 말인데, 왜 그녀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을까.

"사실, 데뷔한 지 이 정도 되면, 드라마를 해도 아무도 저한테 반응을 얘기해 주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친하게 지내는 스크립터 동생이 '드라마 너무 재밌다. 과몰입 중이다'라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래서 제가 '넌 드라마를 찍는 애가, 드라마를 보면 재밌니?'라고 물었어요. 전, 드라마를 보는 게 재밌지 않거든요. 저한테는 객관화가 안 되고 그게 일로 느껴지니, 드라마를 보면 재미보단 저의 부족한 부분들이 먼저 보여 과몰입이 안되죠. 그런데 그 친구가 오랜만에 재밌게 봤다고 반응해줘서, 그게 저한텐 남다르게 다가왔어요."

'대행사'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후속작이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의 바통을 이어받는 자리,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로서 시청률 부담이 있을 수 있다. 이보영은 시청률의 수치보다는, 자신의 연기가 이해받지 못 할까봐를 더 걱정했다.

"전작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어요. 전혀 다른 드라마니까, 아예 연결해서 생각하지를 않았죠. 그리고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는게, 안되면 안되는 거니까요. 열심히 찍었으면 돼요. 그 다음에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대중의 몫이고 제 손은 떠난 거죠. 안되면 속상하긴 하겠지만, 그걸로 막 불안하거나 초조하진 않아요. 대신 그런 건 있어요. 제가 이제 나이도 있고, 예전처럼 '저 정도만 해도 돼'라고 배우로서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는 시기는 지났더라고요. 거기서 오는 부담감이 있긴 했어요."

이보영

이보영이 언급한 것처럼, 배우로서 연기가 '저 정도만 해도 된다'고 적당히 이해 받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그리고 그녀의 연기는 그 정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어느 작품을 맡든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이보영은 '원톱' 주연물도 얼마든지 소화 가능한 배우다. '대행사'도 이보영의 원톱 드라마였는데, 보기 좋게 성공해냈다. 스스로 뿌듯함이나 자부심이 있을 법 하지만, 이보영은 벌써 드라마의 영광은 다 잊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작품이 잘됐다고 해서 자부심을 느끼지는 않아요.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일희일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느끼죠. 그래서 방송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다 잊어버려요. 물론 그 순간에는 감사하고, 찍을 때는 즐겁게 찍긴 하지만요. 최근 들어서 운이 좋았는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들을 연달아 찍고 있어요. '대행사'도 그랬고, '마더', '마인'도 그랬어요. 찍으면서 '내가 이렇게 즐겁게 찍는게 이 작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다음에 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런 생각들 때문에 마지막 촬영 즈음에 섭섭한 마음이 드는데, 그거 빼고는 드라마가 잘 됐다고 해서 기분이 막 업(UP) 되지는 않아요. 어차피 사람들도 금방 까먹을 걸 아니까요."

▲ 독한 고아인, 미워보이지 않게 연기하려 했다

고아인은 회사 내에서 실력으로 트집 잡을 게 없는 똑똑한 인물이지만, 남들에게 할 말 다하며 독설을 서슴지 않는 '센 언니' 캐릭터였다. 그런 고아인의 독설이 사이다처럼 쾌감을 줄 때도 있지만, 상처를 주는 가시 같은 말들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보영은 이런 고아인을 연기하며 '미워 보이지 않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 작품은 고아인의 성장기를 그렸어요. 혼자 잘난 줄 알던 사람이 어느 순간 다른 이들과 교류하는 걸 알고, 자기 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면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초반에 감독님하고 '고아인을 응원하게 만들자'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고아인이 미운 말을 하지만, 보통은 속으로만 생각하는 걸 고아인이 하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을까, 보시는 분들의 등을 긁어주지 않을까, 그럼 시청자도 이 아이가 잘 되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따라오지 않을까. 그렇게 고아인이 미워 보이지 않게 하려 했어요. 찍을 땐 너무 재밌었죠. 처음 해보는 연기였거든요. 이 대사는 어떻게 못 되게 칠까, 소리는 어디까지 질러야 하나, 그런 고민도 재밌었고, 매 신마다 고아인이 하고 싶은 말을 똑똑하게 다 해주는 것에 있어서, 연기하는 저도 감탄하며 재미를 느꼈어요."

이보영

고아인은 성공을 위해 스스로를 사정없이 채찍질 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신경정신과 약을 달고 산다. 목표하는 바를 얻기 위해, 부하직원들을 닦달하기도 한다. 이보영은 고아인과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며, 자신도 그런 상사는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아인 같은 상사는 닮고 싶지 않죠. 연기하면서는 재밌었지만, 고아인처럼 그렇게 막말하고 전투력이 있는 사람은 현실에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그냥 드라마 속 캐릭터라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당연히 저와 닮은 면은 1도 없죠. 저는 고아인처럼 적막한 집에 들어가는 것도 싫고, 집에서 혼자 약 먹고 술 먹는 것도 싫어요. 그렇게 막말하는 사람도 못 되고요. 고아인과 닮은 건, 얼굴 뿐이겠네요.(웃음)"

이보영이 가장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건, 고아인과 엄마 서은자(김미경 분)의 관계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서은자는 딸 고아인이 8살 때 집에서 도망쳤고, 그렇게 30여년 고아인은 엄마 없이 홀로 성장했다. 실제로 두 아이의 엄마인 이보영은, 아이를 버리는 매정한 모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인이가 상처를 극복하려면 엄마와의 서사가 필요하긴 했지만, 솔직히 이해는 안 갔죠. 그래서 찍기 힘들었던 장면이에요. 아이를 버리고 무서워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그 상황을, 제가 아기를 낳고 보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고요. 어떻게 아이를 버려요. 찍을 때는 엄마가 잡은 아인이의 팔찌만 봐도 눈물이 났어요. '엄마 가지마'라는 딸을 버리는 엄마, 그런 엄마가 없이 8살 때부터 살아온 아인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엄청 나더라고요."

