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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산부인과서 뒤바뀐 딸, 20년만에 만났는데…친부모에 버림 받은 안타까운 사연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2.03 12:17 수정 2023.02.03 13:56 조회 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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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일 방송된 '뒤바뀐 딸-20년만의 재회'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방송인 이지혜, 가수 장예은, 배우 김정태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내 딸과 똑 같은 아이를 만나다

때는 1981년 5월 8일 어버이날. 의정부에 사는 34살 문영길 씨가 집을 나서려 해. 오후 출근 전에 이발소에 가려고. 그 때 아내 옥열 씨가 3살 된 딸 민경이도 데려가라 했어. 아내는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게 보기 바쁘니까 딸을 데려가라는 거야. 아빠 영길 씨는 딸 민경이의 손을 꼭 잡고 버스를 탔어. 30분쯤 후,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버스가 정류장을 그냥 지나친 거야. 어쩔 수 없이 영길 씨는 딸과 다음 정거장에 내렸어. 그 땐 몰랐어. 이 작은 사건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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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가던 이발소를 지나 난감해하고 있던 영길 씨의 눈에 처음 보는 이발소 간판이 들어왔어. 어린 딸을 데리고 먼 거리를 걷기 힘드니까, 영길 씨는 그 이발소에 들어갔어.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데, 이발소 종업원이 영길 씨를 이상하게 쳐다봐. 그리고 뜻밖의 말을 했어. 당시의 이야기를 지금의 영길 씨한테 직접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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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문을 딱 열고 들어갔더니 종업원이 하는 소리가 '왜 우리 친구 딸을 데려왔어요?' 이러는 거예요. 내 딸애라고 얘기했더니, 무슨 소리냐고. 얘는 자기 친구 딸이라는 거예요."
-문영길, 민경이 아빠

종업원의 말이 이상했지만 영길 씨는 그러려니 하고, 민경이를 의자에 앉혀놓고 이발을 시작했어. 힐끔 보니 잠시 후 종업원이 가게를 나가. 알고보니 이 종업원, 자기 친구집에 간 거야. 영길 씨가 친구 딸을 납치한 유괴범인 줄 알고. 얼마 안돼서 그 종업원이 이발소로 돌아왔어. 그러더니 말해. "거 참, 이상하네. 친구 딸이 거기도 있고 여기도 있네?"라고.

이 말을 들은 영길 씨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사실 영길 씨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게 처음이 아니거든. 그동안 민경이를 닮은 아이를 봤다는 소리를 이곳 저곳에서 들었던 영길 씨는 이발소 종업원의 이야기가 예사로 들리지 않았어. 그래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그 종업원에게 "우리 애랑 똑같이 생겼다는 그 아이, 지금 좀 데려와달라"고 부탁했어.

얼마 후, 종업원이 자기 친구의 딸을 데리고 돌아왔어. 그 아이를 본 영길 씨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어. 민경이랑 정말 똑같이 생겼거든. 직접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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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가 영길 씨 딸 민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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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왼쪽의 이 아이가, 종업원의 친구 이 씨의 딸 향미. 한 눈에 봐도 닮았지? 입고 있는 옷만 다르지, 얼굴이 똑같아.

영길 씨는 자기 딸이랑 똑 같은 아이를 보고 아내한테 전화를 걸었어. 전화를 받은 아내도 깜짝 놀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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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왔더라고요. '나 오늘 회사 못 나가' 그래서 '왜?' 그랬더니 '우리 아이 찾았어' 그러더라고요. 거짓말 하지 말고 빨리 집에 와서 출근하라고 했더니, '나 지금 다리가 떨려서 오늘 출근 못 해' 그때 이발소에 가서 했던 일을 다 얘기 하더라고. 심각하게 빨리 병원에 가서 확인하라고. 뭔가 잘못된 거 같다고."
-김옥열, 민경이 엄마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 병원에서 뒤바뀐 딸

문영길 씨-김옥열 씨의 딸 민경이는 1979년 1월 1일 새해 첫날에 태어났어. 그리고 이 씨와 최 씨의 딸 향미는 1978년 12월 31일 태어났어. 둘은 하루 차이로 태어났고, 둘 다 의정부에 있는 S병원에서 태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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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 여기에 아이가 한 명 더 있었어. 민경이가 쌍둥이로 태어났거든. 민경이 쌍둥이 동생의 이름은 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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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쌍둥이인데 민경이와 민아는 좀 안 닮았어. 이란성 쌍둥이야. 민경이와 민아는 안 닮은 이란성 쌍둥이이고, 민경이와 꼭 닮은 향미는 다른 집 아이야. 세 아이는 같은 산부인과에서 하루 차이로 태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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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서 어떤 추론이 가능할까? 아이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거.

