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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갓난 아이 들쳐업고 압록강 건넌 엄마…이용운 가족의 목숨 건 탈북기

강선애 기자 작성 2022.10.07 12:05 수정 2022.10.07 13:46 조회 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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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6일 방송된 '47년 만의 탈출-검은 강을 건너라'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멜로망스 김민석, 배우 정이랑, 가수 장예은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은밀한 접선

때는 1997년 7월 27일, 중국이야. 택시 한대가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어. 뒷자리에는 당시 SBS보도국 소속 김천홍 기자가 탑승했어. 김 기자의 표정이 심각해. 달리던 택시는 허름한 시장 앞에 멈췄고, 기자는 택시에서 내려 갑자기 쇼핑을 했어. 바지, 티셔츠, 슬리퍼, 러닝 셔츠 등 풀세트로 구매했어. 근데 김 기자는 제일 낡은 물건들만 골라 샀어. 왜 그랬을까? 변장해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고. 허름한 차림의 김 기자는 마치 현지인처럼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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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자의 목적지는 장백 조선족자치현이었어. 조선족이 모여 사는 곳인데, 북한이랑 엄청 가까워. 압록강을 경계로 딱 맞닿아 있어서 중국 공안의 감시가 엄청 심해.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면, 잡혀갈 수 있어. 그래서 현지인처럼 위장을 한 거야.

김 기자는 다시 택시를 타고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어. 한밤중이 되어 도착한 곳은 장백의 한 작은 마을. 어둠 속에서 주변을 살피며 골목을 걷다가 어느 허름한 집 앞에 멈춰 섰어. 김 기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고 어둠 속에서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쳤어.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와 갓난 아기를 업은 젊은 여자야.

"오셨습네까. 기다리고 있었습네다."

남자가 악수를 청하는데 손을 덜덜 떨어. 두 사람이 김 기자한테 이걸 내밀었어. 낡은 신분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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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에는 '공민증', '녀자', '평양 시민' 등이 적혀있어. 그래, 이 두 사람은 북한 사람이야. 남자의 이름은 이용운, 당시 62세. 여자는 그의 딸 이애란. 갓난 아기는 애란 씨의 아들이야. 이제 태어난지 100일 정도 됐어. 이 사람들은 김 기자를 만나려고 압록강을 건넌 거야. 왜? 6.25때 헤어진 이용운 씨의 어머니를 만나려고, 북한을 탈출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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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있어. 북한에 가족이 7명이나 더 있대. 이 7명의 가족까지 다 데리고 탈출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야. 거의 불가능하고 위험한 계획이야. 일가족 10명의 탈출이라니. 운 좋게 북한 땅을 빠져나와도 중국 땅에서 걸릴 수 밖에 없어. 그렇게 위험한 일인데, 왜 김 기자는 여기에 꼭 와야만 했을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줄게.

▲ 목숨 건 탈출의 시작

때는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9년.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이용운 씨의 집이야. 혜산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장백과 맞닿은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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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교포총국에서 '동생이 이용운 동무를 찾고 있음'이라는 메시지가 왔어. 용운 씨는 6.25 당시 남쪽으로 피난 가던 길에 부모님과 동생들과 헤어졌고, 전쟁통에 가족이 다 죽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동생이 40년만에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한 거야.

용운 씨는 단숨에 평양에 있는 교포총국까지 찾아갔어. 동생이 사는 곳을 알려달라 하니, 미국 캘리포니아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동생 넷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다는 거야.

그 소식을 듣고 두근두근 가슴이 뛰는 사람이 또 있어. 바로 이용운 씨의 딸 애란 씨야. 그 당시 북한의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어. 여기저기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던, 아무런 희망이란 것이 없던 상황이야. 애란 씨는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이건 어쩌면 기회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애란 씨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미국에 있는 할머니한테 편지를 썼어.

"자나깨나 꿈결에도 그리운 나의 할머님께 드립니다. 할머님을 비롯한 일가족 모두가 살아 계신다니 기쁜 이 마음 반가운 이 마음 말로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평양이 고향이긴 하지만, 집도 없고 부모님들도 없고 하니까, 군사복무를 마치면서 량강도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한시라도 더 가기 전에 보고 싶습니다. 조국에서 할머님의 손녀 애란 삼가 올립니다."

-애란이 미국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 내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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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 미국까지 잘 전달 됐을까? 편지를 보내고 몇 달이 지났어. 기대를 저버릴 때 쯤, 드디어 답장이 왔어.

