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수리남' 하정우, 살아있네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9.27 21:20 수정 2022.09.28 09:56 조회 3,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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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선후배인 하정우와 윤종빈은 충무로의 대표적인 페르소나(persona: '가면'이라는 그리스 어원에서 유래된 말로 영화에서 영화감독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 관계에 있는 배우와 감독이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를 시작으로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까지 17년간 총 4편의 영화를 함께 하면서 동반 성장했다.

페르소나 관계는 감독과 배우의 사적인 발전에 그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의 탄생은 영화계의 발전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의 협업은 한국 영화 르네상스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무장 해제된 나의 일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예요. 그는 어쩔 수 없이 감독이고 작가이기에 일상 속 제 모습에서까지 영화적 순간을 캐치하곤 해요. 윤종빈만큼 저와 많이 호흡한 감독은 없어요. 그만큼 저의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배우로서 본연의 감정선을 최대치로 끌어내는데 능하다고 볼 수 있죠"

하정우는 윤종빈 감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하정우 사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이 윤종빈이고, '윤종빈의 연출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캐치하는 배우가 하정우다.

수리남

두 사람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으로 또 한 번 뭉쳤다. 2015년 '군도:민란의 시대'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수리남'은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실제 국정원의 비밀 작전에 가담했던 K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윤종빈 감독이 각본을 직접 썼고, 연출까지 겸했다. 이 과정의 시작엔 하정우가 있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한 건 8년 전 15페이지짜리 시놉시스였어요. 이야기가 흥미롭더라고요. 집이 가장 가까운 윤종빈 감독에게 '관심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처음엔 영화로 만들려고 했거든요. 윤 감독이 이 이야긴 2시간 30분 안에 담을 수 없다고 거절했어요. 그리고 그는 '공작'을 찍으러 갔죠. 그가 '공작'을 마친 후 '수리남' 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됐고 OTT 드라마로 만들어보자고 합의가 됐어요. 윤 감독이 '강인구 역할을 제가 하고 전요환 역할은 황정민 형이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어요"

남미를 주름잡은 마약왕과 그를 검거하는 비밀작전에 투입된 민간인의 언더커버(위장수사)가 핵심인 '수리남'에서 하정우는 단란주점을 운영하다가 수리남으로 넘어가 홍어 사업을 하게 된 사업가 강인구로 분했다. 강인구는 전요환에게 된통 당하고, 시원하게 되갚아준다. '속이면 살고, 속으면 죽는다'는 작품의 메인 카피처럼 강인구와 전요환은 서로에 대한 호의와 의심을 품으며 아슬아슬한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수리남

사실상 이야기의 화자인 강인구의 톤 앤 매너가 곧 '수리남'의 방향성이다. 하정우의 색깔이 더해진 강인구는 특유의 여유로움과 능글맞음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강인구를 연기하며 20대 후반에 작업했던 영화 '비스티 보이즈'와 '멋진 하루'를 떠올렸어요. 우선 대사의 속도감을 높였어요. 말이 빠른 사람이 임기응변이 좋잖아요. 강인구는 쉽지 않은 캐릭터예요. 극을 이끄는 첫 번째 주인공이잖아요. 튀는 것보단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연기로 뭔가를 강조하긴 쉽지 않아요. 윤 감독이 저와 '용서받지 못한 자'나 '비스티 보이즈'를 함께한 만큼 제 연기의 강점 때문에 강인구 역할을 제안한 것 같아요. 캐릭터가 식상해 보여도 극 전체를 볼 땐 안정적이란 판단을 했겠죠. 그래서 제가 어릴 때 즐겨했던 표현법이나 대사, 리액션 등을 강인구에 녹여냈어요"

강인구라는 인물은 돈에 대한 욕망과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인물이다. 그가 목숨을 건 작전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던 건 가족을 위해 해외로 넘어와 고생을 했는데 하루아침에 무일푼이 됐다는 막막함 때문이었다. 여기에 '선한 의지'가 더해졌다.