영길 씨 부부는 쌍둥이를 데리고 곧장 산부인과로 갔는데, 병원 측은 근거도 없이 무슨 소리를 하냐고 펄쩍 뛰었어. 일단, 혈액형부터 따져봤어. 부모의 혈액형에 따라 자녀의 혈액형이 달라지니까.

쌍둥이네 가족은 아빠 엄마가 둘 다 O형이야. 그럼 자식들은 모두 O형이 나와야 해. 다른 혈액형은 나올 수가 없어. 그런데 민경이는 O형, 민아는 A형이 나왔어. 설마 설마 했는데, 민아가 친딸이 아닐 가능성이 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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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미네도 혈액형 검사를 했어. 향미 아빠 이 씨는 O형, 엄마 최 씨는 A형이야. 그럼 향미의 혈액형은 O형 아니면 A형이 나올 수 있어. 검사 결과 향미는 O형이 나왔어. 그런데 향미가 O형이면, 민경이랑 혈액형이 같잖아. 만약 둘이 일란성 쌍둥이라면? 혈액형도 같겠지. 문제가 되는 건 민아의 혈액형이야. 민아의 A형은 영길씨 부부 사이에선 나올 수가 없고, 이 씨 부부 사이에선 가능해.

과거에는 아이가 바뀌는 일이 종종 일어났어. 그래서 자식이 성인이 되어서야 바뀐 걸 알았다는 뉴스가 곧잘 나왔어. 아기들이 태어나면 신생아실에 모여있는데, 다들 비슷 비슷하게 생겼잖아? 또 신생아의 얼굴은 하루하루 달라지는데, 요즘이야 휴대폰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두지만 옛날엔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잠깐 얼굴 보는 게 전부니까. 아기가 바뀌어도 모를 수 있어. 또 설마 병원에서 아기가 바뀌겠냐, 하는 믿음도 있었고.

아기들이 태어난 2년 4개월 전으로 돌아가 볼게. 1978년 12월 31일에 향미는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태어났어. 팔삭둥이로, 체중이 1.7kg이었어. 그래서 인큐베이터로 옮겨졌고 엄마 아빠랑은 한동안 만나기 힘들었어. 대신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의료진의 집중치료를 받았어. 근데 그 공간에는 다른 미숙아도 있었어. 바로 민아였어. 쌍둥이 중 2분 먼저 나온 민경이는 2.2kg로 태어나 입원을 면했지만, 민아는 2kg로 태어나서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간 거야. 그렇게 향미와 민아는 12일동안 같은 공간에 있었어. 부모보다 의료진이 민아와 향미를 더 많이 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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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당시 병원 근무자를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어. 그런데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난대. 경찰은 당시 진료일지를 찾았어. 그리고 수상한 지점을 발견했어.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있었던 향미와 민아의 1월 9일 기준 체중 변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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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미는 체중이 계속 증가하는데, 민아는 체중이 점점 줄어. 신생아는 생후 일주일 뒤부터 체중 감소가 거의 없다는데, 민아의 체중 변화가 이상해. 그래서 경찰은 두 아이의 체중 기록을 바꿔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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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그게 더 자연스러워. 이를 토대로, 경찰은 1월 9일쯤에 두 아이가 바뀌었다고 추정했어.

그리고 당시 두 아기를 담당했던 간호사는 이렇게 증언했어.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제가 관련된 일인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신생아실 어린이들은 보통 자정이 넘어 한가한 시간에 간호사들이 번갈아 목욕을 시킵니다. 비닐 띠에 볼펜으로 쓴 이름표가 지워졌을 때는 바꿔주기도 하고, 손목과 발목에 있는 이름표를 떼어놓고 목욕시키는 경우가 있어서 아이가 뒤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1979년 1월 8일에서 9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간호사가 향미와 민아를 번갈아 가며 씻겼어. 그 때 이름표를 떼어놓았고, 목욕을 마친 후 두 아이의 이름표를 바꿔 달았을 가능성이 큰 거야.

