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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차 번호 아는데도 놓친 뺑소니범, 1년 만에 잡은 결정적 단서

강선애 기자 작성 2022.10.14 10:26 수정 2022.10.14 10:47 조회 7,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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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3일 방송된 '서울 그랜저 97XX - 7대의 타이어 자국'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하하, 배우 장희진, 김태영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설날의 비극, 9살 소년의 죽음

때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93년 1월 23일 토요일 설날 연휴였어. 어린이들이 세뱃돈을 받아 즐거워하는 바로 그날, 서울에 살던 초등학교 2학년 아홉살 찬이도 세뱃돈을 많이 받아 기분이 좋았어. 이 아이가 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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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4살 많은 형이 있는 찬이는 부모님한테 애교가 많은 아이였어. 설날 저녁, 찬이네는 서울 반포에 있는 친척집에 갔어. 떡국, 잡채, 불고기 등 명절 음식이 가득한데 찬이는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었어. 그 당시 초등학생들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것, 바로 맥X널드 햄버거였어. 그 햄버거 가게가 친척집 앞에 있었거든. 세뱃돈도 받았겠다, 오늘이 절호의 찬스야. 찬이는 햄버거를 사먹으러 가겠다고 엄마한테 한참을 졸라서 허락을 받았어. 그렇게 찬이는 형이랑 집을 나섰어. 그 때가 저녁 6시경이었어. 너무 들뜬 찬이는 외투를 입는 것도 까먹고, 검은색 바지, 가슴에 크게 흰색 띠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입고 친척집을 나섰어.

그리고 1시간이 지난 후, 집으로 전화 한통이 걸려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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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전화가 와서 바로 강남 성모병원 응급실로 갔죠. 만져보니까 애는 몸이 따뜻한데… 저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찬이 아버지

찬이가 햄버거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거야. 안타깝게도 찬이는 깨어나지 못했어. 찬이의 사인은 장기파열이었어. 큰 외상은 없었는데, 몸 안이 엉망진창이었어. 사고를 목격한 찬이 형이, 그 당시 상황을 적은 글이 있어.

"1월 23일 설날 저녁 7시 20분쯤. 햄버거를 사먹고 횡단보도에서 내동생이 신호등 불이 파란불이 되자 뛰어갔는데. 갑자기 승용차가 동생을 치고 막 달려갔다. 내동생은 거들떠보지 않고 갔었다."
-찬이 형의 진술

범인이 찬이를 치고 그냥 간, 뺑소니 사건이야.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는데, 깨진 유리조각 하나 없이 현장은 너무 깨끗해. 1993년은 CCTV나 블랙박스도 없던 시절이야. 그럼 어떻게 단서를 찾아야 할까. 일단 목격자가 중요해.

찬이랑 같이 있던 형은 너무 충격을 받아서 기억을 잘 못했어. 바로 그 때, 목격자가 나타났어. 그것도 5명이나.

▲ 목격자들의 증언

사고가 난 곳은 서초구 반포동의 6차선 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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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목격자는 남자 대학생 2명으로, 찬이와 횡단보도 같은 쪽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자마자 찬이가 먼저 달려나갔어. 절반쯤 건너갔을 때 갑자기 차 한대가 나타나 찬이를 쳤어.

이 광경을 건너편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휴가 나온 군인 2명이었어. 자동차 앞 바퀴 쪽에 찬이가 쓰러져 있었대. 그런데 사고를 낸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급정거했던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 아이는 점점 차 밑으로 끌려 들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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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격자는 택시기사야. 이 사고를 코 앞에서 지켜본 택시기사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어. 차가 찬이를 조금씩 끌고 가는데, 바퀴가 좌우로 움직이더래. 아이가 밑에 있는게 계속 차를 움직이려고 하니 바퀴가 좌우로 계속 움직인거야. 그러더니 덜컥, 찬이를 아예 타고 넘어가 그대로 도주를 해버렸어. 택시기사는 바로 차를 돌려 뺑소니범을 쫓아갔어. 하지만 범인은 엄청난 속도로 도망갔고, 택시기사는 결국 놓치고 말았어.

사고가 난 후에는 차에서 내려 피해자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게 상식인데, 이 뺑소니 범은 그냥 아이를 밟고 지나가버렸어. 이렇게 자동차 바퀴가 사람이나 물체를 깔고 지나가는 것을 '역과'라고 해. 찬이의 사인이 장기파열이었지? 차가 역과 하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찬이는 살 수도 있었어. 그 범인, 반드시 잡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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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목격자들은 하나같이 문제의 뺑소니 차량 번호판을 보려고 했대. 근데 범인이 도주하며 번호판을 비추던 후미등을 꺼서, 번호판이 잘 안 보였대. 그런데, 목격자들도 보통이 아니야. 그 와중에 '그랜저 차량', '쥐색', '차량번호 9714 혹은 9716' 등의 목격 단서들이 나왔어.

