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지옥' 박정자→'재벌집' 고명딸로, 김신록의 믿고 보는 변신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1.12 17:52 수정 2023.01.12 18:29 조회 6,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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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넷플리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이 공개됐을 때, 박정자 캐릭터를 맡은 배우 김신록을 향한 대중의 칭찬은 놀라울 정도였다. 지옥행 고지를 받고 남은 가족을 위해 시연 생중계를 결정한 박정자가 느끼는 공포감, 우울감, 절망감을 처절하게 보여준 그의 연기가 경이롭고, 심지어 충격적이었다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그에 앞서 드라마 '방법', '괴물'을 봤던 시청자라면, 비중이 크지는 않았어도 김신록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런데 '지옥'은 글로벌 OTT 콘텐츠로서 보다 큰 주목을 받은 탓인지, 박정자 캐릭터를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연기한 이 김신록이란 배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김신록은 이 작품으로 '제20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시리즈부문 올해의 새로운 여자배우상, '제5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조연상, '제1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여자 조연상, '제8회 에이판 스타어워즈' 여자연기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지옥'이 처음 공개됐던 2021년 11월 19일에서 정확히 1년이 지나, 김신록은 또 한 번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번 감탄 포인트는 '지옥'의 박정자와 180도 달랐다. 그는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재벌가 순양을 세운 진양철(이성민) 회장의 고명딸 진화영 캐릭터를 소화하며 다시 한 번 놀라움을 안겼다.

박정자와 진화영, 갭이 커도 너무 컸다. 무채색 의상과 초라한 외형, 가난한 싱글맘의 아픔을 속으로 삭히다가 하늘이 내린 천벌 앞에 불안한 감정을 표출하는 박정자. 반면,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재벌가의 막무가내 고명딸이었던 진화영. 단 한순간도 비슷한 지점 없이 결이 전혀 달랐던 두 캐릭터를, 김신록은 모두 완벽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진화영을 인상 깊게 본 시청자들은 말했다. "'지옥'의 박정자인지 몰랐다"라고.

이제 김신록의 연기 변신은 '신뢰도 100%'다. 어떤 캐릭터를 맡든, 믿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기대된다.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변신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김신록

▲ 김신록이 고명딸 진화영이 되기까지

김신록은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다. 2004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그가 매체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 지난 2019년. 5년 전에 출연했던 단편영화 속 연기를 인상깊게 봤던 김용완 감독이 '방법'에 출연해줄 수 있냐 제안하며 그의 첫 드라마 데뷔가 이뤄졌다.

"김용완 감독님이 '방법'이란 드라마를 찍는데, 주인공의 엄마이면서 이 드라마를 열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인데 할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근데 제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기 때문에 본인 입장에서는 제작사를 설득해야 한다고, 그래서 제가 출연할지 입장을 분명히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때 고민했는데, 제가 새로운 분야의 제안이 들어오면 해보는 편이라 수락하게 됐어요."

'방법'의 출연은 그의 연기 인생을 바꿔놨다. '방법'의 극본을 썼던 연상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지옥'에 출연했고, '방법'의 연기를 인상깊게 본 제작진의 섭외로 '괴물'을 하게 됐다. 또 '괴물'의 제작사가 '재벌집 막내아들'을 만들며, 다시 김신록에게 출연 제안을 넣었다. '방법'을 시작으로, 배우 김신록의 작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김신록을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화영 역으로 캐스팅한 제작사 관계자는, 김신록이 한 시상식의 포토라인에 드레스를 입고 선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동안 어둡고 카리스마 강한 여성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그인데, 부잣집 딸 역할을 해도 괜찮겠다는 가능성을 본 거다. 그렇게 김신록은 '재벌집 막내아들'을 만났다.

"감독님이 미팅에서 '진화영은 화려하게 등장해야 하는데 만들 수 있겠냐', '9~10부쯤에 주식으로 재산을 탕진하며 엄청난 진폭의 연기를 해야하는데 가능하겠냐' 등을 물으셨어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진화영 역에 캐스팅 해주셨죠."

감독이 주문한 '엄청난 진폭'의 연기. 김신록은 누구나 인정할 '엄청난' 연기로 그걸 보기 좋게 해냈다. 그 첫 걸음은 캐릭터 연구였다. 김신록은 '욕망'과 '욕구'의 단어 뜻부터 찾았다.

"진화영은 욕망이 큰 캐릭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욕망'과 '욕구'를, 사전에서 찾아봤어요. '욕구'는 그냥 하고 싶은 마음이고, '욕망'은 부족하다고 느껴서 더 바라는 마음이라 하더라고요. 욕망이 크다는 건 반대로 결핍이 큰 거고, 그래서 더 과시하고 싶고, 더 원하는 게 많을 거라 생각했어요. 진화영이 느끼는 이 부족한 것과 바라는 것 사이에 낙차를 드러낼 수 있도록, 감정의 폭이나 소리, 움직임 같은 것들을 역동적으로 설계하고자 했어요. 화장이나 스타일링 같은 외적인 부분도 공작처럼 보여주고 과시하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김신록

다른 이에게 '갑질'을 하며 부끄러움을 모르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는 진화영의 행동을 보고, 시청자들은 '땅콩 회항'으로 논란이 됐던 한 재벌가 딸이 떠오른다고 반응했다. 김신록은 진화영을 연기하며 특정인을 모델로 삼지는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연기할 때 언론에 이미 노출돼 있는 재벌가들의 어떤 이미지를 단편적으로 모티브로 삼긴 했지만, 어떤 특정한 에피소드나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어요. 시청자 분들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누구 같다'면서 실존 인물들을 말했는데, 그 언급되는 이름들이 계속 바뀌더라고요."