"용운아, 40년이나 지났는데 네가 살아있다니 마치 꿈만 같다. 가족이 너를 버렸다고 생각하며 많이도 울었겠구나.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
-미국에서 온 편지 내용 中

편지를 보낸 사람은 바로 이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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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함은 백홍용. 당시 85세셨어. 백 할머니는 그동안 아들 찾겠다고 안 해본 일이 없었대. 살아있다면 당연히 남한에 있겠거니 하고 아들 친구들, 지인들 다 만나봤는데 아무도 몰랐다는 거야. 이산가족찾기 방송도 나갔는데, 소용이 없었어. 마지막으로 북한까지 수소문했다가, 드디어 아들의 소식을 알게 된 거야. 40여년 만에 아들을 찾았지만, 북한에 사니 만날 수가 없어. 백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애란 씨의 집 문을 막 두드렸어. 나가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서있어. 남자는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건넸어. 카세트 테이프였어. 카세트 테이프에는 무슨 내용이 녹음돼 있었을까. 현재의 애란 씨를 만나 직접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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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테이프를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혹시 우리집에 도청장치 같은 게 돼있는지 모르니까, 이불 세 개를 쌓아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듣고 나온 거죠. 우리 할머니가 그때 '다 서울에 데려가려고 그러니까 서로 서로 의지해서 다같이 압록강 건너 오라'고. 그런 메시지를 보내신 거예요."
-2022년, 현재의 애란 씨

백 할머니가 책임 지고 서울로 데려갈 테니 용운 씨 가족들에게 북한을 탈출하라고 한 거야. 이 말을 들은 애란 씨는 심장이 막 뛰었어. 북한을 탈출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 희망 없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애란 씨는 '내 아들이 다른 세상에서 살 수만 있다면'을 생각했대.

백 할머니도 대단하시지. 40년만에 찾은 아들을 만날 수 없으니 그 곳에서 탈출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은 거야. 그것도 일가족 전체를. 백 할머니는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어. 우선 이들이 중국을 빠져나오는 걸 도울 수 있도록 현지 사정에 밝은 사람이 필요해. 그게 바로 김천홍 기자였어. 김 기자는 보도국 내에서 '중국통'으로 불렸어. 지인을 통해서 김 기자를 알게 된 백 할머니가 김 기자한테 도움을 요청한 거야.

김 기자는 잘못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이란 걸 알았지만 백 할머니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어. 왜냐하면, 자신도 이산가족이라 그 아픔을 잘 알았거든.

"제 친누나도 지금 현재 북한에 계십니다. 누님하고 누님 가족을 탈북시켜야 되겠다, 그렇게 작정을 했어요. 근데 저희 아버지는 북에 살아계신 누나랑 연결하다가 연락이 딱 닿기 열 달 전에 돌아가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이용운 씨 모친 백 할머니는 살아 계셨고. 살아계신 할머니의 원을 풀어드리자 했죠."
-김천홍 기자

운명적인 만남이었지. 누구보다 백 할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잘 아니까. 김 기자는 그동안 쌓아둔 인맥과 정보를 모두 모아 계획을 세웠어. 준비 기간만 약 1년. 그렇게 김 기자는 장백으로 가서 이용운 씨 부녀를 만난거야.

▲ 물거품이 된 계획, 다시 북으로

그런데 왜 나머지 7명의 가족들은 용운 씨와 같이 압록강을 건너지 않은 걸까? 다른 가족들은 탈북을 망설이고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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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용운 씨 가족부터 소개할게. 장백에 와 있는 건 이용운 씨와 첫째딸 애란과 그의 어린 아들. 북한에는 이용운 씨의 아내 이재관 씨, 둘째 아들 학철, 셋째 아들 상철, 막내 딸 미란이가 있어. 또 애란의 남편, 학철의 아내, 그리고 두살 된 아들까지. 이렇게 가족은 총 10명이야.

가족들이 북한에서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든가, 다시 돌아가서 가족을 설득하든가. 이제 결정을 해야해. 다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 때, 애란이 자신이 다시 돌아가서 가족들을 설득해 데리고 나오겠다고 말했어.