이보영

▲ 잘 버텨왔고, 앞으로도 잘 버티자

고아인과 닮은 구석은 없다지만, 이보영은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고아인과 다른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고아인을 보며 제가 생각이 났어요. '얘도 이렇게 버티고 있고, 나도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고, 앞으로도 잘 버텨야겠다. 정말 잘 버텨보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 모두가 다 하루하루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요? 내 삶을 책임지게 되는 순간부터, 그 짐을 어깨에 얹고 살아가는 그 순간부터, 계속 버티는 거잖아요. 그래서 옛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인이도 잘 버티고, 나도 잘 버티자며."

이보영은 배우 생활 20년동안 잘 버텨온 자신을 감쌌다. 연기를 중간에 그만둘 뻔 했던 경험이 있기에, 지금까지 버틴 것에 남다른 의미를 두게 된다. '연기 대상'까지 수상한,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오른 이보영이 처음에는 연기가 적성에 안 맞았다니, 자칫 소중한 배우 하나를 잃을 뻔 했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 이 쪽 일이 정말 적성에 안 맞았어요. 도망치고 싶었고, 현장에 가기 싫었고, 감독님께 혼나는게 겁이 났어요. 열심히 준비해서 가도 카메라 앞에 서면 얼굴이 안 움직이고,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게 싫었어요. 아인이가 초년 시절에 깨지는 걸 보며, 제 옛날 생각을 했어요. 다들 그렇잖아요? 사회생활을 처음 하면 그렇게 힘든 시기가 있죠. 전 그 때 기계적으로 끌려 다니면서 연기를 하다보니, 무섭고 두렵고 바보 같았어요. 그러다 일을 쉬게 됐는데, 역시 사람은 일이 없으니 간절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절 찾아주는게 감사하고, 연기하는 게 재밌고, 제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지금도 현장에 가면 너무 설레고, 그 현장 공기가 너무 좋아요. 진짜 내가 된 거 같고, 누군가 날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이보영은 남편인 배우 지성과 '대상 부부'로 불린다. 부부가 모두 연말 방송사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는, 자타공인 연기력을 인정받은 부부다. 부부가 모두 연기를 잘하니, 서로 자극제가 되지는 않을까.

"오빠(지성)는 이번 드라마 재밌다고 했어요. 전 객관화가 안되니, '진짜 재밌냐'고 묻고 그랬죠. 평소 연기에 대해서는 서로 관여하지 않아요. 각자 최선을 다하는 걸 아니까, 작품 고르는 것도 전혀 터치하지 않죠. 서로 자극제가 되지도 않아요. 솔직히 연애할 땐 자극이 있긴 했어요. 제가 연기를 열심히 하게 된 게, 오빠가 열심히 하는걸 보고 그게 큰 자극이 돼서 였거든요. 근데 같이 살면서는, 잘되면 서로 좋은 거니까 그냥 서로 박수쳐 줄 뿐이죠.(웃음)"

이보영

단아하고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에 똑 부러지는 성격 때문인지, 이보영은 전문직 여성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법조인 캐릭터를 수차례 맡았고, 이번 '대행사'에서도 카리스마와 지성을 겸비한 대기업 여성 임원 캐릭터로 전문성을 보여줬다. '사연 있는 전문직 캐릭터'가 유독 많이 들어온다는 그녀다.

"저도 다양한 거 하고 싶죠. 근데 잘 안 들어와요. 망가지는 것도 하고 싶고, 밝은 것도 하고 싶은데, 제가 그렇게 안 보이나 봐요. 전 사연이 많은 사람도 아닌데, 왜 그런 캐릭터만 들어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딱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전 대본을 읽었을 때 재미있거나, 제가 연기하고 싶은 신이나 확 꽂히는 신이 있으면 하고 싶다고 느껴요. 그런데 차기작(TVING 오리지널 '하이드')도 또 전문직에 사연 많은 캐릭터네요.(웃음) 그 대본을 재밌게 봤거든요."

마지막으로 이보영은 세상의 고아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고아인을 연기하며 '얘는 진짜 왜 이렇게 살까'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뭐가 행복인지, 뭐를 즐겨야 하는 지, 세상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고 사는 친구였죠. 그래서 촬영 현장에서 농담으로 가장 많이 한 말이 '뭣이 중헌디'였어요. 아인이가 추구하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란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세상에서 중요한 건, 내 심신의 건강, 내 안에 서있는 것들이죠. 아인이가 나중에라도 뭐가 중요한 지 알아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도, 그러길 바라요."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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