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아카이브K' 보아→비, 일본을 넘어 범아시아권을 정복한 'K-POP 한류 1세대'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1.03.08 01:52 수정 2021.03.08 09:50 조회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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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중국, 일본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간 K-POP.

7일에 방송된 SBS '전설의 무대-아카이브 K'(이하 '아카이브 K')에서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향한 한국 대중음악을 기록했다.

드라마의 인기로 한류 열풍을 이끈 안재욱부터 클론, NRG, 그리고 1세대 아이돌 H.O.T.는 중화권에서 큰 사랑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무분별한 해적판, 짝퉁 음반의 제작으로 한류의 인기가 곧바로 아티스트들의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또한 한류 인기를 악용하려는 시도들까지 생기면서 공연 사기 사건 등이 발생한 것. 특히 대형 콘서트의 당일 취소로 중국 관객들을 분노했고 급기야 시위로 번지며 이는 중국 당국의 한국 연예인 공연 금지 조치로 이어졌다.

한국 가수들 또한 공연 사기의 피해자임에도 이를 알지 못하는 관객과 중국 당국은 한국 가수들을 사기꾼으로 생각했던 것. 이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한중 관계 악화를 우려하며 무료 공연을 제안했고, 안재욱과 NRG는 중국 입국 금지를 풀기 위한 무료 공연 감행했다. 해외 활동을 위해서는 국가 간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고, 한국 가수들은 외교 사절단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던 것.

이에 당시 한류 1세대들은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더욱 힘을 냈다.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은 중화권을 넘어 음반시장 세계 2위 일본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아시아권에서는 비교할 대상이 없던 일본 음반 시장. 그러나 그만큼 장벽도 높았다. 특히 자국 아티스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일본에서는 해외 가수의 성공이 힘들었다. 이에 한국 대중음악의 원곡 형태를 유지하며 일본에서 성공한 가수들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큰 음반 시장과 충성도 높은 팬덤은 아티스트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초반 진입은 어렵지만 팬덤을 확보한다면 수익과 지속성이 보장되었던 것. 이에 수많은 가수들의 일본 공략이 이어졌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이어졌고 불모지였던 일본 시장에 아시아의 별 보아가 등장했다.

보아는 한일 양국 동시 데뷔와 활동은 물론 연이어 양국에서 정상에 등극했다. 트레이닝 당시부터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었던 보아는 현지에서 일본어 수업은 물론, 문화, 댄스 등 다양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SM 엔터테인먼트는 이전과 달리 일본 가수로 최적화된 보아를 제작해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일본에 진출했고 이는 성공했다. 그러나 처음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당시 립싱크에 관대했던 한국 시장과 달리 라이브가 기본이었던 일본. 이에 보아는 데뷔 쇼케이스 무대에서 핸드 마이크가 아닌 헤드셋을 착용하고 라이브를 해야 했는데 음이탈 사고가 발생하며 이는 보아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보아는 "그때 충격을 받고 무대 공포증이 생겼다. 그래서 아직도 헤드셋으로 라이브를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당시 한일 양국의 매니지먼트사의 기대보다 저조했던 반응에 보아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Listen To My Heart'를 녹음했고, 이는 예상과 달리 오리콘 싱글 차트 데일리 3위를 기록했다.

이에 보아는 "당시 이 음악이 핸드폰 광고 배경 음악으로 쓰이면서 큰 관심을 얻었다. 이후에는 하루하루가 꿈같았다. 시부야 109 백화점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는데 2만여 명의 관중이 모였다. 혼자 무대에 올라 그 넓은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차는 것을 보는데 내가 지금 잘 되고 있구나 싶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티스트가 일본 음악 시장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일본 문화계에도 충격을 안겼다. 당시 보아와 비슷한 나이에 보아 같은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는 전무했던 일본 음악 시장에 보아는 자극이자 충격이었다.

보아의 일본 데뷔 3년 차 첫 콘서트(홀 투어)는 순식간에 티켓이 매진되었고, 이에 마지막 파이널 공연은 국립 경기장으로 공연장을 바꿔 진행됐다. 보아는 "홀 투어도 큰 무대라고 생각했는데 파이널을 국립 경기장에서 하는데 너무 이상했다. 내 앞에 만 오천명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라며 "그리고 아레나 급의 공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보아의 성공 이후 일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K-POP 가수들, 그리고 그 선두에 동방신기가 있었다. 동방신기는 일본에서의 슈퍼스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돔 투어까지 성사시켰고 이들의 성공은 또 다른 후배들의 일본 진출로 이어졌다.

그리고 비슷한 때 아시아 전 지역에 K-POP의 영역은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범아시아권의 사랑을 받은 선두 주자는 비였다.

2004년 말 드라마 '풀 하우스'의 인기에 힘입어 아시아 전역에서 뜨거운 성원을 받은 비는 2년에 걸쳐 10여 개국에서 아시아 투어를 성료 했다. 그리고 이후 그는 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MTV 어워드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이를 계기로 미국 타임 매거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이루는 인도네시아 최초 한국어 음반을 발매했다. 그는 외국인 가수 최초로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 정상에 올랐고 본인의 이름이 들어간 드라마 제목까지 만들어지는 큰 인기를 얻었다.

이에 이루는 "한국에서 올로케 할 인도네시아 영화에 내 노래 '까만 안경'을 써도 되겠냐고 했다. 흔쾌히 수락했는데 이후 카메오 제의가 왔고 현지 프로모션 제의까지 들어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현지에서는 K-POP 열풍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첫 공연에 2만 명이 몰렸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루도 처음부터 성공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K-POP에 대한 관심으로 그의 공연장에 모였던 이들이 대부분, 이에 이루는 K-POP 팬들을 자신의 팬으로 만들자는 마음으로 친숙함과 스킨십으로 팬들과의 거리를 좁혀갔고 진심과 노력으로 인도네시아 최정상에 서게 되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한편 14일에 방송될 '전설의 무대-아카이브 K'의 최종회이자 K-POP 편 두 번째 회차에선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트와이스 등 최정상급 아이돌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공개될 것이 예고되어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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