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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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소방관 6명 순직한 홍제동 화재…방화범 구하려다 일어난 참극

강선애 기자 작성 2022.11.11 13:23 수정 2022.11.11 13:38 조회 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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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0일 방송된 'First In, Last Out'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최영준, 그룹 오마이걸 멤버 유아, 방송인 안현모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홍제동 화재 사건, 비극의 시작

때는 2001년 3월 3일 토요일 아침. 서울 서부소방서 구조대에서 근무하는 권영철 소방관이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어. 세 살짜리 첫째랑, 갓 백일이 지난 둘째를 한번씩 안아주고 집에서 나왔어. 영철 씨를 배웅하려고 아내가 현관까지 따라나와. 이 집에서는 남편의 출근길에 "조심해요"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대. 조심하라 그러면, 뭔가 안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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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방관은 2교대 근무였어. 오전 9시에 출근하면 다음날 아침 9시까지, 24시간을 꼬박 일하는 거야. 이렇게 24시간 일하는 동안, 하루 평균 7회 이상을 출동했대. 출동 해서 사고처리 하고 다시 복귀하고, 한 건당 2시간씩만 잡아도, 14시간을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거야. 소방관의 업무는 불을 끄는게 다가 아니야. 화재진압과 예방을 담당하는 '화재진압반', 각종 사고 인명구조 및 생활안전 전반을 책임지는 '구조대', 응급처치와 이송을 담당하는 '구급대'가 있어. 이 모든 게 소방업무야.

소방관을 가장 긴장하게 만드는 신고전화는 새벽에 걸려오는 화재신고야. 낮에는 불이 나도 빨리 발견이 되는데, 새벽엔 다들 잠든 시간이라 늦게 발견돼서 그 불이 대형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 그래서 밤이 깊을수록 소방관들은 더 긴장상태가 된대.

그날 밤, 서부소방서에서도 묘한 긴장감이 흘렀어. 권영철 대원과 동료들은 언제든 출동할 준비가 된 상태야. 그리고 새벽 3시 무렵, 은평구 녹번동에서 화재 신고가 들어왔어. 전대원이 쏜살같이 뛰어 나갔어. 지휘차, 펌프차, 구조차, 구급차까지, 모두 출동해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어. 그런데 불길이 안 보여. 오인신고였어. 이런 일이 자주 있어서, 대원들은 오히려 덤덤했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위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살펴본 다음에 다시 소방서로 차를 돌렸어.

그런데 얼마 못 가 또 다시 무전이 울렸어. 이번엔 서대문구 홍제동 주택에서 또 다른 화재 신고가 들어왔어. 녹번동에서 소방서로 복귀하던 대원들은 곧바로 홍제동으로 달리기 시작했어. 이때가 새벽 3시 47분. 차 안에서 권 대원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대. 왜냐? 본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출동하는 것보다, 비록 오인신고였어도 출동했다가 귀소하는 과정에서 다시 출동하는 거라, 평소 출동 시간보다 2분 정도 더 빠르게 현장에 도착할 수 있겠다 생각했거든. 우리한테는 겨우 2분이지만, 소방관한테는 '무려 2분'이야. 2분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달린 골든타임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소방관들은 평소 출동 시간보다 빨리 홍제동에 들어섰어. 그런데 힘차게 달리던 소방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어. 화재지점까지 아직 150m는 더 들어가야 하는데, 갈 수가 없어. 바로 불법 주정차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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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양쪽이 차들로 꽉 차있어. 이 차들을 다 밀어버리지 않는 이상, 현장진입 불가. 결국 대원들은 출동시 필요한 소방장비들을 들고 뛸 수 밖에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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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호흡기, 절단기, 소방호스, 해머 등 대원들이 들고 이동해야 할 무거운 장비들이 한 두개가 아니야. 특히 소방호스는 하나의 길이가 15m 정도 되는데, 이걸 화재지점까지 연결한 후 화재 진압시 움직일 여유 길이까지 감안하면 최소 12개가 필요해. 대원들은 장비들을 들고 뛰면서 정신없이 소방호스 12개를 연결하며 현장에 도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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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의 여유가 생겨 다행이라 여겼는데, 다 의미가 없어졌어. 불법 주차 차량들 때문에 현장에는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어.

