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9일 방송된 '1975 베트남 탈출기'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별, 배우 송영규, 김기혁 아나운서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최후의 사이공, 그 곳에 있던 사람들
외교관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우리 교민들을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것. 지금 사이공에는 우리 교민 1천여명이 남아있어.
▲ 교민들을 무사히 탈출시켜라
4월 22일, 우리 배가 사이공 뉴포트항에 도착했어. 근데 구호품을 다 내리기도 전에 한국 해군사령부에서 긴급 전문이 날아왔어.
그 사이, 사이공 항구는 점점 더 위험해져. 함정에서는 10분 간격으로 수류탄을 투척했어.
"베트콩들은 수중으로 침투해서 배에 폭탄을 붙여 버려요. (수중에 수류탄을 투척하면) 잠수하는 잠수부들 고막이 터져 버려요. 이 폭발 소리나면 게릴라들이 수중으로 못 들어와요. 그렇게 해서 자체 방어를 거의 완벽하게 했죠."
-박인석, 당시 LST 310호 함장
▲ 미국 대사관에 모여든 사람들
교민들을 무사히 탈출시키고 나서,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한숨을 돌렸어. 하지만, 사이공이 함락되면 한국 대사관도 안전하지 않아. 남은 사람은 외교관 15명, 그리고 안병찬 기자. 그런데 탈출 준비를 못했어. 이미 뱃길은 막혔고 비행기 표도 못 구해. 이들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어. 바로 미국이야. 미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한국은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전쟁에 32만명을 파병했어. 이런 돈독한 관계 속에, 미국 대사관은 위급한 상황이 되면 한국 외교관들의 철수를 도와주기로 약속이 돼 있었어.
그날 밤,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 공항이야. 외교관들이 비행기를 타러 가려 했던, 사이공의 탄손누트 공항 쪽에서 밤새 폭발음이 들려. 공항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일반 외국 비행기들이 안 들어와. 결국 공항은 폐쇄됐어. 사이공은 완전히 봉쇄된 거야. 안 영사와 이 보좌관, 안 기자는 공포에 휩싸였어.
미국 정부는 북베트남에 점령되면 '피의 보복'이 벌어질 거라 예측했어. 그들의 보복 대상은, 북베트남과 싸운 사람들. 즉, 미국과 미국에 협조한 사람들이야. 한국인들도 그 보복 대상이야. 어서 여기서 탈출해야해.
미국 대사관 쪽에서 한국 대사관에 미리 알려준 게 있었어. 라디오를 꼭 가지고 다니라는 것. 그리고 주파수를 FM에 맞추고, 라디오에서 일기예보가 나온 후 '그 노래'가 나오면 즉시 약속 지점으로 오라는 약속이었어. 미국이 보내는 노래 암호는 바로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어. 의미는 '긴급 철수 작전 개시'.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여권 하나만 들고 나와라, 그리고 미리 약속한 '어셈블리 포인트' 집결 지점으로 가면 헬기가 있을 것이다. 그걸 타고 사이공을 탈출하라는 뜻이야.
이 암호를 못 들으면 끝이야. 탈출 기회는 없어. 다음날인 4월 29일, 다들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 "한국 외교관들은 어셈블리 포인트3로 오라"는 전화가 오고, 곧바로 라디오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흘러 나왔어. 최후의 탈출 순간이 온 거야.
▲ 마지막 헬기가 떠났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갑자기 세찬 빗줄기까지 퍼부어. 스콜이야. 야외에 있던 사람들은 꼼짝없이 앉아 비를 맞아. 혹시나 자리를 이탈했다가 내 순서가 밀릴 수도 있으니. 여전히 한국의 외교관들은 헬기 탑승장으로 가는 그 작은 철문을 아직 넘지 못했어. 줄은 줄지 않고, 사람들은 계속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어. 어느덧 밤 10시, 미국 대사관에 들어온지 12시간이 지났어. 점점 조바심이 나지. 한국 외교관들 순서가 오지 않아.
바로 그때, 안면이 있는 미국 대사관 직원이 앞을 지나갔어. 통사정을 했더니, 미국 대사관 직원이 앞 줄에 끼워줬어. 이제 철문 바로 앞까지 왔어.
거기에 뒤늦게 도착한 미국인들까지 앞에 선 한국인들을 제치고 철문을 통과해. 그렇게, 미국인들이 탄 헬기가 또 가버렸어. 이 철문 밖엔 이제 한국인들과 베트남인만 남았어. 근데 갑자기 경비를 서던 미군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이제 곧 우리 차례인데, 미군들이 슬금슬금 철문 안으로 들어가. 그러더니 문을 철컥 닫고, '스탑(STOP)'이라 말했어.
그 순간, 비명과 함께 줄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철문으로 달려갔어. 쇠창살을 두드리며 울부짖어. 우리 외교관들과 안 기자도 공황상태에 빠졌어. 긴급 철수 작전이 중단된 이유는, 다소 황당하게도 미군의 휴식시간 때문이였어. 미군 조종사들의 복무 규정이래. 12시간 운행하면 반드시 쉬어야만 한대.