"강인구가 전요환으로부터 마약 수익의 10%를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흔들렸겠죠. 돈 때문에 수리남까지 온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결국에는 선한 선택을 하잖아요. 그런 강인구가 전요환의 조직에 들어가서 갈등을 겪거나 활약하는 모습들은 회차가 더 확장됐다면 잘 소개됐을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6부작으로 정해지면서 그런 부분들이 편집된 게 저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긴 해요"

수리남

윤종빈 감독은 강인구의 집요함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에 기인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아버지를 연기하는 하정우'였다. 물론 하정우는 '허삼관'과 '백두산', '클로젯' 등에서 아버지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어딘가 어색함이 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강인구는 하정우의 캐릭터성을 자연스레 녹아낸 인물이기에 아버지 강인구는 하정우다웠다. 이런 자연스러움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친구같은 아빠', '근엄함 속 다정함'이 묻어있는 아버지로 완성됐다.

'수리남'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하정우와 황정민의 첫 연기 호흡이었다. 각자의 연기 스타일을 정립하며 충무로의 최고 배우가 된 두 사람이다. 2000년대 초반 한 연예기획사에 몸을 담기도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작품 인연은 닿지 않았다. 하정우는 황정민과의 오랜 추억들을 풀어놓기도 했다.

"20대 중반에 소속사에서 처음 뵀어요. 첫인상은 '무서운 선배'였죠. 당시 황정민 선배의 위상은 엄청났어요.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밥상 멘트'로 전국민적 화제를 모으던 때거든요. 신인인 제겐 마냥 높은 존재였죠. 그때도 정민이 형은 살갑고 따뜻한 면이 있었어요. 서울극장에서 열린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시사회에 찾아오셔서 저와 윤종빈 감독에게 '나도 다음에 영화에 참여시켜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도 저를 데리고 다녔어요. 자기랑 다니면 조금이라도 주목받을 테니 2인 1조로 다니자고 하면서 저를 챙겨주셨죠. 어떻게 그동안 이렇게 작품에서 못 만났지 싶었는데 '수리남'이 그 밑거름이 됐어요. 형은 늘 배려심 넘치세요. 후배들에게도 불편함을 줬거나 오해를 불러일으켰으면 미안하다고 먼저 연락할 정도로 늘 챙기시고, 나이를 떠나서 배우들을 존중해줘요. 누가 미스를 하거나 연기 표현법이 조금 서툴러도 '그건 어떻게 나오게 된 거야?'라고 물어요. 대화의 시작점이 달라요. 물론 조금 다혈질인 면은 있지만 항상 따뜻하고 섬세한 분이세요"

수리남

하정우의 연기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홍진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춘 '추격자'와 '황해'처럼 에너지를 분출하는 캐릭터 연기도 능하지만 하정우 연기의 미학은 '여유로움'과 '능글맞음'이다. 이러한 연기 스타일이 빛을 발한 작품이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스티 보이즈', '멋진 하루'일 것이다. '추격자'와 황해'만큼의 연기를 하는 배우는 앞으로 또 나올지 모르겠으나 '비스티 보이즈', '멋진 하루' 속 하정우의 연기는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들다.

최근 몇 년간 하정우의 연기는 정체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작품 선구안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캐릭터 선택의 문제기도 했다. 최근에는 갈등의 중심인 인물보다는 관찰자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많이 해왔다. 이는 상대적으로 빛이 덜 날 수밖에 없다. 또한 배우의 연기 테크닉을 보여주기 어려운 롤이기도 하다.