당시 그랜저는 '각그랜저'라고, 최고급 승용차로 여겨지던 차야. 차량 번호는, 9716 또는 9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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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에 번호까지 나왔으니, 이제 범인 잡는 건 시간문제야. 경찰이 차적 조회를 했더니, 9714 그랜저는 없고 9716 그랜저는 있어. 그렇게 나온 서울 9716 그랜저는 총 7대야. 이 중에 범인이 있을까?

▲ 7대의 용의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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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용의차량 번호는, 서울1 두 9716. 차주는 양재동에 거주하는 40대 이모씨야. 경찰이 차를 확인하러 집에 갔는데 차 위에 먼지가 쌓여있어. 사고 발생 5일 전에 치질 수술을 받아 계속 병원에 있었대. 알리바이가 명확해. 용의선상 제외.

두번째 용의차량 번호는, 서울1 즈 9716. 차주는 성북구에 사는 50대 보험회사 직원이야. 외근이 많은 직업이라 차를 많이 몰 거 같은데, 협심증을 앓아서 운전을 안 한지 오래 됐대. 게다가 설날 당일엔 시집간 딸이 집에 와서 밖에 안 나갔대. 또 용의선상 제외.

세번째 용의차량 번호는, 서울4 추 9716. 서대문구에 사는 40대 사업가야. 이 사람은 면허가 없고 운전기사와 함께 다닌대. 설날에는 명절이라 운전기사도 쉬었고, 차주도 집에 있던 게 확인 됐어. 용의선상 제외.

네번째 용의차량 번호는, 서울3 즈 9716. 다섯번째 번호는 서울2 무 9716. 이 두 대는 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 차주가 아예 외국에 나가 있었어. 네번째 차량 차주는 사건발생 전 싱가포르에 갔고, 다섯번째 차주 부부는 LA에서 한달간 체류했대. 두 차주 모두 출입국 기록이 확인됐어. 용의선상 제외.

여섯번째 용의차량 번호는, 서울3 호 9716. 이 차주는 설날 아침에 그랜저를 타고 동대문에 있는 큰집에 갔다가 자정이 다 되어 돌아온 게 확인됐어. 또 용의선상 제외야.

이제 한 대만이 남았어. 마지막 용의차량 번호는 서울1 수 9716. 그런데 이 차주가 좀 수상해. 압구정동에 사는 37살 K씨야. 앞의 6대는 사고 직후 순순히 조사를 받았는데 이 차만 조사를 안 받았어. 사고 다음날 저녁, 경찰이 K씨 집으로 찾아갔어.

집에서 K씨의 장모님을 만난 경찰들은 사위의 행적을 물었어. 장모님에 따르면, 사위 K씨의 회사는 흑석동. 압구정동 집에서 흑석동에 가려면 사고가 난 반포를 지나야 해. 또 K씨는 사고 다음날 여행을 떠났대. 어딘지 좀 수상하지. 경찰들은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K씨의 소재를 파악했는데, 강원도 스키장에 갔대. 결국 K씨는 사고가 난지 5일만에 경찰들 앞에 나타났어. 그런데 뺑소니 사고는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펄쩍 뛰었어. K씨의 알리바이가 수상한 경찰들은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했어. 그런데 사고 당일 반포 사거리를 지나갔냐고 묻는 질문에 K씨의 대답에서 '거짓반응'이 나왔어. 거짓말 탐지기가 법적 효력은 없지만, '거짓반응'이 나온 건 의심할 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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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K씨는 수사 선상에서 제외됐어. 거짓말 탐지기 외에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거든. 또 결정적으로, K씨의 차 위에는 스키 캐리어가 달려있어. 사고 전날에 200만원이나 주고 달았는데, 그런 게 달려있으면 목격자들이 당연히 봤을 거란 이야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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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수사는 장기화 되기 시작해. 아무 소득 없이 3개월이 지났어. 목격자도 있고 차량 번호까지 알지만 범인을 잡을 수가 없어. 찬이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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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봉천동, 사당동… 서울 골목을 밤새 각 그랜저 검은 차량 그 번호 비슷한 거를 찾으러 다녔어요.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같았으면 어디부터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검은색 각 그랜저고 차량번호 앞이 97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무조건 그 차량을 다 조사해서 찾아야겠다 해서 그렇게 돌아다닌 거죠. 맹목적으로. 누가 그랬는지 알고 싶어서, 찾고 싶어서…"
-찬이 아버지