"이럴 수가 있나, 원망도 많이 했죠. 정말... 실수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좀 화가 굉장히 나요."
-문영길, 쌍둥이 아빠

차트를 계속 잘 체크했더라면 뭔가 이상하단 걸 알았을 텐데. 이건 명백한 병원의 부주의야. 이렇게 황당한 이유로 두 아이는, 바뀌어서 다른 집에서 자라왔어. 무려 2년 4개월 동안.

▲ 기른 정 vs 낳은 정

당시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며, 전국의 부모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어. 기른 정과 낳은 정,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솜털 보송보송한 젖먹이를 정성 들여 키웠어. 얼마나 정이 들었겠어. 또 어린 아이들이 받을 충격도 걱정스럽고. 하지만,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고 하잖아? 내가 낳은 친자식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된 마당에 어떻게 다른 부모한테 계속 둘 수 있겠어. 아이들이 어릴 때 바꾸는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고. 기른 정과 낳은 정, 쉽지 않은 선택이야.

이 가족들의 경우엔 그 선택이 조금 더 어려워. 사실 민아가 조금 아팠거든. 민경이가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려고 하고 앉으려고 할 때, 민아는 꼼짝 안하고 누워만 있었어. 3살이 되도록 서지도 못하고, 엄마 아빠 소리도 못 했어. 엄마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민아를 데리고 병원에 가봤는데, 병원에서는 애들이 좀 늦을 수도 있다고,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어. 아이가 감기만 걸려도 애타는게 부모 마음이야. 잠든 민아를 보며 눈물로 지새운 밤이 하루이틀이 아니야. 그 와중에 민아는, 그렇게 엄마만 찾아. 완전 엄마 껌딱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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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한테도 안 가고 아무한테도 안 갔어요. 엄마 품에 있으면 좋다고 하고. 빨래 할 때도 뭐 할 때도 등에 업거나 아니면 안고. 바닥에 놓고 키운 적이 없어요. (엄마가) 안 보이면 울기 때문에. 그래도 예쁜 거예요."

-김옥열, 쌍둥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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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민아를 다른 집에 보낼 수 있을까? 그런데 병원에서 본, 향미도 눈에 아른거려. 민경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민경이를 볼 때마다 향미가 생각이 나. 두 아이를 바꿔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에도 열 두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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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반대쪽인 향미네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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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꿀 수가 없어요. 나는 죽어도 얘는 안 줄 거예요. 얼굴이 똑같았을 뿐이지, 내가 젖 먹여서 키웠기 떄문에. (아기를) 줄 수가 없어요."
-최 씨, 향미 엄마

향미는 이 씨 부부의 첫 아이였어. 어려운 형편에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 애썼대. 힘들게 키운 아이를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야. 향미랑 민아가 그냥 많이 닮은 걸 수도 있지 않냐며, 상황 자체를 부정했어. 게다가 설령 민경이랑 향미가 쌍둥이라 쳐도, 민아가 자기들 자식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거야. 병원에서 또다른 아이랑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냐고.

그래서 제대로 친자확인을 해보기로 했어. 지금이야 유전자 검사가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DNA 검사가 완전 이례적인 일이었어. 검사 결과 반전은 없었어. 두 아이는, 바뀐 게 맞았어. 민경이랑 향미가 영길 씨 부부의 친자식이었고, 민아는 이씨 부부의 친자식이야.

▲ 제 자리로 돌아간 아이들

결과가 나오고 이 씨 부부는 잠시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어. 그리고 얼마 후, 뜻밖의 말을 꺼내. "민아 아픈 거, 선천적인 거 맞아요? 그 쪽 부모가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 이제 아픈 아이를 키워야 하는 건 이씨 부부잖아. 민아의 상태를 제대로 알기 전까진, 아이를 바꿀 수 없다는 거야. 그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안타깝고 답답한 상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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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해는 해요. 이해는 하는데, 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냥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내가 키우겠다. 당신들이 안 데려가면 내가 키우겠다고 했어요. 얘(민아)는 항상 무릎에 앉아 있어야 하고, 엄마를 안 보면 울고. 밥을 차릴 때도 한 손으로 차리든지 안 그러면 아들한테 애를 보게끔 해서는 밥상을 차리든지. 그렇게 내가 그 아이를 키웠는데. 마냥 예뻤어요. 왜 그렇게 예쁜지. 만날 예뻐서 그냥 코 빨고 입 빨고 그렇게 하면서 키웠는데. 그 집에서는 그걸 인정 안해주고 원망을 했다는 거. 그게 참 억울하죠."
-김옥열, 쌍둥이 엄마

쌍둥이 부모는 민아랑 향미까지 다 본인들이 키우겠다고 했어. 사실 쌍둥이 부모는 그렇게 아이를 여럿 키울 형편이 안 돼. 근데 친부모가 아픈 민아를 안 데려간다고 하니, 애가 안쓰러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대.