"개성 강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건 제 장기죠. 하지만 제작진과 감독이 제게 따로 원하는 게 있었어요. '신과 함께'의 경우 처음에 해원맥 역할을 제안받았지만, '해원맥을 내가 하면 강림은 누가 하지? 나보다 나이가 두세 살은 많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강림을 하게 된 거죠. 이처럼 작품 전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주연배우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캐릭터보단 영화 전반의 재미와 완성도를 생각해요. 그 안에서 인물을 새롭게 표현하는 게 숙제죠. 관객과 시청자가 지루하지 않도록 하려 해요. 어려운 일이죠. 지금도 고민이 많아요."

수리남

그런 점에서 '수리남'과 '강인구'를 선택한 그의 판단은 영리해 보인다. 이 역할 역시 화자이자 관찰자 롤이지만 황정민이 연기한 전요환의 캐릭터에 뒤처지지 않는다. 무엇이 더 낫다의 개념이 아닌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으로 각자의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물 흐르듯 능청스럽게 캐릭터를 연기하는 하정우와 불을 뿜듯 에너지를 분출하는 황정민의 연기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 충돌할 것 같지만 물과 불의 조화처럼 서로에게 스며드는 모습이었다. 선수와 선수가 만나 만들어낸 앙상블의 힘이었다.

'수리남'은 제주도, 전주, 부산, 무주 등을 거쳐 도미니카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국내외를 오가는 촬영 일정을 소화했기에 육체적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기에 개인사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목디스크에 시달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1부 마지막 체포 장면이 '수리남'의 마지막 촬영이었어요. 아침 6시에 모든 촬영을 끝내고 그날 오후 1시에 도미니카를 빠져나왔어요. 총 8개월 여정을 끝내는 그 순간 정말 탈출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수리남

윤종빈 감독과의 8년 만의 재회를 통해 그는 오랜 영화 동지의 어떤 성숙함을 봤을까도 궁금했다.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 법을 조금 더 알아낸 것 같아요. 집요함이 더 생겼달까요. 윤 감독은 평소엔 귀차니즘으로 무장한 스타일인데 작품을 할 때만큼은 테이크를 얼마를 가든 원하는 걸 끝까지 얻어내요. 완성된 '수리남'을 보면서 '작품을 재밌게 만드는 레시피들이 다양해졌구나'라고 느꼈어요. 가장 큰 변화는 보편적인 맛을 잘 알아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좀 독특하고, 실험적인 맛의 요리를 냈다면 지금은 모두가 좋아하는 맛을 낼 줄도 아는 능력이 생겼더라고요"

하정우에게 '수리남'은 여러모로 특별한 작품이다. 첫 OTT 드라마기도 하고, 오랜 동지 윤종빈 감독과 8년 만에 만난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논란에 휩싸여 힘든 시기를 보냈을 때 촬영했던 작품이라 개인에겐 아픔과 고통이 켜켜이 새겨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찍으며 '초심'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2021년 제가 맞이했던 일들과 현실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촬영장에 나와서 카메라 앞에 설 때는 숨을 쉴 수 있었어요. 인물에 집중하면 힘이 생기는 것도 같았죠. 과거의 제가 가졌던 몰입력을 마주하며 잃어버린 걸 찾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제겐 정말 중요했던 것이에요. '수리남'을 보면 그때 제가 가졌던 마음가짐이 보여요. 그게 참 아파서, '수리남'을 쉽사리 못 보겠더라고요. 하지만 연기에 집중하는 자세를 다시 찾은 것 같아 기뻐요"

하정우

데뷔 이래 1년에 2편 이상을 작업하며 '소정우'라 불렸던 그다. 작품을 내놓고 대중의 평가를 받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감회가 달랐다. 새로 출발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 떨림과 긴장은, 늘 자신감 넘치고 노련했던 하정우에게서 보지 못했던 모습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는 게 마냥 설렜을 텐데, 이번엔 마음이 조금 복잡해요. 보신 분들이 이 작품과 캐릭터를 어떻게 보고 그 안의 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 같아요. 2년 반 만에 기자님들과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으니까요. 이제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고, 한 걸음씩 나아가며 많은 걸 생각해보려 합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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