▲ 불길 속으로 사라진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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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현장은 벽돌로 지어진 2층 다가주 주택이었어. 1층은 집주인 가족이, 2층엔 세입자들이 살고 있는 집이야. 한 세입자가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1층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는걸 보고 신고했대.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땐, 창문으로 불길이 활활 솟구치고 있었어. 이미 화재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뜻이야. 소방관들은 지체없이 방수를 시작했어. 호스에선 물줄기가 쉴새 없이 뿜어져 나와. 바로 그때 다급한 외침이 들렸어.

"아들이 안에 있어요! 빨리 좀 구해주세요!"

집주인 아주머니야. 다른 사람들은 나왔는데 아들만 집에서 못 나왔다는 거야. 요구조자 1명이 있다는 소리에, 곧바로 대원들은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어. 화재 진압대가 호스를 잡고 앞장서고 구조대원들이 뒤를 따랐어. 17평 규모의 1층 집에는 집주인 아주머니와 30대 아들이 살았어. 집 안에 진입하자마자 대원들은 열기와 유독가스에 휩싸였어. 랜턴을 비쳐도 아무것도 안보여. 시야가 1m도 채 안돼. 물줄기로 불길을 잡으면서 집 안 전체를 샅샅이 수색했어. 하지만 아들은 보이지 않아. 여기 더 있다가는 대원들까지도 위험할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대원들은 건물 밖으로 나왔어.

"우리 아들은요? 왜 그냥 나와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냥 나오냐고요!"

집주인 아주머니가 아들을 찾아달라며 막 울부짖어. 이런 상황에서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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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사실 그렇습니다. 똑같은 인간입니다. 높은 온도 속에서 활동하기란 참 힘들어요. 하지만 정확한 정보로, '(화재 장소에) 요구조자가 있다' 그 집에 가족이 얘기하는 정보는 100% 신뢰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들었을 때는 두 번 세 번 네 번이고 찾을 때가지 검색을 합니다. 그래야만 되고."
-권영철 소방관

대원들은 주저없이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어. 말하지 않아도, 다들 같은 마음이었대. 꼭 찾아야 한다, 반드시 데리고 나와야 한다고. 이렇게 6명의 대원이 수색을 다시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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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화염과 유독가스 때문에 오래 버틸 순 없어. 진압 대원이 앞장 서서 방수하는 동안, 구조대원은 최대한 빠르게 내부를 살폈어. 거실, 아들방, 안방, 주방, 화장실까지 더 꼼꼼하게 수색했어. 그런데 이번에도 아들은 보이지 않아.

그 시각, 권영철 대원과 동료 한 명은 건물 왼쪽 입구, 지하 보일러실 쪽을 살펴봤어. 수색이 진행되지 않은 쪽이야.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서 보일러실 내부를 살펴보는데, 역시 사람의 흔적이 없어. 한숨을 내쉬고 빠져나오려는데…

"우르릉 쾅쾅!"

화재가 난 2층 건물이 무너졌어.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 여기저기 비명과 신음 소리가 들려. 건물 더미에 하반신이 깔린 대원, 충격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대원,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야. 이 시각이 새벽 4시 11분이었어. 권 대원도 순간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어.

"없는 거예요 아예. 벌판이야. 그 높은 건물이, 보이지도 않는 하늘이 다 보이는 거죠. 그 높았던 건물이 제 허리밖에 안 오는 거예요. 이건 진짜 있을 수 없는 일이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이죠. 그때는 표현이 안되죠. 말도 안 나왔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까, 저 안에 건물에는 틀림없이 우리 동료가 있는데 괜찮을까…"
-권영철 소방관

2층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려 평평한 벌판이 됐어. 그리고 붕괴 전에 집안에 들어갔던 대원들이 그대로 매몰됐어. 확인 결과, 현관 앞에서 방수하던 대원 1명을 포함해 대원 7명이 매몰됐어. 생사확인 조차 안되는 상황이야. 건물 안에는 유독가스로 가득 차 있어. 시간이 없어. 빨리 구조해야 해.