▲ 결정적 단서, 타이어 자국

이런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사건발생 4개월 후, 운명적으로 한 남자를 만나게 돼. 바로, 서초경찰서 강력반 탁신천 형사. 원래 교통사고는 교통조사계에서 수사하는데, 해결이 안되니 강력반으로 넘어왔어. 탁 형사는 부담이 어마어마했고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감도 안 잡혔지만, 수사를 대충할 수가 없었대. 탁 형사의 아이가 찬이 또래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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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알 거 같은 탁 형사는 이 뺑소니 사건의 원인이라도 밝혀야겠다고 다짐했어. 그리고 수첩에 이런 말을 적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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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 꼭 잡아줄게!"

탁 형사는 사건을 처음부터 짚기 시작했어.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스키장에 간 K씨. 거짓말 탐지기에서 거짓반응이 나온 이유를 조사했어. 알고보니 몇 년 전에 K씨가 자전거 탄 사람을 친 적이 있었던 거야. 그때도 횡단보도 였고, 찬이 사건과 비슷한 시간이었대. 그런 트라우마가 있어서, 거짓 반응이 나온 거야. 탁형사의 재수사 결과, 서울1수9716 차량에 대한 의혹이 풀렸어.

탁 형사는 사건 파일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어. 바로 그때, 결정적인 단서가 탁 형사의 눈에 띄었어.

"찬이가 범인을 잡으려고 그런 옷을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얀 띠에 타이어 자국이 그대로 선명하게 박혀 있는 거예요. 바로 이것이다! 거기서 단서를 찾은 거죠. 찬이 옷에서."

-탁신천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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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자국이 찬이 옷에 남은 거야. 찬이가 그 옷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가슴에 있는 흰 띠 때문에 이 옷을 입으면 반달곰처럼 귀여웠대. 근데 이 흰 띠에 범인의 흔적이 남았고, 그게 결정적인 단서가 됐어.

타이어 자국으로 하는 수사는 '윤적수사'라고 해. 신발마다 밑창 모양이 다른 것처럼, 타이어도 모양이 천차만별이야. 또 차마다 마모 정도가 달라서 같은 타이어를 끼더라도 똑 같은 윤적은 없다고 봐야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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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형사는 구두약 10통과 솔, A4 용지를 사서 용의 차량들의 타이어 본을 뜨러 직접 발로 뛰어다녔어. 경비원한테 걸려 도둑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그렇게 7대의 차량 전부의 타이어 본을 떴어. 과연, 찬이 옷에 남겨진 타이어 자국과 비슷한 게 있었을까?

비슷한 게 있었어. 그것도 3대나. 서울1 즈 9716, 서울4 추 9716, 서울2 무 9716 이었어. 국과수에서 정밀 감식에 들어갔고, 얼마 후 결과가 나왔어. 찬이 가슴에 남은 타이어는, 바로 서울2무 9716 차량의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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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7개월만에 드디어 용의차량이 1대로 좁혀졌어. 미국 LA에 한달 간 있었다던 50대 부부의 차야. 출입국 기록을 확인했는데 사건 당일 이 부부가 LA에 있었던 건 맞아. 그럼 다른 사람이 운전했을 가능성이 생기지. 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총 세 명, 차주 부부의 세 아들이었어.

먼저, 첫째 아들은 27살 회사원이야. 면허는 있는데 장롱면허라 운전을 잘 못 한대. 최근에는 핸들을 잡아본 적도 없대.

둘째 아들은 25살 대학생인데, 운전을 잘하는 베테랑이야. 그런데 자기의 지프차가 따로 있어서 부모님 그랜저는 안 탄대.

마지막 셋째 아들은 23살 군인이야. 셋째는 부대 안에서 생활해서 탁 형사는 일단 첫째와 둘째를 먼저 불러 조사했어. 첫째와 둘째는, 설날에 친척집을 돌아다녔고 이동은 둘째의 지프차로 했다고 말했어. 탁형사는 거짓말 탐지기를 제안했고, 두 형제는 흔쾌히 이를 수락했어. 두 형제는 탁 형사의 질문에 흔들림 없이 대답했어. 그런데 딱 한가지 질문에만 묘한 반응이 나왔어. 바로 이 질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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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범인을 알고 있냐는 그 질문에 거짓 반응이 나온 거야. 그 형제는 범인을 알고 있어. 그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군 복무 중인 막내, 이 일병이야.

