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안나' 김준한, 저열하고 천박하게…배우는 가면을 씁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7.29 16:36 수정 2022.08.01 09:43 조회 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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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한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자수성가한 IT 사업가 최지훈은 전도유망한 기업인이자 예비 정치인이다. 유학파 대학 교수인 안나는 그의 사무실 가구들이 이미테이션(imitation 모조품)인 것을 지적한다. 그 순간 안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겉만 번지르르한 혹은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는 속물임을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24일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된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시리즈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 수지의 연기력을 재발견한 작품으로 공개 초반부터 화제를 모았다. 하나 더, 스크린과 안방극장에서 탄탄한 연기력으로 주목받아온 김준한의 야누스적 매력에 또 한 번 놀랐다.

김준한이 연기한 최지훈은 저열하고 천박한 야망남이다. 드라마 '봄밤',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에서 지적이고 따뜻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이 배우의 과거를 생각하면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캐릭터다.

김준한

'안나'는 공개 초반까지는 수지의 연기 변신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지만 중반부를 지나자 김준한과 정은채의 활약에도 찬사가 쏟아졌다. 세 사람은 액션과 리액션의 절묘한 합을 맞추며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김준한은 평면적일 수 있는 캐릭터에 다양한 설정과 아이디어를 가미해 '연기 보는 재미'가 있는 악역을 탄생시켰다. 흥미롭고 세련된 해석이자, 수행이었다.

최지훈은 거짓 인생을 살고 있는 안나의 욕망과 콤플렉스를 권력 쟁취의 지렛대로 삼는다.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하는 현주(정은채)와 달리 지훈은 동정의 여지가 없는 '나쁜 놈'이다. 김준한은 이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기하는 데 있어 공감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물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입체화하는데 중점을 뒀다.

"일단 대본이 너무 재밌었어요. 제 머릿속에 그려지는 최지훈의 모습이 있었어요. 인물의 이면이랄까요. 재밌게 연기해볼 수 있겠다 싶었죠. 연기를 할 때는 그냥 그 인물이 생각할 법한 방식으로 생각을 하고, 어떤 상황을 마주하면 그 상황 안에서 집중한 상태로 있으려고 해요. 인물을 평가하려 하지 않아요. 그래야 그 인간만의 면모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최지훈은 최지훈인 거죠"

김준한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시선을 끈 것은 말투였다. 단순히 경상도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특별하게 다가오는 게 아니었다.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단어의 선택과 말의 양식 등에서 최지훈의 인격이 드러났다. 이주영 감독은 초반에만 사투리를 쓰다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서울말을 익히는 설정으로 가자고 권했지만 김준한은 계속해서 사투리를 쓰는 설정으로 가기를 제안했다.

"감독님께서는 지훈이 평소에서는 서울말을 쓰다가 동향 사람들을 만났을 때만 통영 사투리를 쓰는 설정으로 가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사람이라면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투리는 오히려 득이 된다는 판단을 했을 것 같더라고요. 또한 성공한 후에도 자신이 통영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것 같았어요. 내 고향과 지역 사회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인물,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큰 사람으로 우뚝 선 것을 여러 사람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사투리를 고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시골 출신 유미가 부유한 예술가 안나로 환골탈태하듯, 촌뜨기 최지훈도 유력 정치인 최지훈으로 변태 한다. 김준한은 "촌뜨기 설정은 감독님 생각이었는데 처음엔 되게 세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살다 보면 놀라울 정도로 변화를 겪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삶에서 카멜레온처럼 변모하기도 하고, 그 상황 안에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변하려고 하니까. 이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연기를 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해요"라고 말했다.

최지훈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는 서울 시장에 도전하면서 참모들이 데려온 고양이에게 '서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모습을 꼽았다. 그는 "내러티브적으로는 없어도 그만인 장면인데 그 장면이야 말로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안나

그렇다면 최지훈은 왜 안나를 자신의 파트너로 선택했을까. 목표지향적인 삶을 산다는 점에서 자신과 동족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모든 것을 통틀어서 자신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딱 구분 지어서 '내 목적을 위해 필요한 인간이야' 혹은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애'라고 판단한 건 아닌 것 같고 자기의 삶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영혼의 단짝을 만난 느낌이랄까요. 제3자적 관점에서 '지훈은 안나를 도구로 생각하는 것 같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는 평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잖아요.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죠. 그러면서 '이건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야'라고 생각할 테고요. 자기 합리화와 자기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안나를 '트로피 와이프'처럼 여긴 측면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너도 내가 필요하잖아'라는 생각도 한 거죠"

5회부터는 안나와 최지훈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극의 긴장도가 올라간다. 이때부터 김준한의 놀라운 연기력이 빛을 발한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기적이고 야비한 언행이 두드러진다. 안나에게 '태도의 문제'를 언급하며 자신이 해고한 직원처럼 하대하는 모습은 치가 떨릴 정도다.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최지훈은 폭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안나와 살얼음판 대립을 거듭하며 극의 텐션을 끌어올리는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최지훈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추락에 대한 공포'를 꼽았다.

김준한

"계속 올라가려고 허우적 대는 사람의 심리 안에는 사실 두려움, 공포가 크게 자리하고 있어요. 도파민에 중독된 상태인 거죠"

김준한은 '안나'를 촬영하면서 인상이 바뀌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이 자꾸 최지훈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연습을 하건, 혼자 상상을 하건 이 생각만 하고 사니까 그에 맞는 얼굴이 나온 것 같아요. 의도한 건 아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까 신기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까지 화면 안에서 '최지훈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그의 초라한 말로는 김준한의 징그럽도록 입체적인 연기와 어우러져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이 시퀀스에서는 수지의 연기도 대단했다. 김준한은 수지와의 연기 호흡을 맞추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수지 씨도 연륜과 경험치가 쌓이면서 자기 안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달까. 무언가를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모습을 보는데 저도 신나더라고요. 도전적인 정신으로 이 작품을 대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된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들이에요"

김준한

현재 수지의 나이때쯤 김준한도 인생의 큰 변곡점을 맞았다. 그는 20대 초반에 가수(그룹 izi)로 데뷔해 연예계 활동을 하다가 20대 후반에 연기자로 전향했다.

"작품 기록이 남겨지기 시작한 건 31살 때 부터지만 연기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28살부터예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했던 것 같아요. 음악을 하면서 같은 소속사에 있는 연극배우 형이랑 친해졌어요. 그 형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는데 연기가 저와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서서히 삶의 무게 중심이 음악에서 연기로 옮겨간 거죠"

연기와 자신이 맞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이 궁금했어요.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크고, 어떤 현상과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큰 편이에요. 책이나 영화, 다큐멘터리도 많은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뒤늦게 진로를 변경해 배우의 길을 걸은지도 어느덧 10년이 됐다. 김준한은 여전히 연기가 재밌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더 노력하고 싶고, 더 잘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괴물'처럼 또는 '먹깨비'처럼 좋은 배우와 작품들을 쫓아다니고 있어요. 좋다고 소문난 작품들도 꼭 찾아보려고 하고요. '안나' 촬영과 영화 '보호자' 촬영까지 마치고 한 세 달 정도 쉬었는데 이제는 열일하고 싶습니다. 아직 대중에게는 이름도 좀 낯설지만 감사하게도 여기저기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좋은 기회들이 주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열심히, 그리고 더 잘하고 싶습니다"

겸손의 언어로 가득 찬 인터뷰였지만 선한 듯 예리한 눈빛에서는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몇 년 안에 더 큰 별이 되리라는 확신을 주는 배우였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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