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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가짜 대학생 행세하더니 아동 유괴·살인까지…거짓 삶을 살았던 여자

강선애 기자 작성 2022.10.28 12:12 수정 2022.10.28 13:40 조회 4,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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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7일 방송된 '딱 한 번만 더-유괴범의 모래성'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방송인 홍석천, 배우 김혜윤, 래퍼 자이언트 핑크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라진 아이

때는 1990년 6월 25일 비오는 날 아침, 6살 민지(가명)네 집은 등원 전쟁으로 정신이 없어. 민지는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을 다니고 있어. 엄마는 노란 우비를 챙기고 민지의 손에 민지가 제일 아끼는 노란 우산을 들려 줬어. 민지네 아빠가 해외 출장을 갔다 오면서 사오신 거야. 그렇게 민지는 노란 우비를 입고 노란 우산을 쓰고 유치원에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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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후, 민지 엄마는 하원 시간에 맞춰 유치원에 갔어. 근데 다른 아이들은 다 나왔는데, 민지가 안 나와. "선생님, 우리 민지 어디 있나요?"라고 물었어. 이 말을 듣더니 선생님 얼굴이 하얗게 질려. 30분 전에 유치원으로 민지 엄마라면서 급한 일이 생겼으니 아이를 보내달라고 전화가 왔대. 금방 유치원 앞에 도착하니 아이만 내보내 달라고. 엄마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어. 민지가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거야.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어. 1990년도이니 CCTV도 없고, 유괴사건은 아이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 극비수사가 원칙이라 목격자를 수소문하는 것도 쉽지 않아. 그래서 범인의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어. 민지네 집 전화기에 녹음기를 설치하고 마냥 전화만 기다렸어. 그렇게 저녁이 되고, 자정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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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30시간째 오후 5시, 드디어 전화가 걸려 왔어. 젊은 남자의 목소리야. "민지를 데리고 있소. 애를 돌려받고 싶으면 5천만원을 입금하시오"라면서 계좌번호를 불러. 예금주 이상민, 조흥은행 306-04-190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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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전화는 끊겼고 경찰은 즉시 발신지를 추적했어. 서울 시내의 한 공중전화야. 곧바로 달려갔지만 범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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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놓쳤지만, 전화 통화로 단서를 얻은 게 있지. '남자 목소리, 예금주 이상민, 그리고 계좌번호'. 그런데 계좌번호를 알아도 추적할 수 없어. 그땐 금융실명제가 시작되기 전이라 차명으로 통장을 개설하는 게 가능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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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야. 은행에 출금하러 왔을 때, 현장을 덮치는 것. 당시 조흥은행 지점이 전국에 258개, 서울에만 100개가 넘어. 경찰이 모든 지점에 잠복하는 건 불가능해. 그래서 작전을 짰어. 범인에게 돈을 한번에 넣지 않고, 조금씩 입금하면서 놈의 움직임을 살피는 거지.

다음날 오전, 민지 부모님은 먼저 500만원을 입금했어. 그날 오후 5시, 다시 범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어. 왜 500만원만 입금했냐며 따지는 범인에게 아직 돈을 구하지 못했다고 둘러댔어. 범인은 "그 돈 없으면 우리 식구 다 죽소. 나도 민지 같은 딸이 있소. 살인까진 하고 싶지 않소"라고 말했어. 민지 목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들려달라고 엄마가 애원했지만, 유괴범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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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전화 발신지는 서울의 공중전화였어. 이게 무슨 뜻이야? 이상민은 서울에 있다는 거야. 다음날 아침, 서울시내 조흥은행 전 지점에 형사들이 쫙 깔렸어. 그 중에는 김임용 형사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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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형사는 강력반이 아닌 간첩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보안과 소속이었는데 지원근무를 나왔어. 김형사는 출동 전에 중요한 지시를 받았대. "애를 찾기 전에는 검거하지 말아라.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애를 찾는게 우선이다. 미행을 해서 애를 찾고 난 다음에 검거하라"는 지시었어. 유괴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생명이잖아. 행여 공범이 있으면 아이의 안전이 보장이 안되니까, 이런 지시가 내려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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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과 소속이라 미행에 베테랑인 김 형사도 유괴사건은 어렵게 느껴졌대. 은행에 돈 찾으러 오는 유괴범이 얼마나 경계심이 많겠어. 그리고 범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잖아. 뭔가 확실한 작전이 필요해.

