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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그알' 창원 모녀, 불공평한 죽음 맞은 이유…"어머니가 그린 그림은 유서"

김효정 에디터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1.01.31 01:39 수정 2021.01.31 14:42 조회 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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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삶만큼이나 불공평한 죽음을 맞은 이들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30일에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단칸방의 유령들'이라는 부제로 창원 모녀 사망 사건을 통해 드러난 대한민국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대해 조명했다.

지난해 무더웠던 여름, 경남 창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50대 여성 김 씨와 그의 딸 22세 수정 씨가 함께 사망했다. 김 씨가 살던 집에서 악취가 진동했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가진 주민들이 119에 신고를 했고, 이후 김 씨의 집에서 성별 조차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부패된 상태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것.

특히 주민들은 김 씨의 딸의 존재에 크게 놀랐다. 김 씨에게 딸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것. 경찰은 여러 가능성을 열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특별한 단서는 찾지 못했고 부검을 통해서도 사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 두 시신 모두 이상이나 독극물 반응도 나오지 않았던 것

또한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재정 상황을 미루어 아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왔으나 시신 발견 당시 집에는 쌀과 음식들이 남아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된 방은 노끈으로 방 문과 현관이 모두 잠겨있어 밀실 상태로 더욱 기이했다.

전문가는 두 사람의 사망에 대해 "열사병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나 싶다. 그런데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것은 대부분 노인이다"라며 "두 명이 같이 스스로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사망했다 라고밖에 추정할 수 없다. 굉장히 이상한 사건이다"라고 분석했다.

제작진은 두 사람이 사망한 집 곳곳에서 한참 더 쓸 수 있는 생활 용품을 확인했다. 그리고 방 한 편에서 기묘한 흔적들을 발견했다. 빼곡하게 벽을 채우고 있는 수십 장의 그림들. 이 그림들은 딸인 수정 씨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죽음 이후에야 그 존재가 드러난 수정 씨와 그녀가 그린 그림. 수정 씨의 친구들은 "워낙 밝은 친구라 모르는 친구들이 없을 정도로 다 안다. 되게 착했다. 엄청 많이 웃고 곁에 있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들었다"라고 했다.

또한 재능도 많고 관심 있는 분야도 많았던 수정 씨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수정 씨가 남긴 그림을 보며 "수정이가 그린 건 맞다. 그런데 이런 그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라며 채색은 되지 않고 선으로만 그린 그림에 대해 기묘하다고 말했다.

친구들도 낯설어하는 수정의 그림은 옷 속에 몸은 물론 장기나 태아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수정 씨가 6년 동안 다녔던 미술학원 교사는 수정 씨가 그린 그림을 한 번에 알아봤다. 그러나 친구들이 낯설어하던 그림을 보며 "수정이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요. 왜 태아로 있을 때부터 그렸을까요. 수정이가 내가 못 본 사이에 이 아이가 생각할 수밖에 없던 분명 뭔가 있지 않았을까요"라며 얼굴을 굳혔다.

제작진은 모녀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과거 모녀가 살던 곳 주민들에게 모녀에 대해 물었다. 주민들은 "부모가 이혼 후 엄마가 딸을 방치했다. 초등학생 아이를 일하고 돌아올 때까지 집 밖에 방치했다. 그리고 그때 집주인 아저씨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더라"라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고작 11살의 나이에 부모의 학대와 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것.

그리고 이웃 주민들은 2010년 수정 씨의 엄마 김 씨를 아동 방임 및 정서 학대의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를 했고 수정 씨는 김 씨와 강제 분리되었다. 이후 수정 씨는 시설에서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살았다.

요양 보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새로운 꿈을 꿨던 수정 씨. 그러나 수정 씨의 고등학교 졸업 후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18세가 되며 시설에서 퇴소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수정 씨는 결국 엄마 곁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존재가 서서히 사라졌던 것. 그리고 이 맘 때부터 수정 씨의 그림도 바뀌기 시작했다.

미술 치료 전문가는 수정 씨가 남긴 그림에 대해 "7세 아동들이 그리는 그림의 특징이 드러나 있다"라며 "성인이 이런 그림을 그린다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태이다. 미성숙한 이들이 그리는 그림이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학대받은 이들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발견되지 않는다며 "사고 능력이 굉장히 와해된 이들에게서 보이는 굉장히 사이코틱한 그림이다"라고 평가했다.

방 안에서 발견된 또 다른 그림들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그림과는 또 달랐다. 그림 속에서 행복해 보이는 모녀. 그러나 수정 씨의 지인들은 이 그림에 대해 수정 씨가 그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에 제작진은 김 씨 모녀의 집에서 발견된 자필 서명을 모아 그림 속의 필적과 비교했고 이에 90% 이상이 어머니가 쓰고 그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모녀의 그림은 모두 어머니가 그린 그림이었던 것.

심리 전문가들은 어머니가 그린 그림에 대해 "그림이 모두 대칭이다. 데칼코마니처럼 보일 수 있게 그렸는데 딸을 자신처럼 동일시하는 모습이 보인다"라며 "일심동체의 마음 상태를 보이는데 딸에 대한 강한 집착과 통제가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딸과 강제 분리된 이후 딸에 대한 집착된 행동을 보였던 김 씨. 그리고 그림에서도 드러나는 상대에 대한 교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김 씨는 딸을 고립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제작진은 김 씨의 동생을 만나 김 씨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김 씨의 동생은 "2010년에 수정이가 시설에 입소할 때 연락을 받았다. 누나가 우울증에 대인기피증도 있고 환청도 들리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퇴원 후에는 강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수정이를 데리고 와서 결국 사고가 났다"라고 말했다. 정신 분열증을 앓았던 김 씨는 딸과 강제 분리 후 더욱 아픔이 심해졌고 딸과 다시 만나 딸도 엄마처럼 병 들어갔던 것.