상황은 수습될 기미가 안 보여. 이러다 법정까지 갈 태세야. 결국, 병원이 중재에 나섰어. 지금 병원도 곤란한 상황이니까 수습에 나선 거야. 병원 측은 민아의 상태 확인을 제안했고, 양쪽 부모가 동의해 바로 민아의 입원 수속을 시작했어.

입원 서류에 환자 이름을 쓰며 두 아빠는, 고민을 하다가 볼펜을 들었어. 그리고 '문민아'라는 이름 대신, '이향미'라고 적어 넣었어. 친자가 바뀐 걸, 서류상으로 처음 인정한 거야. 민아는 향미, 향미는 민아 라는 자기 원래 이름을 되찾은 순간이야. 이제부터 민아와 향미, 원래 이름대로 부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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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미는 키워준 쌍둥이 엄마 품에 안겨 검사를 받았어. 물론 그 옆에는 낳아준 엄마도 있었고. 그리고 정밀검사 결과, 향미는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어. 조기 출산 과정에서 발생한 저산소증으로 뇌에 손상을 입었대. 완치는 힘들지만,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은 가능할거라 했어. 병원에서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돕겠다고 약속했어. 향미 부모는 이제 모든 상황을 받아 들였어. 아이들을 바꾸겠다고 결정한 거야. 사건 발생 18일만이었어.

두 가족은 내일 아이들을 바꾸기로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어. 키워준 부모님과의 마지막 밤이 됐어. 쌍둥이네 집은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어. "민아야, 네 이름은 이제 향미야. 거기 가서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어. 우리 향미는 잘 할 거야"라고 말해줬어. 똘망똘망한 눈을 마주치는데, 알아듣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 향미는 금방 잠이 들었고, 엄마 아빠는 혹시 애가 깰까 봐 조용조용 가방에 향미의 물건을 챙겼어. 그러다가 향미 얼굴도 한 번 만져보고, 고사리 같은 손과 발도 만져봤어. 거기 가서 아프진 않을까, 낯선 곳에서 괜찮을까, 내가 없어도 안 울까. 그리고 난 이 아이가 없어도 괜찮을까, 보고 싶으면 보러 갈수는 있나. 이런 저런 걱정이 밤새도록 몰려와.

다음날, 향미와 민아는 친부모의 품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2년 4개월 키워준 부모님과는 작별했어. 남은 문제들은 하나씩 바로 잡혔어. 사고가 났던 병원은 두 가족에게 피해보상금을 지원했고, 향미에게는 평생 진료권을 줬어. 그리고 문제가 됐던 아기 이름표도 플라스틱 팔찌로 교체됐어. 물에 넣어도 망가지거나 젖지 않도록. 이 사건 이후로 전국의 산부인과들이 신생아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대.

바뀐 아이들은 걱정했던 것보단 다행히 괜찮았대. 처음엔 낯설어 했지만, 금세 적응해서 잘 먹고 잘 놀고. 그렇게 친부모 품에서 한 살 한 살 무럭무럭 자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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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만의 재회

시간은 빠르게 흘러 20년이 지났어. 때는 2001년 4월 어느날. 쌍둥이네 부모님이 TV에 출연했어. 당시 방송 장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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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그런 애(몸이 불편한 아이)만 나오면, 애들 엄마 보고 그러죠. 한 번 잘 보라고. 우리 애 혹시나 알면 그 쪽으로 연락해서 한 번 찾아나 보게. 아무리 봐도 나오질 않아요."
-문영길, 쌍둥이네 아버지
"마음 편하게 산 적이 없었어요. 보내고 나서도 키울 때도 그렇고. 어디 있다고만 그러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어요."
-김옥열, 쌍둥이네 어머니