애란은 곧장 떠날 채비를 했어. 간단하게 짐을 꾸리더니, 갑자기 어린 아들을 들쳐 업어. 아이랑 같이 가겠다는 거야. 안된다고 말렸지만 말을 안 들어. 만에 하나 일일 틀어져 자신이 못 나오면, 아들을 다시 못 볼 수 있다고. 절대 아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거야. 애란은 아들을 업고 압록강을 건너겠다고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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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백-북한 혜산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어. 압록강 강폭이 가장 좁은 곳은 20미터 밖에 안되고, 수심도 깊지가 않아. 충분이 건널 수 있어. 하지만 문제는 강변을 따라 배치된 국경 수비대야. 허가 없이 건너다가 들키면 처형될 수도 있어.

"만약의 경우 실수한다면 그 자리에서 자살이라도 하는게.. 죽음을 각오해야 하니까."
-북한 복귀를 앞둔 이애란 씨

7월 31일 밤. 아들을 업은 애란이 강 건너편을 유심히 살폈어. 사방이 깜깜하고 고요해. 심호흡을 한 애란은 바지를 벗었어. 건너가서 발각됐다가 옷에서 물이 떨어지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 하의를 몽땅 벗은 애란은 숨소리도 조심하며 강물에 발을 넣었어. 차가운 물이 등까지 차오르던 그때, 업은 아이가 움찔했어. 그런데 그 뿐이었어. 아이는 옷이 젖었는데도 신기하게 울지도 않고, 꼬물거리다가 다시 잠들었어.

애란은 드디어 건너편 강가에 도착했어. 그런데 그 때, 애란을 발견한 국경수비대가 달려왔어. 애란은 서둘러 바지부터 입었어. 애란은 "중국에 돈 받을게 있어 건너가려던 참이었다"고 둘러대며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했어. 국경수비대는 애란을 막 발로 차고 때렸어. 그리고 취조실 같은 곳으로 끌고 갔어. 애란이 울며 불며 매달렸지만 안 통했어. 순간 뭔가가 떠올랐어. 애란은 보따리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어. 바로 담배와 술이었어.

"중국 담배가 한 갑에 35원이에요. 10개가 들어있으니 350원짜리 두 개를 줬어요. 술 두 병이랑."

애란이 술과 담배를 주니, 국경수비대는 그제야 못 이기는 척 보내주더래. 뇌물로 건넨 술과 담배가, 사람 목숨 값인 거야.

장백에 있던 김 기자는 날이 밝자마자 압록강으로 나갔어. 애타게 강 건너만 계속 주시하고 있는데, 드디어 애란이 나타났어. 애란은 손가락 세 개를 펼치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의문의 수신호를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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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뜻이냐면, 8월 3일에 나오겠다는 뜻이야. 다행히 가족들을 설득한 거 같아. 드디어 약속한 그 날이 됐고, 김 기자는 대낮부터 강변에 나가서 애란을 기다렸어. 해가 저물 무렵, 건너편에 애란이 나타났어. 그런데 또 신호를 보내기 시작해. 이번엔 다섯 손가락이야. 오늘 말고, 5일에 나오겠다는 계획 변경이었어.

8월 5일이 됐고, 김 기자 일행은 아침부터 강변에서 애란을 기다렸어. 그런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어. 다음날, 다시 또 강으로 나갔어. 한참을 기다리는데 드디어 애란이 나타났어. 근데 분위기가 이상해. 한동안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더니, 손짓을 해. 이번 일을 도와주고 있는 조선족 안내인을 호출한 거야. 그 친구는 장사하느라 장백-혜산을 수시로 건너 다니는 사람이라 압록강을 건너도 크게 의심을 안 받았어. 그는 단숨에 강을 건너서 애란에게 다가갔어. 애란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편지 한 통을 건넸어. 편지에는 "우리의 계획은 다 틀어졌다"고 적혀 있었어.

애란의 이모가 탈북 계획을 알게 된 거야. 이모가 "움직이면 즉시 보위부에 보고하겠다"고 해서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어. 한바탕 난리를 친 이모는 그냥 자리를 피고 드러누워 버렸대. 이들이 못 떠나게 감시하려고. 편지를 본 이용운 씨는 고민에 빠졌어. 40년 만에 찾은 어머니, 그리고 북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야. 말없이 담배만 계속 피우던 이용운 씨가 드디어 입을 열었어.

"내레 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도 가족들한테 가야지요."