진화영은 아버지 진양철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철부지 딸이었고, 오빠 진영기(윤제문), 진동기(조한철)에게는 지지 않으려 고집을 부리는 여동생이었고, 조카 진도준(송중기)에게는 협박까지 일삼는 무서운 고모였으며, 남편 최창제(김도현)에게는 세지만 귀여운 아내였다. 김신록은 상대 역할에 따라 매력적인 변화를 주며 캐릭터를 더욱 다채롭게 표현했다.

"진화영은 아버지, 남자 형제들, 남편 사이에서 자기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고 고군분투 하는 '서바이벌형'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그 상황에 맞게, 상대에 맞게, 울고 짜고 애교부리고 교태부리고,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생존해 나가려는 캐릭터라고 봤죠."

이런 진화영과 '역동적'인 부분에서 닮았다는 김신록은 누구보다 진화영을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저도 역동적인 사람이에요. 행동을 통해 찾아가고 성취해 가는 사람이죠. 행동한다는 면이 진화영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진화영도 사실은 고군분투하는 인물이에요. 다만 재벌가에서 태어난 바람에 조심할 필요가 없는게 너무 많은 거죠. 그게 그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인 거고요. 제가 진화영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없었어요. 이해가 되는 방향으로 연기를 했죠. 그러기 위해 관계에 집중했어요. '이런 아버지라면 그럴 수 있어', '오빠들이랑 이런 관계라면 그럴 수 있어', '그래도 이 집안의 고모인데 조카가 내게 이럴 수 없어', '진골 진 씨가 아닌 애가 이 집안을 물려 받을 수 없어', 이런 관계성 안에서 사고를 하며 정당성을 만들어내려 했어요."

▲ 1년동안 다져온 '재벌집' 배우들과의 앙상블

김신록은 지난해 8월 '재벌집 막내아들' 촬영을 끝냈다. 이 드라마는 주시대 배경이 80-90년대 과거라, 후반 보정작업을 위해 여유롭게 촬영 일정을 잡았다. 김신록이 이번 작품을 하며 제일 힘들다고 느낀 건, 촬영 시기의 차이였다.

"1년 가까이 찍으면서 띄엄띄엄 찍은 게 많았어요. 4부 스피드웨이에서 진화영이 아버지 진양철 회장 뒤를 쫓아가며 사위 정치 입문을 도와달라 하면, 아버지가 '진양철 고명딸로 살라'고 경고하고 걸어 나오는 장면. 그 장면 장면의 실제 촬영 차이가 한 달이었어요. 또 공금횡령을 한 진화영이 시장실에서 남편 최창제에게 '정신 차려!'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와 정심제로 가네 못가네 하는 장면은, 시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오는데 두 달이 걸렸어요.(웃음) 아버지 진양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1400억원을 빌려달라 하는 장면도, 몇 주 동안 찍었고요. 큰 사이즈의 감정연기를 할 때, 그 연결을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재벌집 막내아들'에는 주조연을 막론하고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즐비하다. 김신록은 이토록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함께 해 즐거웠고 시너지도 컸다고 말했다. 특히 "가족들이 다 모여 찍는 신은 너무 재밌었다"며 "꼼꼼히 보면, 화면에 잘 잡히지 않는 분들도, 살아있는 리액션을 하고 있더라"고 떠올렸다.

최창제는 진화영의 피곤한 다리를 마사지 해주고, 때론 업어 주고, 날카로운 아내의 말들을 따뜻하게 받아줬다. 진화영은 그런 남편에게 가끔 아이처럼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이런 두 사람의 '의외의' 중년 로맨스는 '재벌집 막내아들' 팬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김신록은 부부 역할로 만난 배우 김도현과 눈만 봐도 아는 찰떡 같은 호흡이었다고 말했다.

"1년 가까이 찍어선지, 거의 마지막에는 척하면 척 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어요. 어떤 제안을 할 때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가 없었죠. 최창제가 진화영의 다리를 주물러 주는 장면을 넣어보자고 제안하면, 알토란 같이 '우리 화영이 힘들었구나'하며 받아줬어요. 찰떡 같이 말하면 콩떡같이 알아듣는, 그런 파트너였죠. 제가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적극적으로 수용해줘서, 풍성한 리액션으로 신을 만들 수 있었어요. 김도현 배우를 만난 건 제게 행운이에요."