쌍둥이 부모님이 방송까지 나와 향미를 애타게 찾고 있어. 두 가족은, 아이를 맞바꾸고 석 달쯤 뒤에 한 번 만났어. 근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어. 쌍둥이 부모님은 향미가 궁금했지만, 연락 한 번 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대. 괜히 잘 자라고 있는 애 연락해서 들쑤시는 건 아닐지, 잘 지내겠지, 하면서. 그러다 나중엔 향미 얘기를 아예 안 했대. 아빠 영길 씨가 향미 이야기를 아예 못 꺼내게 했어. 향미 생각만 하면 보고싶어 눈물이 났지만, 애써 잊어보려 했어.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해. 향미가 사라졌다는 거야. 살던 동네에서도 한참 안 보이고, 한동안 맡아 키우던 할머니도 모른다고 하고. 아무도 향미가 어디 있는지 모른대. 그 때가 아이들을 바꾼 지 6년이 지났을 무렵, 향미가 8살쯤 됐을 때야.

그 후로 계속 향미를 찾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할지 막막해. 친부모가 아니니 찾을 명분도 방법도 없어. 그래서 쌍둥이 부모님이 방송에 나온 거야. 당시 제작진이 향미를 추적했어. 향미가 살던 동네 주민센터에 알아보니, '무단 전출 신고 말소'가 됐다고 했어. 이는 가출, 행방불명 등으로 해당 주소지에 실제 거주하지 않는 세대원을 말소하는 경우야. 가족들이 주민등록 기록을 말소했대. 서류상 향미가 완전히 증발해버린 거야. 수소문해보니 향미네 가족은 이사한지 오래고, 향미 부모는 이혼을 했어. 아이들을 바꾸고 한동안은 괜찮았대. 병원도 열심히 다니며 잘 지냈는데, 평화로운 시절은 얼마 못 갔어.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어렵게 이어진 친부모와의 인연이 다시 끊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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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방송이 나가고 얼마 뒤, 제보가 왔어. 향미가 서울에 있는 한 재활원에 있다는 관계자의 전화였어. 향미는 1988년, 그러니까 10살 때 이 재활원에 입소했대. 또래보다 조금 늦었지만, 여기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자립을 준비 중이래. 제작진은 이 소식을 쌍둥이 부모한테 알렸어. 그랬더니 바로 만나러 가시겠대. 3살 때 보고 못 본 향미를 20년만에.

그런데 또 막상 가려니까, 향미를 다시 만나는게 맞는 건가 고민됐어. 너무 보고싶지만, 조심스러운 일이니까. 쌍둥이 부모님은 복잡한거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향미 얼굴부터 보자고 결심했어. 그렇게 부모님은 향미가 있는 재활원으로 향했어.

향미가 지내는 방 앞에 서니 심장이 막 쿵쾅거려. 숨을 고르고,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어. 20년의 세월을 단번에 뛰어넘는 순간, 부모님은 향미에게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어. 방 안에 있던 여자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데, 커다란 눈과 도톰한 입술, 동그란 얼굴이 젖먹이 때 그 얼굴 그대로, 엄마 껌딱지였던 향미야.

"반가워요. 저희는, 향미 씨 후원자예요."

쌍둥이 부모님은 향미한테 어릴 적 키웠던 부모라고 말하지 않았어. 민경이 민아도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하거든. 너무 어릴 적 일이라 친부모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처음 만나자마자 이런 얘기를 하면 향미가 충격을 받을 거 같아서, 나중에 천천히 얘기해주자는 생각에 그날은 말을 못했어.

20년만에 만난 향미는 몸이 좀 불편해 보이긴 한데 건강해 보여. 표정도 밝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거 같아. 혹시 가족들이랑 연락은 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가족과의 마지막 기억은 8살때래. 당시 향미는 잠자는데 할머니가 옷을 입으라 해서 옷을 입고 택시에 타라 해서 탔는데, 한참 가서 어느 깜깜한 곳에 내렸대. 거기서 기다리면 엄마가 올 거라고 해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결국 엄마는 오지 않았다고. 무서워서 막 우니까 이를 발견한 어떤 아줌마 덕에 이 시설에 오게 됐다고. 두 분은 조용히 향미 손을 잡아줬어. 고생했다고,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하며.

얼마 후 일요일, 쌍둥이 부모님이 바리바리 짐을 싸. 향미 먹일 음식이며 간식이며 잔뜩 준비했어. 그리고 마음도 단단히 먹었어. 향미한테 20년 전 그 일을 털어놓기로 했어. 친부모와의 연은 끊어졌지만, 키워준 부모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대. 그러니까 외로워하지 말라고.