모녀의 곁에 쌓인 귤 박스 위에는 의미심장한 그림이 남겨져 있었다. 옷과 신발 등은 모두 검은색과 무채색으로 그린 이 그림에 대해 전문가들은 "삶의 애착이 없고, 언제 죽일지 모른다는 의미다"라며 "죽음을 예견한 것 같다. 그런데 이 그림 진짜 너무 아프다. 이 그림은 유서다"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수정 씨의 친구들은 수정 씨가 시설에서 퇴소한 이후 시설을 찾아온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던 수정 씨. 그러나 시설에서는 마땅한 대책이나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이에 제작진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시설을 방문했다. 그러나 시설에서는 인터뷰 요청을 극구 거부했다. 수정 씨의 친구는 "나도 어머니가 정신분열을 앓고 있고 시설에서 퇴소했다. 하지만 난 지금 여러 가지 도움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만약 선조치가 달랐으면 이렇게까지 안 되지 않았을까"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해당 관계자는 "어머니가 장애 등록을 했다면 혜택은 받을 수 있었을 거다"라며 "긴급재난지원금이 나올 때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본인은 살만하다면서 본인보다 더 어려운 이를 도와달라고 기초 수급 대상을 거부했다"라고 했다.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도 사정을 면밀하게 살핀 이는 없었던 것.

그리고 김 씨 모녀는 사망 직전까지 아동 보호 시설 퇴소한 이에게 주어지는 월 30만 원이 유일한 수입원이었고 김 씨의 잔고는 7000원이 전부였던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수정 씨의 죽음에 대해 친구들은 "성인 돼서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고 그렇게 갔다니 너무 안 됐다. 본인이 거부를 한다면 그걸로 끝이고 정부나 행정 기관에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게 느껴져서 너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정신 장애를 가진 엄마와 경계선 지능의 딸, 분명 도움을 받아야 함에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었던 모녀. 이들 같은 이들은 또 있었다.

맨손, 맨발로 지하철역 앞에서 팻말을 들고 있던 37세 최동욱 씨.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복지사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도와달라는 사연을 적은 쪽지를 건넸다. 이에 복지사는 동욱 씨를 따라 경찰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모습과 마주했다. 반년 전 사망한 동욱 씨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팔이 마비되며 쓰러졌고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는 것.

발달 장애의 동욱 씨는 어머니 시신 곁에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시신이 부패하자 집을 나오게 됐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렸던 것. 초등학교 1, 2학년 수준의 지능을 가진 그는 장애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스스로의 어려운 상황을 증명하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창원시 모녀와 방배동의 모자. 이에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창원시에서는 정신과 경력이 있는 취약계층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전수 조사를 시작했고, 서초구는 동욱 씨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해 생계 급여와 주거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돕고 장애 등록 심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보건 복지부는 빈곤에 시달려도 부양할 가족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 보장 대상에서 제외되는 부양 의무자 기준을 생계 급여 심사에서 폐지하고 의료 심사에서도 단계적으로 폐지해나갈 것 약속했다.

동네 슈퍼에서 늘 라면을 사 갔다는 남편과 단칸방에서 살던 필리핀에서 온 마리아. 그의 남편은 뇌 수술 후 거동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들은 지난해 1월 함께 사망했다.

법의학자는 두 사람의 시신에 대해 "아내가 뇌출혈로 바닥에 쓰러지자, 한쪽 손만을 쓸 수 있던 남편이 아내를 깨우려다 침대에서 떨어지고 만 것으로 추측된다. 남편은 우혈 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라고 부검 결과를 공개했다. 또한 "위점막에 표재성의 미란이 확인되었다"라며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 겨울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서 사망한 것으로 분석했다.

응급관리 요원의 방문으로 알려진 두 사람의 죽음. 응급관리 요원은 활동 감지기가 감지되지 않아 마리아의 집을 방문했고 이에 신고한 것으로 밝혔다. 특히 활동 감지기가 멈춘 것은 12월 29일 일요일이었고 이후 일주일 가량 연이은 연휴로 상태 확인이 불가능해 빠른 조치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응급관리 요원이 관리하는 이는 200명이 넘었다. 실제로 응급관리 요원은 취재진들과의 취재 시간에도 혼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2년 12월 기준 전국 응급 관리 요원은 600명이 되지 않고 1명 당 157명 정도의 대상자를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생명이 달린 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급여는 최저 수준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에 한 전문가는 "복지 사각지대가 아니다. 왜 도움을 받지 못하는지가 뻔하다"라며 스스로 증명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수정 씨의 친구들은 수정의 죽음에 대해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제작진은 동욱 씨에게 빨리 돕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전했다. 그러자 동욱 씨는 "괜찮아요. 그래도 이렇게 빨리 도와줬잖아요"라며 해맑게 웃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어떤 죽음은 삶만큼이나 불공평하다. 살아생전에도 유령 같던 존재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해 애도되지 못할 이름 모를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증명해야 할 것도 많고 예외도 많아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그들에게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이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수급 요건은 명쾌하고 단순하게 하고 실제 행정을 돌보는 이들의 수와 예산은 합리적으로 늘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폭염이나 한파 전염병이 돌 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취약계층임을 강조하며 지금도 위기에 처해있을 이들을 돕기 위해 하루빨리 제도적 문제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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