김 형사가 배치된 곳은 조흥은행 을지로 지점이야. 내부엔 응대창구, 출입문 쪽엔 현금인출기가 있어. 범인은 분명, 창구에서 은행원을 대면하지 않고 현금인출기를 이용해 돈을 인출해 갈 거야. 현금인출기에서 수상한 사람이 돈을 인출하면, 김 형사가 은행원에게 신호를 보내고, 그럼 은행원이 이상민 계좌번호를 검색해서 해당 계좌에서 돈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가고 있는지 알아보는 방식으로 범인 여부를 확인했어. 그렇게 의심스러운 사람이 현금인출기를 이용할 때마다 확인했지만, 그날 '예금주 이상민'은 조흥은행 어느 지점에서도 돈을 뽑지 않았어.

▲ 돈을 인출하는 범인을 잡아라

유괴 4일째 오후 1시 45분. 민지네 전화벨이 다시 울렸어. 돈을 왜 안 찾아갔냐, 민지를 어서 돌려달라고 따지자 유괴범은 "돈을 못 찾았어요"라고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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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돈은 안 찾고 전화를 했을까? 간을 본 거야. 돈을 입금했는지, 경찰에 신고 했는지 안했는지 떠 보는 거야. 입금이 확인 됐으니, 이제 놈이 움직일 차례야.

같은 시각, 은행에 잠복중인 형사들은 초긴장 상태야. 자신이 있는 은행에서 범인을 놓치면 큰일나니까. 사람들을 살피는 김 형사의 눈은 더 빨라지고, 은행원에게 신호를 보내는 손은 더 자주 올라갔어. 오후 2시 40분, 은행 직원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더니 외쳤어.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갔어요!"

드디어 놈이 나타났어. 근데, 김 형사가 있는 곳이 아니라 명동에 위치한 현금 인출기야. 너무 순식간이었어. 확인해보니까 범인은 30만원을 빼갔어. 경찰이 있나 없나 시험을 한 번 해본 거야. 그렇다면, 분명 다시 인출을 시도할 거야. 김 형사는 입이 바짝바짝 말라. 초조한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은행 마감이 임박한 오후 4시 13분. 은행 직원이 또 손을 번쩍 들고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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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김 형사가 있는 을지로지점에서 300m 정도 떨어진 백화점에 위치한 출장소 단말기에서 돈이 나가고 있대.

김 형사는 전속력을 다해 백화점으로 뛰었어. 그런데 범인은 없었어. 출장소 직원이 검색을 해보니, 방금 전까지 돈을 인출해 뒤로 나갔대. 김형사는 바로 따라 나갔어.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매의 눈으로 훑어 봤어. 바로 그때, 한 사람이 쓰윽 뒤를 돌아봤고 김 형사와 눈이 딱 마주 쳤어. 젊은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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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수상함을 느낀 김 형사는 그 여자를 뒤따라 갔어. 근데 여자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갑자기 딱 멈춰. 김 형사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여자 앞으로 그냥 지나쳤어. 하지만 여자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얼굴을 확인했어.

근데 그 순간, 갑자기 여자가 지하철 역으로 막 뛰어 내려갔어. 김 형사도 얼른 쫓아 갔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척 하면서 승강장 한 칸 옆에 떨어져 있었어. 잠시 후 열차가 들어와.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탑승하는데, 여자가 안 타고 가만히 서 있어. 문이 닫히려는 찰나, 여자가 순식간에 몸을 열차에 집어 넣었어. 미처 못 들어간 김 형사는 닫히는 문 틈에 발을 넣어 걸었고, 다행히 열차 문이 다시 열렸어. 하마터면 놓칠 뻔 했어. 열차에 탑승한 김 형사는 숨을 고르고 출입문 쪽에 선 여자를 다시 주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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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사는 마음이 복잡해. 검거하느냐, 미행을 계속 하느냐. 아이를 찾기 전에는 잡지 말고 미행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한 번 놓칠 뻔 하니 그냥 잡아야 하나 고민돼. 김 형사는 일단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갔어. 여자는 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었어. 그걸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아. 김 형사는 결심을 하고, 역에 도착해 출입문이 열리는 순간 급하게 내리는 척 하며 여자를 쳤어. 그 순간, 여자는 손에서 쇼핑백을 놓쳤고, 안에서 뭔가 와르르 쏟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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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었어. 그 여자가 돈을 인출한 게 맞았어. 김 형사는 그 여자를 잡고 민지 어디 있냐고 추궁했어. 여자는 어떤 남자의 부탁을 받아 자신은 돈만 찾은 거라고 주장했어. 그러면서 오늘밤 9시 반에 서울역에서 그 남자를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어.