김신록

드라마 촬영이 일찍 끝났던 만큼, 김신록은 한 명의 시청자로 '재벌집 막내아들'을 시청했다. 그런 그가 시청자로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진양철과 진도준의 엘리베이터 소변신이다.

"진양철이란 한 거인을 나약한 인간으로 노출할 때의 안쓰러움, 그걸 커버하는 진도준의 진심 같은 것들이 너무 잘 살아있는 장면이었어요. 이성민, 송중기 두 배우가 훌륭하게 만들어줘서 이렇게 밀도 있고 고급스러운 장면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감탄하면서 봤어요."

김신록이 직접 참여한 장면들 중에서는 두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진화영이 아버지 진양철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돈을 빌려 달라고 애걸하는 장면과, 진도준에게 감히 주제넘지 말라며 호통쳤던 장면이다.

"아버지 다리에 매달려 1400억원을 빌려달라고 하는 장면은 이성민 배우와 일대일로 연기한 유일한 장면이었어요. 이성민 배우의 밀도, 에너지, 진실감 같은 것들이 저도 살아있는 감각으로 연기할 수 있게 잘 이끌어주신 거 같아요. 그 장면이 대본에는 돈을 빌려달라는 대사 앞에 '민망하 듯'이라고만 쓰여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멀어지니까 순간적으로 제가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날리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연기할 수 있단 게, 짜릿했어요.

도준이한테 '주제넘게 굴지 마!'라고 소리치는 장면도 좋아해요. 도준이에게 순양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사람은 진화영이 처음이었어요. 그 전까진 빙빙 돌던 진도준의 멱살을 잡아채는 장면이고, 진화영에게는 통쾌함을 주는 장면이죠. 거기서 진도준이란 인물에 주어진 대사는 많지 않아요. 그걸 송중기 배우가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단단하게 탁 받아주니, 저도 짱짱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 신의 밀도를 중기가 만들어줬어요. 괜히 주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대중이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며 김신록의 연기 변신에 놀랐던 마음을, 김신록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배우로서도 의미가 크다.

"'지옥'의 박정자인지 몰랐다는 댓글이 너무 좋았어요. '지옥'은 제 인생의 2막을 열어준 작품이에요. 그 당시 갓 마흔 살을 넘기고 있었고, 영상 매체로 와서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은 작품이라서요. '재벌집 막내아들'은 제가 배우로서 계속 변신할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심어준 작품이라 생각해요."

김신록

▲ 은밀히 품었던 연기 꿈, 이제 믿고 보는 배우로

연기력으로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한 김신록은 서울대 지리학과 출신이라는 학력으로도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서울대 지리학과를 나온 후, 한양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 석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예술전문사를 획득, 석사 학위를 두 개나 갖고 있는 엘리트 중 엘리트다.

김신록이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 연극, 그리고 젊은 시절 연극배우를 했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김신록은 중학생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지역 극단을 찾았고, 거기서 아버지는 딸에게 "연극이 아니라 인생을 배워봐라"고 조언했다.

"그때 이후로 연기에 대한 꿈을 은밀하게 품고 있었어요. 그러다 서울대에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학교를 졸업하고는 진짜 연극무대에 데뷔했어요. 동아리 안에서는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제가 연기를 너무 못하더라고요. 그때 같이 연기한 사람들이 대학원에 가서 연극 공부를 해보는게 어떠냐고 했어요. 저도 연극에 몸을 담으려면 전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연기를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를 시작한 김신록은 석사 학위 두 개를 받고, 미국 유럽을 돌며 외국 연극인들을 만나 경험을 넓혔다. 서울대 출신의 공부 열정과 집요한 학습 의지는 여기서도 발휘됐다.

그럼 서울대 나온 딸이 연기를 한다는데, 부모의 반대는 없었을까.

"제가 하고 싶으면 일단 저지른 후 수습해 나가는 스타일이에요. 부모님이 그걸 잘 아시고, 게다가 제가 연극을 시작하게 된 빌미를 아버지가 제공하셨잖아요? 실효성이 전혀 없는 반대를 좀 하시더니, 쉽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허락하셨어요."

김신록

무당, 형사, 검사, 지옥행 천벌을 앞둔 싱글맘, 막무가내 재벌녀. 그동안 매체에서 김신록이 보여준 연기는 '센캐(센 캐릭터)'라 불리는 역할에 국한돼 있다. 김신록도 그 부분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특수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연기한 거 같아요. 그래서 구조적으로 주목받기가 쉬웠죠. 기회가 된다면, 평범한 사람인데 들여다보면 특별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일상을 살아보면 다 그렇잖아요?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들여다보면 그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각별해요.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김신록이 꿈꾸는 배우는 "믿고 볼 수 있는 배우", 그리고 "늘 변신 가능한 배우"다. 이게 꿈이라면, 이미 목표는 이뤄진 듯 하다. 어떤 캐릭터를 맡든 김신록처럼 믿음직하고, 변신이 기대되는 배우가 또 어디 있을까.

[사진=저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재벌집 막내아들' 스틸컷]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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