▲ 드디어 밝혀진 범인의 정체

탁 형사가 두 형제를 추궁했어. 혹시 막내가 설날에 외박을 나왔는지 묻자, 처음엔 기억이 안난다고 하던 형들이 결국 그날 외박을 나온 것 같다고 대답했어. 그런데 부대에 확인해 봤더니, 이 일병의 외박이나 외출 기록이 없어. 알고보니 이 일병은 그날 정식으로 외박을 나온 게 아니야. 용산 국방부에서 장군 차를 몰던 운전병이었던 이 일병은, 정식 보고 없이 수시로 외박을 나오곤 했대. 이제, 이 일병을 불러 확인을 해봐야해.

이 일병에 따르면, 설날 오후 5시 부대를 나와서 압구정동 집으로 갔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 곧바로 서초동 삼촌 집으로 갔대. 거기서 저녁을 먹고 세뱃돈을 받아 나와서, 삼성동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실컷 놀고 집에 들어온 게 새벽 2시래. 그리고 그날 그랜저가 아닌 택시를 타고 이동했대.

여전히 의심을 품고 탁 형사는 다시 수사기록을 들여다 봤어. 순간, 탁 형사가 이마를 탁 쳤어. 목격자 중에 뺑소니범을 추격했던 택시기사 기억나지? 그 분이 한 말 중에, 용의자의 옆자리 조수석에 여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타고 있는 걸 봤다는 이야기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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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여자를 찾아야 해. 이 일병이 밤에 간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가 조수석의 그 여자는 아닐까. 탁 형사는 이 일병을 추궁했지만, 부킹한 여자를 어떻게 기억하냐며 모르겠다고 했어. 탁 형사는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찾아갔어. 웨이터는 이 일병이 나이트클럽 VIP 고객이라며 올 때마다 차를 몰고 온다고 했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 설날 당일에 이 일병이 부킹을 안 했대. 대신, 이 일병이 처음부터 단발머리의 한 여성과 같이 와서 있었다고 증언했어.

같이 나이트클럽에 간 여성에 대해 묻자 이 일병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어. 그는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 김희정 씨라고 대답했어. 탁 형사는 바로 김희정 씨를 찾아갔어. 그런데 웨이터가 말했던 단발머리가 아닌, 긴 생머리의 여성이었어. 김희정 씨에게 이 일병에 대해 물으니 반응이 날카로웠어. 희정 씨는 그날 다른 일행과 나이트 클럽에 갔고, 나중에 이 일병이 다른 여자와 들어와서 노는 걸 봤다고 말했어. 이게 사실이라면, 이 일병은 같이 나이트클럽에 간 여성을 숨기려고, 엉뚱하게 전 여친 희정 씨 이름을 댄거야.

다시 이 일병을 추궁했지만, 이 일병은 기억이 안 난다며 입을 꾹 다물었어. 탁 형사는 이 일병의 부대로 면회를 온 사람 중에 그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래서 이 일병 부대 방문 면회자 명단을 입수했어. 그런데 명단을 보니 장난이 아니야. 이 일병과의 관계에 대해 '나이트에서 처음 만남', '압구정동 노상에서 처음 만남', '백화점 앞 노상에서 처음 만남' 이런 길거리 헌팅으로 만난 여성들이 수두룩해. 이 일병은 당시 유명한 '오렌지족'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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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호화스러운 소비생활을 하던 20대를 '오렌지족'이라 불렀어. 오렌지족의 필수 아이템은 차였고, 그랜저 정도는 몰아야 인정 받았어. 압구정동 주변을 돌면서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야, 타!"라고 말하고 즉석 만남이 이뤄졌지. 이 일병이 만난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렇게 노상에서 만났어.

탁 형사는 면회자 리스트에 있던 여자들을 한 명 한 명 조사하기 시작했어. 그 중 26살 최 씨. 사고가 있기 한달 전, 이 일병의 '야 타'로 만난 사이야. 탁 형사가 최 씨에게 설날에 이 일병과 나이트클럽에 갔냐고 물었어. 순간 최 씨의 눈빛이 흔들렸어. 탁 형사는 촉이 왔어. "그날 뺑소니로 애가 죽었는데, 그 때 같이 타고 있었죠?"라고 계속 추궁했어. 최 씨는 말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해. 그러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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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요, 계속 자수하라고 했어요."

조수석의 그 여자, 동승자는 최 씨였어. 사건발생 1년만에 뺑소니 차량의 동승자를 찾았어. 최 씨는 모든 걸 털어놓기 시작했어.