여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형사들은 서울역으로 향했어. 접선 장소는 1호선 승강장. 여자와 거리를 두고, 형사들이 뒤 따라갔어. 약속 시간인 9시 반이 됐는데,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어. 바로 그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어. 갑자기 여자가 형사들을 밀치고 철로에 몸을 던진 거야.

열차가 급정거를 했지만 늦었어. 이미 열차가 여자 위로 지나갔어. 승강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어. 형사들이 우르르 철로로 내려갔어. 그리고 열차 밑에서 여자를 끌어올리는데, 머리에서 출혈이 보여. 다행히 여자는 숨을 쉬고 있었어. 여자가 레일 사이에 떨어지고 열차가 그 위로 지나가 목숨을 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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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죽으면 민지는 영영 못 찾을지도 몰라. 여자는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졌어. 여자는 머리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었어.

▲ 납치범의 충격적인 정체

여자의 가족들이 병원에 도착했어. 딸의 상태를 보더니 다짜고짜 언성을 높여. "우리 딸이 유괴라니, 생사람을 잡아도 되는 거냐!"며 화를 냈어. 그러면서 믿을 수 없는 말을 덧붙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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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이 KBS 기자예요. 그런 애가 뭐 때문에 유괴를 해요?"

딸이 숙명여대를 나왔고 지금 KBS 기자로 일한대. 근데 그 여자가 돈을 인출한 건 맞잖아. 이 여자 도대체 뭐지? 형사들은 혼란에 빠졌어. 근데 여자의 소지품에서 이런 게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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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 없으면 우리 식구 다 죽소", "나도 민지 같은 딸이 있소", "살인까진 하고 싶지 않소" 등의 문장이 적힌 메모장이야. 맞아. 범인이 민지네 협박 전화해서 했던 말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어. 이것만 봐도 여자는 단순한 돈 운반책이 아니야. 이 사건에 아주 깊이 연관된, 최소 공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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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여자의 의식이 돌아왔고, 경찰의 강도 높은 추궁이 시작됐어. 민지가 어디 있냐고 물었지만 여자는 입을 꾹 다물었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아무 말이 없어.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날이 샜어. 병원에 온지 이틀째, 드디어 여자가 입을 열었어.

"애는.. 숙명여대 6층 옥상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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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들이 바로 달려갔어. 근데 아이는 보이지 않아. 보니까 저 쪽에, 문이 하나 있어. 물탱크실이야. 문을 열었더니 물탱크와 벽 사이에 플라스틱 통이 가득 쌓여있어. 그 통을 하나 둘 치우면서 보는데, 그 사이에서 무언가 보여.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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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우산. 민지가 실종된 날 아침에 유치원에 들고 갔던, 바로 그 우산이야. 그리고 그 옆에서 아이의 시신도 발견됐어. 유괴된지 5일만에 민지는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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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여자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어. 납치부터 살해, 협박까지, 전부 단독 범행이라 진술했어.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한 공범은 애초에 없었대. 더 충격적인 건, 민지는 유괴된 당일에 살해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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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의 이름은 홍순영. 나이는 23살이야. 뉴스를 본 사람들은 다들 의아했어. 명문대 출신에 방송국 기자가 왜, 아이를 납치해 살해까지 한 걸까. 나흘 뒤 민지가 사라진 아파트 유치원, 숙명여대 건물 옥상에서 현장 검증이 실시됐어. 현장 검증을 하며 홍순영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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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검사도 이 앳되고 작은 체구의 여성이 혼자 범행을 저지른 게 맞나, 의심스러웠대. 더 의아한 건, 홍 씨가 꽤 잘사는 집안의 딸이였다는 거야.

보통 유괴사건의 범행 동기는 '돈'이야. 홍 씨의 집은 대로변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이야. 아버지 소유인데, 당시 가격이 무려 6억원이야. 당시는 은마아파트 31평이 1억원 하던 시절이야. 홍 씨 집안이 엄청 부자란 말이지. 그런데 왜 아이를 유괴해 돈을 요구한 걸까?

경찰의 추궁이 계속되자 홍 씨가 울음을 터뜨렸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 황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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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어요, 그래서 유괴했어요."

홍 씨에게는 1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어. 남자친구는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녀. 그런데 얼마 전부터 자기 친구와 남자친구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는 거야. 그래서 복수심에 두 사람에게 충격을 주려고 유괴를 저질렀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말이지. 이 여자, 어딘가 수상해도 굉장히 수상해.