▲ 뜨거운 눈물 속 필사의 구조

급히 지원요청을 하고 전대원이 달려들어 잔해 더미를 치우기 시작했어. 그 시각, 비번이었던 서부소방서 이성촌 대원도 비상연락을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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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이 걸렸다는 거예요. 무너진 건물 더미에 직원들 매몰돼 있다고. 제가 근무를 하면서 출동을 상당히 많이 다녔는데, 내 동료가 그 안에 지금 매몰돼 있어서 구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는, 생각이 많이 달라지죠. 그때부턴 저도 막 계속 떨림이 오고, 제발 아무일 없길 바라면서 현장에 갔어요."
-이성촌 소방관

비번이 아니었다면 이성촌 대원이 거기 있을 수도 있었어. 이 대원은 제발 동료들이 무사하길 간절히 기도하며 홍제동으로 달려갔어. 도로는 여전히 불법주차 차량으로 꽉 막힌 상황이야. 어쩔 수 없이, 20kg이 넘는 구조장비를 들고 뛰어야만 했어. 그날, 이 홍제동 사고 현장엔 총 250명이 넘는 소방관이 출동했어. 내 동료의 목숨은 내 손으로 구한다는 마음 하나로, 다들 그 곳에 도착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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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작업이 시작된 지 얼마 안돼 대원 한명이 발견됐어. 콘크리트 사이로 얼굴이 보였어. 현관 쪽에서 방수 작업을 하고 있던 김철홍 대원이야. 그런데 의식이 없어. 돌덩이들을 얼른 치워야 해. 하지만 몇 명이 달라붙어도 꿈쩍을 안해. 구조대원이 바닥에 엎드려 최대한 안쪽으로 팔을 뻗어 철홍 대원의 얼굴에 쓰여진 마스크부터 벗겼어. 당시에 공기통 사용 시간은 25분이었어. 만약 공기가 바닥난 상태에서 계속 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간 오히려 질식해서 사망할 수 있는 거야. 손가락 끝으로 간신히 마스크를 벗겨 냈어. 그 순간, 철홍 대원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왔어. '살았구나' 싶었어. 서둘러 해머로 콘크리트를 깨기 시작했어. 그렇게 한참 구조작업에 매달린 끝에 드디어 김철홍 대원을 꺼내는데 성공했어. 그 시각이 새벽 5시, 매몰된 지 50분 만이었어.

김철홍 대원은 병원으로 이송됐어. 그의 생사 여부를 알아볼 정신도 없이, 그저 괜찮을 거라 믿으며, 대원들은 다시 아직 매몰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작업을 이어갔어. 이제 남은 6명은 붕괴 직전 1층 내부에 있던 대원들이야. 잔해 더미 아래에 완전히 매몰돼 있어. 불법주차 차량으로 중장비도 못 들어오는 상황. 구조 작업을 어떻게 해야할까.

대원들은 무너진 건물 더미 속 생존확률이 가장 높은 곳은 콘크리트 잔해 밑 작은 공간, 지하 1층 보일러실 위치라 생각했어. 낙하물이 직접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공간인 그 곳으로 내려갔다면, 생존 가능성이 크다고 본 거야. 근데 문제는, 어떻게 거기까지 내려가느냐야.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다 치우지 못하니까. 대원들은 구멍을 뚫어서 밑으로 내려가보기로 계획을 세웠어. 지하 보일러실 위치를 가늠해서 세 군대의 구멍을 뚫기 시작했어. 물론, 이것도 다 수작업으로 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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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인데, 눈이 펑펑 오는 거예요. 3월에. 그냥 삽으로라도 곡괭이라도 한 번 더 파가지고 빨리 걷어낼 수 있는, 그런 생각 밖에 못 했던 거 같아요."-이성촌 소방관

"소리 없는 눈물만 떨어질 뿐이지. 말 한마디 진짜 못했습니다. 그조차도 피해가 갈까 봐. 작업만 하는 거예요. 아무 말 없이." –권영철 소방관

이 구조 작업은, 콘크리트 깨는데 몇 십분, 철근 자르는데 몇 십분, 벽돌과 잔해를 걷어내는데 또 몇 십분이 걸려. 붕괴사고 이후 벌써 2시간이 지났어. 공기통 사용시간은 25분이야. 이미 한계시간을 넘은 지 오래야.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벗었어도 유독가스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야. 하지만 대원들은 포기하지 않았어. 지금까지 뚫린 구멍들로 급히 공기통을 집어 넣었어. 그리고 공기통의 벨브를 열었어. 공기통에서 나온 산소가 유독가스를 밀어내고, 저 아래 동료들이 숨을 쉴 수 있길 바라면서.