용운 씨는 어머니에게 인사라도 남기고 싶다고 말했어. 그 때 김 기자를 통해 용운 씨가 어머니에게 남긴 실제 음성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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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용운이라요. 나 장백에 왔다 어머니 못 보고 가요. 내 불효자식입니다, 어머니. 계속 마음 속에 두고두고 살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장수하셔야 돼요."

이용운 씨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김 기자는 철수해서 한국으로 돌아왔어.

▲ 탈출, 반쪽의 성공

며칠 후, 김 기자는 장백에 있던 조선족 안내인 김 씨한테 급하게 연락을 받았어. 탈북의 걸림돌이었던 이모가 집에 돌아갔으니, 이용운 씨 가족이 전부 압록강을 건너오겠다고 했다는 거야. 그래서 김 기자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어.

애란은 다시 탈출을 결심했어. 근데 사실, 가족들끼리 아직 합의가 안 됐어. 탈북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버지 용운 씨와 첫째 딸 애란. 근데 애란도 아직 남편한테는 말은 못한 상황이야. 둘째 학철이는 탈북에 찬성했어. 근데 그 역시 아내한테 얘기를 못했어. 아내가 반대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거야.

어머니는 가족들이 다 가면 자신도 가겠다는 입장이고, 막내 미란이는 어머니가 가시면 가겠대. 제일 큰 문제는, 셋째 상철이야. 상철이는 나고 자란 조국을 어떻게 배신할 수 있냐며 절대 못 간대. 근데 그에게는 사정이 있어. 상철이는 나름 엘리트야.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입당했고, 대학교를 추천 받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나왔어. 북한에서 당원이 됐다는 건 나라에서 앞날을 보장해 준다는 거야. 또 상철은 약혼까지 한 상태였어. 이래저래 떠나기 싫은 상황이었지.

애란 씨는 고민 끝에 일단 저지르기로 했어. 바로 조선족 안내인한테 연락했고, 탈출 날짜를 잡았어. 탈출 하루 전, 애란 씨는 남편한테 "어떤 중국 사람이 나한테 쌀을 팔아달라고 하는데 당신이 같이 가줄 수 있냐"고 거짓말을 했어. 사실은 나중에 말하더라도 일단 중국에 같이 넘어가고자 한 거야. 남편은 알겠다며 외출을 했어. 근데 밤 12시가 넘어 돌아온 남편은 만취 상태였고 그대로 뻗어 잠들어 버렸어. 새벽 2시가 넘어가는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못해. 애란 씨는 잠든 남편을 그대로 두고 아이를 업었어. 중요한 결정을 할 땐 냉정하게, 감정에 휘둘리면 안된다고 독하게 마음 먹고 집을 나서 친정으로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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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서 만난 어머니는 "난 못 간다"며 요지부동이었어. 셋째 상철이가 집에 안 왔다고, 상철이만 두고 갈 수 없다는 거야. 옆에 있던 막내 미란이도, 그럼 자기도 안 가겠대. 시간은 새벽 3시를 지나고 있어. 조선족 안내인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됐어. 이제 시간이 없어. 애란 씨는 어머니와 갓난 아들 중에,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였어.

애란은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집을 나섰어. 아들을 선택한 거야. 그 뒤를 동생 학철이와 아버지 용운 씨가 따랐어. 용운 씨도 결국엔 40년 넘게 떨어져 지낸 어머니를 선택한거야.

새벽 3시 30분. 불빛 하나 없는 압록강 강변에 도착했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어. 심호흡을 하고, 애란 씨부터 발걸음을 뗐어. 바로 그 때, "거기 멈추라! 간나 새끼들 어디 가는거네?" 국경수비대에 발각됐어.

뭔가 변명할 새도 없이 무차별한 폭행이 이어졌어. 애란은 아들을 꼭 끌어 안으며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어. 그 순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불빛이 깜박깜박해. 그걸 보고 병사 하나가 그 쪽으로 막 뛰어가. 잠시 후 돌아와서는 "날래 건너가라"며 그냥 가라고 해. 이거 어떻게 된 걸까?