▲ 모든 게 거짓이었던 여자

경찰이 홍 씨의 직장이라는 KBS를 찾아가 물었어. 근데 방송국에는 홍순영이란 이름의 기자는 없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홍 씨가 나온 대학도 가봤어.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86학번 홍순영. 그런데 대학교에도 홍씨에 대한 기록은 없어.

경찰은 바로 부모를 찾아가 물었어. 부모는 그럴리가 없다며 펄쩍 뛰었어. 딸이 학기마다 꼬박꼬박 등록금을 내며 4년간 학교를 잘 다녔다는 거야. 그러면서 홍 씨의 방을 보여주는데, 책꽂이에 전공책이 빼곡해. 부모는 홍 씨의 대학교 학생증까지 보여줬어.

진실을 알고 있는 건 홍 씨뿐이야. 경찰은 학적부를 보여주며 직접 홍 씨에게 물었어. 그랬더니 홍 씨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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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는 걸, 부모님도 알게 되나요?"

그제서야 홍순영은 체념한 듯 입을 열었어.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충격 그 이상이었어.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6년 겨울, 재수생이었던 홍순영은 대학 합격자 발표장에 가서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을 확인했어. 그런데 자신의 이름은 없었어. 또 불합격이야. 실망할 부모님 얼굴이 눈에 선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가는데 엄마가 뛰어 나와서 어떻게 됐냐고 물었어. 홍순영은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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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합격했어요."

순간 거짓말을 내뱉은 거야. 부모님이 너무 기뻐해. 동네잔치까지 벌였어. 다들 명문 여대에 입학한 딸을 잘 뒀다며 부러워했어. 그 모습을 보며 홍 씨는 '내년에 합격해서 진짜 대학생이 되면 되지. 딱 그 때까지만 거짓말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어.

1986년 3월 신학기가 시작되고, 학교에 가겠다며 집을 나선 홍 씨는 재수학원도 도서관도 아닌 대학교로 갔어. 강의실에 들어가서 강의를 들으며 진짜 재학생하고 똑같이 행동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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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는 전산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대학교에 '가짜 대학생'이 그렇게 많았대. 당시 가짜 대학생은 진짜 수업을 듣고, 교내 서클에 가입하고, 심지어 서클 대표도 했대. 진짜와 가짜 대학생을 구분하기 어려웠어. 홍순영은 가짜 대학생 생활을 한지 3개월쯤 지나 캠퍼스를 걷다가 뭔가를 주웠어. 누군가의 학생증이었어. 그렇게 주운 학생증을 위조해, '정치외교학과 1학년 홍순영'이라는 가짜 학생증이 만들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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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씨는 집에서 전공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시험기간에 도서관도 갔어. 그러면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대학생이 됐어. 가족도 친구도 누구도 가짜라고 의심할 수가 없었대. 그런 홍 씨에겐 남자친구도 생겼어. 4년 후 졸업식 날에는 학사모를 쓰고 꽃다발을 든 사람들 속에 홍 씨도 있었어. 졸업식에 부모님과 남자친구를 불러 기념사진까지 찍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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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가짜 생활은 끝일까? 아니, 졸업을 했으니 취직을 해야지. 홍 씨는 방송국 시험에 합격해 기자로 취직했다고 또 거짓말을 했어. 이번엔 대학교가 아닌,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로 아침마다 출근했어.

그런데 이번 거짓말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어. 바로 돈이야. 그동안은 등록금과 용돈을 부모님한테 받아 썼는데, 이제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됐으니 부모님한테 손을 벌릴 수가 없어. 그리고 그 즈음, 남자친구와 관계도 불안해지기 시작해. 하필이면 홍 씨의 친구가 남자친구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그 친구가 자기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있는 거 같아. 혹시 내 이야기를 남친한테 하지는 않을까, 거짓말이 들통나면 어떡하지, 불안해.

그 때 한가지 생각이 홍 씨의 머리에 스쳐. 돈만 있으면 거짓말을 계속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돈을 구할 방법으로 홍 씨가 떠올린 방법은 '유괴'였어. 그 시절엔 아이를 납치해 큰 돈을 뜯어내는 유괴사건이 자주 일어나서 관련 뉴스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보도됐어. 거기서 힌트를 얻은 거야.