어느덧 아침 7시, 매몰된 지 3시간이 지났어. 영하의 날씨에도 대원들의 얼굴에선 땀이 뚝뚝 떨어져. 절대로 포기하면 안된다. 거기에 있는 그 어떤 대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어. 믿는게 있었으니까. 이들은, 소방관이니까. 다른 생명을 구하는 강한 사람들이니까. 반드시 살아남을 거라고 믿었어.

바로 그 때, 드디어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확보됐어. 그런데 너무 좁아서, 공기 호흡기조차 착용할 수가 없어. 그래서 장비를 다 빼고 숨을 참으면서, 권영철 이성촌 대원을 필두로 구조대가 진입했어. 지하 공간으로 내려선 순간, 코 속으로 유독가스가 확 들어와.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야. 어둠 속에서 마음은 점점 급해져. 바짝 엎드린 상태로 사방을 손으로 더듬기 시작해. 정신없이 돌 조각들을 치우면서 미친듯이 대원들이 바닥을 기어 다녔어. 바로 그 순간, 손에 뭔가가 닿아. 매몰된 대원이야. 급히 얼굴 쪽을 더듬었어. 마스크는 벗은 상태야. 매몰 후에 스스로 벗었다면, 한동안 의식은 있었다는 이야기야. 얼굴에 손을 대보니 온기가 느껴져. 빨리 밖으로 내보내야 해.

장비를 정신없이 해체하고 밖으로 밀어 올렸어. 오전 7시 34분. 매몰 3시간 23분만에 두번째 동료가 밖으로 나왔어. 그렇게 이승기 소방관이 구조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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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는 숨가쁜 수색이 계속 됐어. 지상으로 올려 보낸 동료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어. 정신없이 바닥을 더듬는데 그 순간 또 다른 동료가 손에 걸렸어. 역시 의식은 없어. 하지만 빨리 위로 올려서 심폐소생술을 하면 가능성이 있어 보여. 이승기 소방관을 구조하고 3분 뒤인 오전 7시 37분, 김기석 소방관이 구조됐어. 그리고 7시 40분 박준우 소방관, 7시 44분 박동규 소방관, 7시 48분 장석찬 소방관, 7시 57분 박상옥 소방관이 구조됐어. 그렇게 매몰됐던 대원들은 지하 보일러실 쪽에서 모두 구조됐어. 의식은 없었지만 전부 구조에 성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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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없고 황망한 사건의 진실

3시간 46분의 사투 끝에 모든 동료를 찾아냈어. 눈송이 사이로 멀어지는 구급차를 바라보며 다들 간절히 기도했어. '제발 살아달라'고. 같이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어. 아직 못 찾은 사람이 있으니까. 바로 최초의 요구조자, 집주인의 아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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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은 다시 작업을 시작했어. 망치로 콘크리트를 부수고 삽으로 잔해를 파내며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면밀히 살폈어. 그러던 중에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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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씩 들려오더라고요. 사망했다고… 눈까지 막 그렇게 오는데 미치겠더라고요. 사망했다고 계속 막 이렇게 들려오는데… 가서 부둥켜 안고라도 울고 싶고, 그 모습이라도 보고 싶고 그런데. 우리는 그 이전에,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될 그런 소방관이고. 그래도 그 현장을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 짓고 나서 가야되는 그런 상황이…"
-이성촌 소방관

동료들의 사망 소식이 연이어 전해진 거야. 하지만 이분들은 현장을 떠날 수가 없어. 집주인 아들, 최초의 요구조자를 못 찾았으니까. 눈물이 앞을 가려도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어. 그런데 오전 9시 28분쯤, 정말 기절초풍 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어.

화재 조사반이 불이 난 경위를 조사하려고 집주인 아주머니를 만났어. 아들이 집에 있는게 확실하냐고 물으니. 옆에 있던 친척이 이런 이야기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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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 아침에 외삼촌 집에 왔다던데. 한 여섯 시쯤 왔었대요."