재활원에 도착하자마자 향미가 반갑게 맞아줬어. 두번째라 그런지 저번보다 더 살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 옥열 씨가 어렵게 입을 뗐어. 갓난쟁이일 때 우리가 키웠다며, 옥열 씨가 천천히 20년 전 이야기를 꺼냈어. 향미가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못 믿더래. 그렇게 한참을 듣던 향미가 갑자기 펑펑 울었어. 당시 상황, 지금의 향미 씨한테 직접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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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예 엄마도 없고. 엄마 아버지도 없고. 그냥 아무도 없는 사람처럼 버려진 줄 알고.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서. 눈물도 나고, 울기도 하고. 안 믿어지죠. 저걸 설마, 설마 했는데. 아기 때 키워줬다고. 맞다고 믿으라고 그러셨어요. 너 향미라고. 똑같네 똑같네. 얼굴하고 입술하고 코하고 (어릴 때랑) 똑같다고. 같이 울었어요. 기쁜 눈물. 감사하다고 했어요. 키워주셨으니까."
-이향미, 다시 만난 딸

향미 씨에게는 당연히 충격이었지만, 감사한 마음이 더 컸어. 지금껏 세상에 혼자인 줄 알았는데. 세 살 때까지 키워준 부모님이 계셨고, 그 분들이 다시 자기를 찾아준 거니까.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대. 어릴 때 기억이 전혀 없으니까. 그래서 처음엔 '아저씨 아줌마'라 불렀어. 그런데 1년 뒤엔, '엄마 아빠'라고 부르게 됐어.

다시 만난 부모님은 향미 씨를 한달에 한 번씩은 만나러 꼭 갔어. 김밥 싸가고, 통닭 사가서 같이 먹고, 겨울엔 내복도 챙겨가고. 그렇게 20년 전에 끊긴 줄 알았던, 부모 자식과의 인연의 끈이 다시 이어졌어. 향미 씨는 부모님 건강을 늘 먼저 챙기는 살가운 딸이야. 그리고 말해. "엄마 아빠한테는 잘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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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 또 다른 이름의 가족

다시, 그로부터 또 20년이 흘렀어. 2022년 겨울, 쌍둥이 부모님은 어느새 일흔을 넘기셨고 향미 씨는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됐어. 그리고 시설을 떠나 자립해서 살고 있대. 스스로 움직이는 건 좀 불편하지만, 활동 지원사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어. 쌍둥이 엄마 아빠랑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꼬박꼬박 통화한대. 근데 얼굴 본지는 10년이 넘었어. 부모님이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셨거든. 아버님이 암투병 하시느라 요양하러 간 거야. 지금은 많이 나아지셨지만, 장거리 여행은 힘드셔. 향미 씨도 몸이 불편해서 지하철 한 번 타는 것도 쉽지 않아. 게다가 코로나19도 있었잖아. 서로 너무 보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됐던 거지.

그래서 '꼬꼬무'가 나섰어. 향미 씨가 제주도에 계신 부모님과 만날 수 있도록.

2022년 11월 29일. 향미 씨는 제주도로 향했어. 부모님과 오랜만에 만나니 머리도 하고 옷도 새 옷으로 사 입었어. 7시간의 여정 끝에 제주도에 도착한 향미 씨. 부모님을 만나면 하고 싶은 일로 '사진 촬영'을 꼽았어. 옛날에 찍어보고 한 번도 못 찍었다면서. 부모님을 만나려니 가슴이 두근두근하대.

제주도에 있던 부모님도 설레는 마음으로 향미 씨를 기다렸어.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난 세 사람. 서로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어. 손을 꼭 잡고, 서로 아픈 데는 없는지 물었어.

꼬꼬무
꼬꼬무
꼬꼬무
꼬꼬무

"엄마 보니까 좋아"
"나도 좋아. 못 볼 줄 알았거든. 먼데 살아서."

세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고, 그렇게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 그리고 향미 씨가 바랐던 대로, 같이 사진 촬영도 했어.

꼬꼬무

우리 삶에 '만약에'는 없다지만, 만약에 재활원에서 향미 씨가 있는 곳을 제보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부모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만약에 이발소 가는 길에 버스를 잘못 내리지 않았다면, 애초에 병원에서 아이들이 바뀌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여기 향미 씨와 부모님은 어디서 어떻게든 만났을 거 같아. 그 어떤 가족보다도 끈끈하고 아름다운, 절대 끊어지지 않을 '인연'이니까.

꼬꼬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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