홍 씨는 가장 먼저 '이상민'이란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었어. 그리고 범행 장소로는 부자 동네를 선택했어. 새로 생긴 대단지 아파트 근처를 서성이면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어. 그 때 눈에 들어온 아이는? 민지가 아니었어. 알고 봤더니, 민지를 납치하기 전, 홍 씨가 납치한 아이가 한 명이 더 있어.

홍 씨의 첫 범행 대상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야. 아이 손에 든 신발주머니에 적힌 학년, 반, 이름을 보고 학교로 전화를 걸었어. 그러면서 아이의 엄마인데 집안에 일이 있으니 바로 조퇴시켜 달라고 말했어. 잠시 후 아이가 교문 밖으로 나오자 홍 씨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향했어. 그리고 옥상 창고로 데려가서 테이프로 입을 막고 손 발을 묶었어. 그 상태로 아이를 종이 상자에 넣고 창고문을 잠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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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는 우연히 옥상에 올라간 홍 씨 아버지한테 발각됐어. 홍 씨는 아이가 친구 조카라며, 잠깐 장난으로 놀아준 거라고 둘러댔어. 아버지는 당장 아이를 돌려보내라 했고, 홍 씨는 아이를 아파트까지 데려다 줬어. 그리고 홍 씨는 아이한테 입단속을 시켰어.

"엄마한테는 유괴범한테 잡혀갔는데 언니가 구해줬다고 말해. 알았지?"

아이는 집에 가서 자신이 겪은 일을 그대로 말했고, 부모는 경찰에 신고했어.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라 자신이 어디 잡혀 있었는지 몰라. 또 결과적으로 아이가 무사히 집에 돌아왔잖아. 그래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이 때라도 멈췄으면 좋았을 텐데, 홍 씨는 첫번째 실패를 교훈 삼아 더 치밀한 범행계획을 세웠어. 집 대신 아이를 데려다 놓을 장소를 물색했고, 자신한테 익숙한 곳인 대학교의 옥상을 골랐어. 그 곳에 미리 노끈과 헝겊을 갖다 뒀어. 그리고 홍 씨가 나타난 곳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 초등학생보다 더 어린 유치원생을 타깃으로 선택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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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유심히 지켜보던 홍 씨의 시선이 우산 꽂이 속에 있는 노란 우산에 멈췄어. '개나리반 김민지'라는 이름표를 보고 범행 대상을 정했어. 근처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를 걸었어.

"저 개나리반 민지 엄마인데요.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아이 좀 보내주세요. 데리러 가는 길에 만나면 되니, 아이만 내보내주시면 되요."

선생님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꾀를 쓴 거야. 이름과 반까지 대는 여자를, 선생님은 의심하지 않았어. 그렇게 유치원 앞에서 민지를 만난 홍 씨는 엄마 심부름을 온 언니라며, 아이를 대학교 앞 카페로 데려갔어. 거기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집 전화번호를 물었어. 근데 시간이 좀 지나니 민지가 불안해 하며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기 시작해. 그런 민지를 데리고 대학 건물 옥상으로 간 홍 씨는, 거기서 끔찍한 짓을 저질러.

홍 씨는 집으로 돌아가서 원고지에 글을 써 내려갔어. 아까 그 협박 멘트. 처음에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가 남자로 느껴진 건, 홍 씨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남자 목소리를 낸 거야. 그렇게 아이가 죽고 나서도 홍 씨는 4차례나 민지네 전화를 걸었어.

4년간 가짜로 살아왔던 홍순영은 모든 걸 인정하고 숨김없이 다 털어놨어. 뒤늦게 후회되는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어. 하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어. 이 엄청난 사건의 시작은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작은 거짓말이었어.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내뱉은 이 거짓말 한마디, 그걸 덮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반복했어. 그렇게 거짓말로 쌓아 올린 모래성을 지키려다가 결국 한 어린 아이의 목숨까지 빼앗게 된 거야.

홍순영에게는 사형이 선고됐어. 그리고 석달만에 사형이 집행됐어. 홍 씨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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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35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소장의 인정심문이 시작됐다. 홍순영은 인정심문에 대답도 못하고 눈물을 쏟으며 계속 소리 내어 울기만 했다. 마지막 유언을 말하라는 소장의 말에 할 말이 없다는 표시로 고개를 흔들었다. 신부와 고해성사 때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빕니다', '부모님께 너무 큰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했다. 의식이 끝나자 곧바로 휘장이 닫히고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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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동안의 거짓 삶. 거짓말로 쌓은 모래성은 언젠가 무너지게 돼있어. 결국 중요한 건 거짓과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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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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