불이 난 집안 어딘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야. 이 말을 듣는 순간, 화재 조사관은 주저 앉아서 대성 통곡을 했대. 그리고 곧바로 현장에 연락했어. 거기, 아들이 없다고.

"진짜 어이가 없는 거죠 한마디로. '거주하던 사람은 다 대피하고 없다' 그 말 한마디였으면. 그 많은 대원들이 순직은 안했죠."
-권영철 소방관

현장에 있던 대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것처럼 한동안 말 없이 서 있었어. 동료들을 구조한 지 1시간 30분이 더 지난 후였어.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이 아직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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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주택 화재의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성실한 소방관들의 생명을 앗아 간 어제 화재는 어이없게도 방화 때문이었습니다. 홍제동 화재의 원인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어젯밤 집주인의 아들 서른두 살 최 모 씨에게서 자신이 불을 질렀다는 자백을 받았습니다. 불길이 크게 던지자 겁이 난 최 씨는 친척 집으로 달아났다가 어제 오후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사건 다음날 뉴스 보도 中

그날 새벽에 집주인 엄마와 아들이 심하게 다퉜고, 흥분한 아들이 때리니까 엄마는 밖으로 피했대. 그 때 아들은 홧김에 불을 질렀는데 그 불이 크게 번지니 겁이 나서 도망갔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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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발화나 그런 것들도 아니고, 어떤 부주의도 아니고. 그 사람이 방화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러려고 소방관이 됐나.. 그런 생각이 들고." –이성촌 소방관

3월 4일 오전 9시 28분 상황 종료. 그날의 화재로 6명의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어. 며칠 후, 순직 소방관들의 합동 영결식이 진행됐고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동료를 잃은 사람들은 눈물로 이별을 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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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에 참석한 당시 이성촌 소방관은 동료들의 영정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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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기서는 소방관 하지 말고. 편하고 안전한 직업 해. 거기서는 하지마…"

▲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6명의 소방관들

홍제동 화재 사건에서 순직한 6명의 소방관들. 이 분들을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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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박준우 소방관이야. 박준우 소방관은 일주일 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신랑이었어. 박 소방관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기증하셨대.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의 죽음이 부디 의미있는 것이었길, 또 바라고 바라신대.

"살만큼 살다가도 보고 싶은데 그 어린 나이에…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다 죽었기 때문에. 그래도 '내 아들 장하다' 항상 그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도 한번쯤이라도 '준우 죽음이 어떤 죽음이었다' 하는 거 내가 생각하고 싶더라고."

-故 박준우 소방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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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분은 김철홍 소방관이야.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해서 1년 전에 내근직에서 현장 근무로 옮겼대. 현장 근무를 하면 나오는 30만원 정도의 수당을 어머니 병원비에 보태고 싶어서. 사고 이후 김 소방관의 누나는 지역 의용 소방대에 자원하셨어.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화재 현장에서 열심히 소방관들을 도우셨대.

"우리 동생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누나 역할 못 한 게 그렇게 가슴을 치더라고. 누나가 이렇게 하니까 너는 정말 좋은 곳에 영면해 있어라, (현장에) 가면서 기도하고 나오면서 기도하고."

-故 김철홍 소방관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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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장석찬 소방관이야. 장 소방관의 아내는 남편이 출근할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었대. "먼저 나서지 말고 앞장서지 말라"고. 그런데 아내는 단 한번도 대답을 들은 적이 없대. 거짓말을 못하는 남편은 그럴 때마다 씩 웃고 나가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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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박동규 소방관. 이 분의 동생도 소방관이야. 동생분은, 다른 사람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형을 보면서, '저런 멋진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마음 먹고 그렇게 소방관이 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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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박상옥 소방관이야. 평소 누구보다 가족에게 애틋했던 박 소방관은 그 해 봄에 넓은 집으로 이사해서 연세드신 부모님을 모실 생각에 들떠 있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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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김기석 소방관이야. 김 소방관은 순직 한달 전 쯤에 후배한테 이런 메일을 보냈대. 그가 소방관이란 직업에 얼마나 자부심과 사명감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야.