병사의 양손에는 술과 담배가 잔뜩 들려있었어. 기다리던 조선족 안내인이 급히 손을 쓴 거야. 애란 일행은 정신없이 강물에 뛰어 들었어. 그 때 모습을 찍은 영상이 있어. 세계 최초로 촬영된, 실제 탈북 장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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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16일 새벽. 누구 하나 떨어지지 않도록 꼭 손을 붙잡고, 아들을 업은 애란, 아버지 용운 씨, 아들 학철이 압록강을 건너왔어. 마침내 도착한 장백의 은신처에서 용운 씨는 소리 죽여 눈물을 쏟았어. 국경수비대한테 얼마나 맞았는지 학철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어.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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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자는 가족 일부만 넘어온 것을 보고 참담함을 느꼈어. 생이별을 한 어머니와 아들을 만나게 해주려 시작한 일인데, 또 다른 이산가족이 생겨버린 거잖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여기서 더 지체하면 안 돼.

이들은 택시를 나눠 타고 심양으로 향했어. 장백에서 700km를 달려가야 해. 두렵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차 안 분위기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 100일된 아기 때문이었어. 중간에 검문소 때문에 차에서 내려 산길을 도보로 이동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심양에 도착했어. 그 시각 심양에는 특별한 사람이 와있었어. 바로 백홍용 할머니야.

▲ 47년 만에 만난 모자

백 할머니는 한 허름한 건물 앞에 도착했어.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힘차게 계단을 올라갔어. 마침내 문이 열렸고, 눈 앞에 백발의 노인이 한 명 서있어. 16살에 잃어버린 아들이야. 백 할머니와 용운 씨, 47년만에 모자가 드디어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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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할머니는 아들도 끌어 안고, 처음 보는 손녀, 손자도 끌어 안았어. 이들은 할머니의 품에서 눈물을 쏟았어. 그런데 백 할머니의 표정이 막 환하지가 않아. 할머니는 울먹이는 아들한테 이렇게 말했대.

"울지 말라. 못나온 아이들 얼른 데려오라. 절대로 포기하면 안돼."

북한에 남아있는 며느리와 손주들이 걱정되는 거야. 할머니는 그들을 어떻게든 꼭 데려오라고 신신 당부하셨어. 당연히 애란의 마음도 아파. 애란은 다시 한 번 어머니를 설득해보기로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어.

"어머니 우리는 이번에 가지 않으면 다 죽은 목숨입니다. 저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도 없거니와 가지도 못합니다. 비가 쏟아지면 끝장입니다.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늦어질수록 위험해. 언제 탈북 소식이 알려질지 모르고, 장마가 시작되면 강물이 불어서 압록강을 건널 수가 없어. 편지를 보내고 애란 씨는 계속 안절부절 했어. 그리고 며칠 만에 인편을 통해 답장이 왔어. 막내 미란이가 보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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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언니에게. 우리가 통째로 떠나 집이 텅 비어 있으면. 아버지 언니 오빠 할머니 곁에 가기도 전에 들킬 거예요. 저희들이라도 여기에 있어야 아버지를 비롯한 언니 오빠가 일 없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 곁으로 가면 우리 인사도 함께 전해주세요. 언니 오빠 아버지 모두 그 곳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오지 않겠다는 답변이었어. 차라리 북한에 남아서 다른 가족들이 중국을 빠져나갈 때가지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거야. 떠난 가족을 위한 남은 가족의 선택이었어. 애란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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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옴으로 인해서 우리 남은 가족들이 불행해지고 비참해질 걸 생각하니. 내가 가족들 시체 위에 올라서 만세를 부르는 거 같은 죄악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설득할 수도, 기다릴 수도 없어. 이젠 떠나야해. 애란 일행은 심양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베트남 국경지대로 이동했어. 국경을 무사히 넘었고,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 가서 망명 신청까지 마쳤어. 그렇게 애란 일행의 북한 탈출은 무사히 마무리 됐어.

▲ 드디어 완전체가 된 가족

김 기자는 멀쩡한 가족을 찢어놨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어. 그런데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어. 중국에서 또 조선족 안내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이용운 씨 가족이 압록강을 건너왔다"는 연락을 받았어. 이게 어떻게 된 걸까.