안 영사는 교민들과 함께 뒷줄에 서 있었어. 그래도 다행히 대기자 전원이 헬기 탑승장으로 들어왔어. 이 때가 새벽 1시 45분, 미국 대사관에 들어온 지 15시간만이야. 이제 안전지대에 들어왔구나, 안심했어.
"안돼! 우리도 데려가!" 사람들이 멀어지는 미군들을 향해 뛰어가. 절망에 빠져 뒤엉켜 울부짖어.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흐르고 앞이 안보여.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미군이 최루탄을 발사한 거야. 그렇게 사람들이 다가오는 걸 막고 옥상으로 올라가 헬기를 타고 떠났어.
안 영사는 제정신이 아니야. 최루탄과 절망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고함 치는 사람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있어. 그런데 그 때, 어디선가 미국 대사관이 곧 폭파될 거라는 소리가 나왔어. 살기 위해 들어온 이 곳을, 살려고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인 거야. 안 영사는 입구를 향해 뛰었어. 근데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안 영사는 죽을 힘을 다해 담을 기어 올랐어. 철조망에 찔려 피가 흐르는데, 간신히 그 높은 담을 뛰어 넘었어. 다행히도 폭발은 없었어. 끝내 우리 외교관 9명과 교민 130명은 사이공에 남겨졌어.
▲ 끌려간 교도소, 기약 없는 수감 생활
사이공 최후의 날이 서서히 밝아와. 곧 북베트남의 탱크가 밀려올 거야. 이제 어디로 가야 무사할까? 그때 누군가 프랑스 대사관으로 가서 도와달라고 하자고 했어. 외교관들은 교민들을 이끌고 프랑스 대사관으로 갔어. 벨을 누르고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 열어줘. 이번엔 일본 대사관으로 갔어. 벨을 누르니 문이 열렸어. 근데 못 들여보내준대. 몇시간 후면 사이공은 북베트남 수중에 떨어질 테니, 사이공의 새 주인한테 잘 보여야 해.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북베트남과 직접 싸운 한국은, 부담스러운 존재지. 일본 대사관 직원은 측은한 눈빛으로 몸조심 하라면서 "북베트남과 북한은 형제 사이다. 한국 외교관들을 북한으로 끌고 갈 거라 한다"고 말했어.
이제 갈 곳이 없어. 당시에 외교관들이 느꼈던 심경을 적은 글이 있어.
"죽어야겠지. 놈들에게 끌려가서 고초를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지. 인적이 없는 조용한 곳을 찾아야지. 면도날로 동맥을 끊고 가만 누워있으면 되는 건가. 의사에게 가서 약을 달라고 애원해볼까?"
-김창근, 당시 주남베트남 한국 대사관 서기관 수기 中
수감 3개월 후, 드디어 독방의 문이 열렸어. 간수를 따라가 보니, 책상과 의자가 놓인 방이야. 안 영사가 의자에 앉았더니 누군가 들어오는데, 얼굴을 보니 한국인이야. 평양에서 온 북한 공작원이었어. 가장 두려워하던 그 순간이 온 거야.
안 영사는 48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감정이 북받쳐.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에 담긴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이 가사를 수없이 되내였대.
▲ 5년만의 석방, 뒤늦게 알려진 진실
철수 작전이 성공해 모두 탈출했다는 내용이야. 남은 교민들은 옛날부터 살던 베트남 국적 교민들이라고 쓰여있어. 우리 외교관들이 억류돼 있단 이야기가 없어. 이 사실을 정부가 모르진 않았어. 사이공 함락 직후에, 한국 대사가 직접 보고까지 했어. 정부가 언론 보도를 못하게 막은 거야. 석방 교섭에 차질을 줄 수 있단 게 이유였어. 근데 이게 우리 정부에겐, 뼈아픈 실책이 아니었을까. 자유진영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파병해서 우리 군인 5천명이 목숨을 잃었어. 근데 베트남은 공산화 됐고, 우리 외교관들은 미국의 헬기에 타지 못하고 감옥에 갇혔으니.
사이공 함락 1년후, 1976년. 베트남은 남북이 통일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이 됐어. 사이공은 호찌민이 됐고. 한국 교민들과 나머지 외교관들에게도 드디어 출국 허가가 떨어졌어. 그런데 3명의 외교관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어. 우리 정부도 외교관들을 석방시키려 노력했어. 제3국을 통해 베트남 정부를 설득하고, 북한과도 협상에 나섰어. 하지만 쉽지 않았어.
게다가 1979년에는 또다른 변수가 등장했어. 안 영사가 감방에 있는데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이야. 결국 해를 넘긴 1980년 4월 12일. 드디어 외교관 3명이 석방됐어. 수감된 지 5년만의 일이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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