"의사의 역할도 남의 목숨을 구하는 일임에 틀림 없지만, 자신을 내던지면서 구하지는 않지 않는가. 나는 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이 직업에 만족하네.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내 한 목숨 선선하게 내던질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것을 하나의 성직(聖職)으로 여긴다네. 무너지는 건물의 잔재에 파묻혀 보기도 하고, 성난 불길의 혓바닥에 올라 보기도 했고. 하지만 인간사 모두 하늘의 뜻이라고. 주어진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사는 그날까지 열심히 살다가 간다면, 내세에 좋은 인연으로 좋은 몸을 받고 태어나지 않을까?"
-故 김기석 소방관이 보낸 메일 내용 中

▲ 'First in, Last out'

이 사건 이후 그동안 몰랐던 충격적인 사실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어. 먼저, 이 사진을 한 번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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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철 소방관의 출동 모습이야. 놀라운 건 이 때가 바로 2001년 3월 5일, 홍제동 사고 바로 다음 날이라는 거야. 눈 앞에서 동료들 6명을 잃고, 또 본인도 부상을 당한 상태였지만, 권 대원은 바로 다음날 업무에 복귀했어. 인력이 부족해서 쉴 수가 없었대.

당시 우리나라 소방관 1명이 책임져야 하는 시민의 수는 2,000명 정도였어. 같은 시기 미국은 208명이었어. 미국과 10배 차이야. 이런 상황이니, 소방관이 다쳤다고 쉴 수가 있었겠어.

그리고 '경찰병원', '국군병원'은 있었지만, '소방병원'은 없었어. 그래서 소방관은 부상을 당하면 자비로 치료를 받고, 나중에 보상을 신청해야 했어. 전액이 다 보상되는 것도 아니고, 화상치료로 받은 피부 이식은 또 제외였어. 소방관한테 가장 흔한 부상이 화상인데, 그것조차 제대로 지원이 안됐던 거야. 너무 열악했지.

또 하나가 더 있어.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은 '방화복'이잖아? 그런데 당시 뜨거운 화마에 주저없이 들어갔던 그들이 입고 있던 건 방화복이 아니라 방수복이었어. 돈 때문이었어. 방화복은 한 벌에 120만원이고, 방수복은 8만원 정도였거든. 이게 홍제동 화재 사건으로 밝혀진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의 극히 일부분이야.

그로부터 21년이 지났어. 지금은 처우가 많이 개선됐다고 해. 소방병원도 짓고 있고, 부상을 당하면 치료 받는데 큰 문제는 없대. 많은 소방관들이 이렇게 말해. "소방의 발전은 홍제동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꼭 이렇게 많은 희생이 생긴 후에야 바꿀 수 있었던 걸까.

'꼬꼬무' 인터뷰에 어렵게 응해주신 분이 한 분 더 계셔. 바로, 매몰 3시간 23분 후에 두번째로 구조됐던 이승기 소방관이야. 기적적으로 생존하셨지만, 뇌가 손상되고 하반신이 마비돼서 오랜시간 병상에 누워 계셔야 했어. 그는 구조된 후 그날의 기억을 잃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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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상황을 좀 얘기해달라고 하는데, 기억이 안나요 제가. 유가족들을 만나보니까 이제 순직한 동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책임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고 그랬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고 혹시라도 그 분들을 만나게 되면, 가서 그때 '잘 지냈냐'라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겠죠. 그런 걸 기대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승기 소방관한테, 만약에 당시 같은 상황이 또 온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어. 그는 망설임 없이 "들어가야죠"라고 대답했어. 이유는 단 하나야. 소방관이니까.

'46'과 '47'은 소방관이 현장에서 쓰는 무전 용어래. '46'은 "알아 들었나"라고 묻는 거고, '47'은 "알았다"라고 대답하는 그들만의 신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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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을 외쳤단 말이에요. 그런데 47이 되돌아 와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도 매일 46, 47을 외치고 있는데, 그 여섯 분 중에 한 분이라도 '47'이라고 하는 대답을, 한 번 듣고 싶어요."
-이성촌 소방관

이성촌 소방관의 어깨에 문신이 하나 있어. 화재 현장에서 생긴 화상 흉터 위에 새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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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in, Last out'.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나온다는 의미야. 그런 문구를 자기 몸에 새기고, 지금도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을 갖고 살아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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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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