김 기자는 다시 중국으로 날아갔어. 막내 미란, 셋째 상철, 학철의 부인과 아들, 어머니 이재관 씨까지. 모두가 중국으로 넘어오긴 했어. 그런데 표정이 다들 편해 보이지가 않아. 의심과 경계의 눈빛이 역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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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북한의 혜산에서는 며칠동안 집에 오지 않던 상철이가 불쑥 나타났어. 그러더니 "어머니, 우리도 갑시다"라고 말했어. 탈북을 완강하게 거절하던 상철이 마음을 바꾼 거야. 가족이 탈북했단 게 알려지면 당국에서 가만 놔두겠어? 캄캄한 앞날이 뻔하니까, 그럴 바엔 그냥 떠나자고 결심한 거야. 그런데 이번엔 어머니가 안 가겠대. 그 이유는, 친정을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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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니네가 얼마나 피해 당할까, 오빠네는 얼마나 피해를 당할까, 그런 생각 하니까 정말 떠날 생각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마음은 아마, 내 새끼들이 다 건너가는데 내가 안 간다는 것도 또 그렇고. 이것저것 고민이 많고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용운 씨 부인 이재관 씨

또 딜레마야. 친정 식구들과 자식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해. 결국 어머니는 자식들을 선택했어. 그렇게 북한에 남았던 용운 씨네 가족들이 다같이 압록강을 건넌 거야. 하지만 압록강을 건넌 후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책감도, 미지의 낯선 땅 한국에 가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어. 상철은 술을 먹고 원망을 쏟아냈다가 어머니와 크게 싸우기도 했어.

제일 안타까운 건 학철의 아내야. 계속 울고만 있어. 아무것도 모르고 시댁 식구들을 따라온 거야. 잠깐 시할머니 만나러 가는 줄 알고 왔는데, 압록강을 건너고 나서야 한국으로 간다는 걸 알았대. 북에 있는 친정 식구들과 생이별을 하게 됐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 매 순간순간이 원망과 갈등의 연속이야. 이대로라면, 한국에 가는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

바로 그때, 백 할머니가 나타났어. 며느리와 손주들을 만나려고 한달음에 중국으로 오셨어. 처음으로 마주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어.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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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지켜보며 상철도 눈물을 흘렸어. 놀랍게도 이날 이후로 거짓말처럼 가족 모두가 안정을 되찾았어. 상철이는 "이런 게 바로 혈육의 정이구나" 싶었대.

상철 일행의 탈북 소식에 가장 기뻐한 사람들은, 당연히 먼저 나온 가족들이지. 가족들은 다시 완전체가 됐어.

"그때는요. 세상의 모든 만사가 다 감사하고. 정말 홀라당 벌거벗겨서 그 겨울에 밖에 내쫓아도 부러울 게 없었어요. 가족이 있다는 게 그렇게 감사했어요. 이 세상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현재의 이애란 씨

▲ 완벽한 해피엔딩일 수 없는 이유

1997년 12월 30일, 대한민국 서울. 이용운 씨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어. 무려 150일간의 탈북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야. 가족의 운명을 바꾼 백 할머니도 함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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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애란씨는 아들을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어. 호텔 청소부, 보험 설계사를 거쳐 지금은 요리연구가로 자리를 잡았어. 압록강 건널 때 등에 업혔던 갓난 아이는 어엿한 20대 대학생이 됐어. 대한민국 여느 청년들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있대. 셋째 상철 씨, 넷째 미란 씨도 직장을 구하고 알콩달콩 가족을 꾸렸어. 47년만에 만난 백 할머니와 이용운 씨는 각별한 모자의 정을 나누면서 행복한 여생을 보내셨대.

하지만 그날의 선택이 해피엔딩으로 남을 수 없는 이유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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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는 추방을 보냈다는 거예요. 나 때문에 2월에 집도 없는 한지에다가 추방을 보냈다잖아요. 난 잘 살겠다고 여기로 오고, 오빠는 그렇게 정말 몇 십년을 군대 생활하고 제대했는데. 그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죠."
-어머니 이재관 씨

김천홍 기자는 북에 있는 누님을 데려오는 걸 포기했대. 왜냐하면 누님의 자식들이 결혼해서 가족이 생겼거든.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아예 포기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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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프로그램을 했던 25년 전, 그리고 지금. 바뀐 건 아무것도 없어요. 무관심 혹은 남, 이게 오히려 더 심해진 거 같아요. 그게 저는 좀 안타깝고 그거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할 수 없을까…"
-김천홍 기자

2022년 현재 공식 집계된 이산가족 숫자는 4만 7천명이야. 남북 이산가족 생존자 중 67%가 80대 이상 고령자이고 매년 약 3천여 명이 사망하고 있어.

백 할머니와 이용운 씨 가족은 왜 이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만나야 했을까. 가족이니까. 살면서 맺는 수많은 인연 중에 가장 기적과 같은 인연은 가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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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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