사건이 있던 1월 23일. 부대에 있던 이 일병은 아침부터 최 씨한테 전화를 걸어 저녁 6시에 만나서 나이트클럽에 가서 놀자고 제안했어. 그렇게 저녁에 두 사람이 만났는데, 이 일병이 차를 끌고 나타났어. 이 일병은 친척집 두 군데를 돌아 세뱃돈을 받았고, 그렇게 받은 돈으로 옷을 꼭 사야한다며 반포동 수입상가로 향했어. 거기서 옷을 사고 나이트클럽으로 출발했는데, 그 때 들 뜬 마음으로 속도를 높여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난 거야. 근데 최 씨 이야기 중에 충격적인 게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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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이 길게 느껴지는데. 저는 서는 줄 알았어요 거기서. 서는 줄 알았는데… (이 일병) 본인도 떨리고. 일단 사람이 어떻게 됐나 알아야 하니까 (사고 현장으로) 가보자고. 그래서 갔더니 (찬이가) 병원에 실려갔다고 그러더라고요. 자수하라고 했더니, 맨 정신으로 자수 못하니까 술 마시고 하겠다고…"
-동승자 최 씨

사고 당일, 찬이를 치고 도주한 뒤 사고현장으로 다시 갔다는 거야. 심지어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봤대. 병원에 실려갔다는 말을 듣고도 나이트 클럽에 간 거야. 최 씨가 그 후에 자수를 계속 권했지만 이 일병은 듣지 않았대.

그렇게 끝까지 버티던 이 일병은 최 씨 증언이 나온 후에야 범행을 인정했어. 자백을 듣기까지 무려 1년이 걸린거야.

▲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며칠 뒤 현장 검증이 열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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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 부모님도 거기 계셨어. 내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진실을 봐야만 하는 부모. 결국 찬이 부모님은 찬이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어.

이 일병은 군사법정에 서게 됐어. 피해자가 사망했고 도주까지 했으니, 중형이 예상되지. 그런데 이 일병이 받은 최종 형량은 1년 6개월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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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어. 찬이 부모님이 선처해 주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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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한을 풀게 됐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일병 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와서 무릎 꿇고 사죄를 하시더라고요. 재판관이 묻더라고요 어떻게 하실거냐. 그래서 아내와 상의해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젊은이의 앞길이 구만리 같이 있는데 용서해주라고. 그렇게 말하고 우리는 돌아 나왔습니다."
-찬이 아버지

찬이 부모님도 처음엔 똑같이 갚아주고 싶었대. 하지만 같은 부모로서, 이 일병 부모의 마음을 무시할 수가 없었어. 또 한 젊은이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없다는 생각에, 어렵게 용서하고 선처를 베풀었어.

하지만 찬이의 빈자리는 너무 컸어. 찬이 어머님은 아직도 '9716'이란 그 숫자를 또렷이 기억하고 계셔. 어머니는 이번에 '꼬꼬무' 카메라 앞에 서지 못하셨지만 방송을 허락한 이유가 계셔. 우리 아들 찬이가 하늘나라에서라도 이 방송을 볼 거 같아서. 그리고 만약 찬이가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지난 30년간 찬이를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대.

찬이 어머니가 보내 온 편지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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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먼저 간 찬이에게.
내 사랑 찬이가 내 곁을 떠나지도 3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살아서 엄마 하고 달려와서 꼭 껴안아 줄 것 같구나. 처음엔 아들을 보내고 한없는 고통 속에서 정신줄 놓고 몇 년을 멍청하니 지내고 있다가, 너희 형하고 살아야했기에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단다. 글을 쓰고 있으니 마치 찬이가 내 곁에 돌아온 거 같구나. 우리 찬이와 하늘나라에서 만나려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열심히 기도 드리고 있단다. 내 사랑 찬이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기를 매일 같이 기도 드릴게. 우리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고통없는 천국에서 잘 지내길 바란다."
-찬이 어머니 편지 中

'꼬꼬무' 인터뷰에 응해주신 찬이 아버지도 찬이에게 메시지를 남기며 눈물을 보이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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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싶고, 보고싶어 한다고 돌아올 건 아니지만. 나중에... 만나자."

찬이 사고가 났던 1993년도에 뺑소니 사고 건수는 약 1만건이 있었대. 검거율은 절반이 안되는 44%. 근데 요즘은 어떨 거 같아? 90% 이상 검거한대. 뺑소니 사고는 5년 이상에서 무기징역, 최고 사형까지 처벌받는 중범죄야. 뺑소니 사건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거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실수 때문에 생긴 피해자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꼬꼬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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